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기준으로 일단 의병이라고 하면 대표적인 게 왜란 때와 구한말임.
왜란의 경우에는 지역 양반 또는 유생을 중심으로 제승방략 체제에서 낙오된 평민 사병들을 수습해서 병력을 편성했고 후에는 관군으로 흡수되어 나름 7년간의 전쟁을 이끌어가게 됨.
구한말의 경우에는 위정척사, 척양척왜, 민비에 대한 복수 등을 외치며 남인계 양반 일부가 을미의병이니 갑오의병이니 을사의병이니 정미의병이니 하며 무력투쟁을 주도함. 이들은 1907년을 기점으로 복벽주의를 지향하며 일부는 일본군에 쫒겨 남하하다 남한 대토벌 작전으로 전멸하고 일부는 북상해서 지금의 북한 지역 의병 또는 남만주, 연해주 지역 의병과 연힙하게 됨. 이들이 우리 국군의 뿌리 중 하나라는 신흥강습소를 설립하는 주역 중 하나임.
이들은 이념, 출신 성분 등의 이유로 실력양성운동과 매우 데면데면한 사이로 각자 따로 놀며 자기들 나름대로의 운동을 전개함.
그러다 1919년 대격변 패치가 일어남. 고종이 승하하면서 남인계에서 내려온 위정척사 계열 복벽주의자들이 복벽주의를 버림. 이들은 고종 승하와 기미독립선언 이후 극적으로 실력양성론자들과 연합하고 차후 독립할 조국은 민주공화정을 지향한다는 대명제에 합의함. 그 결과가 한성임정, 상해임정, 연해주임정과 이들을 통합한 상해임정임.
그리고 연합과 임정에 합류한 복벽주의자들의 후예는 훗날 대한독립군, 북로군정서, 서로군정서를 지나 조선의용대, 광복군, 조선의용군 등으로 이어지고 분단된 조국에서 각자의 이름을 가진 국군과 당군을 창군하는 근간이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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