본문과 관계없는 1978년 동해 거진 앞바다에서 격침된 북한군 무장선박에서 생포된 승무원들이 판문점을 통해 송환되면서 발생한 헤프닝.
남한측에선 이들에게 양복과 시계를 입히고 기타 선물들을 들려 돌려보냈으나, 군사분계선을 넘자마자 선물을 집어던지고 옷과 시계를 전부 벗어 내팽개치고 팬티 차림으로 만세를 외치며 돌아감.
1953. 8. 6. 북으로 돌아가는 인민군(여) 포로들이 열차의 창문을 깨뜨리곤 인공기와 반미 플래카드를 내걸고 구호를 부르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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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안수용소 북쪽은 직선 거리 약 50미터 되는 언덕 위에 여성 포로수용소가 있었다. 약 150명이 수용되어 있는데 90%가 북한 송환을 지망하기에 우1익 청년들은 그들을 '빨강 계집년'이라 부르고 좌1익은 '애국여성'이라고 불렀다.
몇 명의 유부녀 외에 대부분이 20대 초의 처녀들로서 동작은 활발하고 말씨는 쨍쨍하게 울렸다. 먹고 할 일이 없으니 얼굴빛이 하얗고 복장도 인민군 여성 이상으로 단정하고 깨끗했다.
그것뿐이라면 별로 거슬리는 것이 없겠는데 수시로 목청을 높여 공산군 노래, 적기가를 불러 우리는 하루에도 몇 번씩 신경이 곤두서곤 했다. 보안수용소에는 장비(張飛)처럼 생긴 반공 애국청년이 있어 매일 석양쯤 되면 그와 여자들 사이에 일대 선전전이 벌어지곤 했다. 빨강 여성들은 대꾸하기 어려울 때는 적기가, 혁명가로 응수한다.
훗날 판문점에서 포로가 교환될 때 수백 명의 빨강 여성들은 열차가 판문점에 도착하자마자 모든 들창을 깨고 차내 장식품을 부수고 앉았던 의자커버는 면도칼로 찢고 그 위에 걸터앉아 오줌을 쌌다. 그러고도 부족하여 하차하기 직전에는 모두 엉덩이를 드러내고 중간 복도에 대변을 배설했다. 3년간 암퇘지처럼 파먹고 남긴 것이 그것뿐이다.
내가 겪은 조선전쟁, 주영복 지음, 고려원, 1990년, 326~327쪽
주영복 씨는 한국전이 끝난 뒤 제3국을 선택한 반공포로 76인 중 최연장자이다. MBC가 6.25특집 다큐멘터리로 방송한 '76인의 포로들'의 주인공들과 함께 방한한 그는 54년 2월 인천항을 떠나 인도에 2년간 머문 뒤 미국으로 옮겨 정착, 그동안 전쟁의 악몽에 시달리며 살아왔다. 전쟁의 상흔을 떨어버리려는 노력의 하나로 '내가 겪은 조선전쟁'이란 책을 썼다.
살기 위한 몸부림
개이득ㄷㄷㄷ
저 판문점 쇼하는거는 열받는다기보다 웃음만 나오네ㅋㅋㅋ
저시절 머한 기준으로도 살려고 저짓해야 하냐면서 참담한 어조로 나레이션 하더라
40년전 춘천 불시착했던 짱깨조차 안한짓인데 저걸하네
저렇게 안 하면 뒤지지 않음?
그냥 살기 위해 충성심을 증명한듯
포로 중에서 지도부역할하던 골수년들이, 니들 이거 안 하면 이름적었다 화냥년만든다고 했을거임 ㅋㅋ
비슷한 사례일 듯. 한국전쟁 당시 포로 중에도 어찌저찌 외부랑 소통이 되거나 아니면 일부러 포로로 잡혀와서 포로 수용소 내부에서 북한 지령을 따르는 놈들이 있었다고 함. 즉, 포로들이 남한에 대해 호의적인 생각이나 전향 등을 못하도록 감시, 분위기 조성하는 역할을 맡았다고. 그런 애들이 주도했을 가능성도 있지.
그러면 미개하긴 하지만 납득이 안돼는건 아니네... 집단으로 ㅈㄹ하는거 혼자 못막는거는 만국공통이잖아 - dc App
한국전쟁 당시에는 김일성 찬양 이런게 그리 강하지 않았을텐데 왜 그랬을까?
찬양이 문제가 아니라 저 쯤에도 김일성 새끼가 북한내부에 숙청하는거 피하려 말그대로 똥꼬쇼짜장분사한거겠지
불과 몇 년 전 동부전선의 소련군 포로들이 어떤 취급 당했는지 생각하면 견적 나옴
저짓 않하면 죽으니까 ㅋㅋㅋㅋㅋㅋ
자본주의 물 먹고왔다고 피해볼까봐 그러는 듯. 지금도 외교관 하다오거나 유학만 다녀와도 수용소? 들어가서 뭔 교육 받아야 한다던데
권위주의 독재국가 고질병이지 뭐 ㅋㅋㅋㅋ 어딜 가도 자기의 신실함을 증명하고 뜬금없이 충성경쟁 걸려서 실패하면 좌천부터 사형까지도 쳐먹으니
추태가 아니라 살기위한 몸부림 아니냐 어쩌피 저짓해도 다 어디 보안부 끌려가서 6개월은 사상검증 받을건데 약간의 낌새라도 보이면 외가 친적 친지 다 답아다가 사상 검증 할텐데
가까이서 보면 희극인데 멀리서 보면 비극이네ㅋㅋ
한심한 나라의 한심한 노예
가난해지기 위한 노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