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통고는 거의 반사적이라 할 만큼 즉각적인 반향을 일으켰다 그 이튿날로 베델 스미스 장군이 나를 찾아와서 아이젠하워 장군이 내가 건의한 대로 작전을 추진하기로 결정했다고 전해 왔다. 미군 3개 사단을 낙하시키고 그 대신 그 수송장비를 영국 제21집단군을 수송하는 데 사용하기로 되었다는 것이었다. 미국 제12집단군의 병참보급의 대부분은 내 권한 하에 미 제1군에 돌리기로 되었다고 한다.


이렇게 결정되었다는 것을 듣고 패튼 장군은 브래들리 장군의 동의를 얻어 최고사령부가 그 정비 수단을 감축시키거나 정지시키거나 하는 일이 없게끔 미 제3군으로 하여금 모젤 지방 너머까지 휩쓸어 들어가게 하기로 결정하였다는 것을 나는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9월 15일에 아이젠하워 장군이 나에게 이런 서한을 보내 왔다.


"본관의 희망으로는 다른 병력으로 하여금 주요지점을 통과하여 전선 측면의 전략적인 지역을 점령하게 하면서 영미합동군으로 하여금 직선루트를 통하여 신속하게 베를린으로 진격시키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모두가 보조를 같이한 병행작전이어야 할 것입니다."


나는 여기에 대하여 심사숙고한 다음에 이런 뜻의 회신을 보냈다.


"독일을 향하여 모든 지상군이 꼭 보조를 맞추어 진격한다는 작전은 불가능한 것입니다. 정비 수단과 전반적인 행정 사무의 실정으로 보아서 그러한 작전이 신속하게 수행될 수는 없습니다. 나의 생각으로는 가장 좋은 목표는 루르 지방이며 그 다음에 북부루트로 해서 베를린으로 진격하는 것이 좋을 듯 합니다. 장군께서 이에 동의하신다면 제21집단군과 9개 사단으로 편성된 미 제1군으로 하여금 이를 담당하게 하는 것이 적절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구성된 병력에는 그 정비에 필요한 모든 것을 지급해 주어야 할 것이며, 그 밖의 병력은 그 뒤에 남을 일에 대하여 최선의 힘을 다해야 할 줄로 압니다. 모든 병력을 한꺼번에 병행하여 독일로 전진시킨다는 것은 나로서는 도저히 생각해 본 일도 없고 또 생각할 수도 없습니다. 독일에 대한 전면공세의 루트를 루르 지방을 거쳐 베를린으로 잡는다는 것만은 장군의 의견에 찬성하는 바 입니다. 그런데 장군의 구상을 내가 잘못 이해한 것이 아니라면, 나는 의견을 같이할 수 없는 점이 한 가지 있습니다. 장군의 서한내용으로 보아서는 제21집단군과 제12집단군의 각 사단을 제외한 모든 사단을 현재시점에서 정지시킬 수 있으며, 수송수단과 베를린으로의 직선적인 진격을 도울 수 있는 모든 것을 그 사단들에서 빼돌려 쓸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습니다. 내가 확인하고 싶은 것은 장군께서 휘하의 집단군으로 하여금 베를린으로 진격하게 하고 브래들리 장군이 자기 휘하 병력의 좌측병력을 가지고 각하의 병력을 지원하기 시작하게 되는 때는 우리의 나머지 병력은 그 진격의 성공을 확보할 수 있는 위치에 서 있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장군께서도 아시다시피 나는 이 전투의 처음부터 끝까지 우리 전선의 좌측에 중점을 두어 왔습니다."


아이젠하워 장군의 회고록에 의하면 그는 이에 대하여 이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이었다.


"몽고메리 장군이 제안한 바와 같이 독일의 중심부를 향하여 직선코스로 진격하게 되면 반드시 아군이 상당한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었다. 나는 그런 방법을 쓴다는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몽고메리 장군은 가용가능한 전력을 넘겨집어 진격을 정지시키거나 후퇴시켰다가는 우리 전선의 나머지 지역에 있어서는 있어서는 안될 사태가 벌어진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러한 생각을 하고 있던 아이젠하워 장군에게 나는 그 자리에서 회답을 보냈다.


"장군과 나의 구상이 같다고는 할 수 없으며 장군께서는 이 문제에 있어서 내가 아주 솔직하기를 원하실 줄 압니다. 여태까지도 주장해 온 일입니다만, 나는 우측병력을 그 선에서 정지 시켜놓고 좌측병력을 전진시키라고 해 왔는데 우측병력이 자체 역량을 초월하여 전짘하고 있으므로 우리 군이 그만큼 신축성을 잃고 있는 것입니다. 장군꼐서 루르 지방을 장악하시려면 모든 것을 좌측에 집중시키고 다른 지역에서는 모두를 정지시켜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 하시지 않고서는 루르 지방을 장악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자 아이젠하워 장군은 사령부에서 회의를 소집했다. 나는 전선을 떠나지 않기로 결심하고 드 귄간드 참모장에게 내 대리로 참석해 달라고 했다. 최고사령부에나 미군장성들 사이에서는 내가 전쟁수행에 있어서 그들과 이견이 많기 때문에 평판이 좋지 않다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다른 의견이 많을 때는 그 자리에서 떠나 있는 것이 상책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