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홍
1950년 한국전쟁 발발 당시 경북대 의대 전신이었던 대구 의과대학 재학중 홀어머니곁을 떠나 학도병으로 자원입대
7사단 위생병으로 복무 중 평북 덕천에서 중공군 대공세에 중상자들과 함께 후퇴하는 사단과 단절되어 포로가 됨
1950년 11월 27일부터 1953년 8월 17일까지 33개월의 기간동안 벽동, 선천, 천마, 화풍, 강동에서 포로수용소 생활
1953년 포로 송환으로 귀환한 박진홍을 비롯하여 7,861명의 국군포로들은 북한군 포로소용소로 사용됐던 통영 한산 용초도로 보내져 CIC방첩대에게 사상검증 심문을 받게됨.
군은 갑, 을, 병 세부류로 분류하였는데
갑종
“사상이 온건한자로서 군에 복귀시켜 재복무해도 무방하다고 인정된 자”
을종
“포로에 대한 악질행위를 감행했거나 남하시 특수지령을 받은 자로서 개정의 정이 없어 의법 처단함이 타당한자”
병종
“사상 또는 건강면으로 보아 제대 또는 귀향시킴이 가능한 자"로 분류
해당 사상검증 중 가혹한 심문에 자살하는 귀환포로들도 존재하였으며, 심문을 통하여 갑종 794명, 을종 593명, 병종 6,460명으로 최종 분류
을종으로 분류된 593명중 자료상에서 처형된 귀환포로의 수치는 124명으로 기록됨
심문도중 자살한 국군포로의 숫자는 알려지지않음.
박진홍은 갑종으로 분류되어 다시 7사단에 재복무, 1954년에 육군병장으로 제대. 1960년 경북대 의과대학을 졸업하여 개원의로 생활함
관련 회고록
국군만 해도 귀환한 포로들에 대한 조사가 가혹했는데 북으로 송환된 북한군 포로들은 뻔하지 뭐
숙청될 빌미를 안 잡히려면 본인들이 명분을 만들었어야 했겠지
83년도 중국 여객기 불시착때 중국도 그짓은 안했음 상상이상임
그 사건과 한국전쟁 포로송환 일화들을 비교하는건 쫌...
중공은 6.25 몇 년 뒤에 대약진운동했자나 물리학배웠다고 모가지 ㅋㅋㅋ
아 문혁때던가? 미안미안
광신자들의 생존을 위한 간증이라고 봐야
'가혹한 심문'이라는게 어떤건지 궁금함 .. 줘패거나 찬물끼얹거나 하진 않았을거 아냐
https://youtu.be/TZ3C9JnergM?t=1711
심문받다가 사망한 포로도 있다는 증언을 보면 그 이상의 취조가 이루어짐
허허... 순진하노 한번 찾아봐라
안타깝네... - dc App
미개하다 싶지만 당국 입장 충분히 이해는 감
미국도 자국포로들에 대한 FBI 조사가 이루어졌던 때니 뭐...
진짜 세뇌해서 보내거나 섞어서 보내던 그런 시대니까 ㄹㅇ... - dc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