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평화통일공세는 1981년 9월 30일 당시 전국인민대표대회장 예젠잉이 이른바 「대만조국복귀 및 평화통일을 위한 9개방안」을 발표함으로써 더욱 구체적인 형태로 나타나게 된다.
1. 국·공양당의 합작을 위한 교류개시
2. 친척방문, 통상, 학술, 체육교류를 위한 편의제공
3. 통일후 대만의 특별행정구화와 자치권 및 군대 보유 보장
4. 대만의 사회·경제 제도 유지 및 외국의 대대만 투자 보장
5. 대만당국 및 각계대표의 중국지도부 참여
6. 대만에의 재정지원
7. 대만주민의 대륙왕래 및 이주허용
8. 대만기업인의 대륙내 경제활동보장
9. 대만의 국정논의 참여환영
소위 「제3차 국공합작제의」로 불리우는 이상의 9개 제안은 중국이 제시한 기왕의 통일방안을 포괄적으로 정리한 것으로, 중국의 통일에 대한 합리적이고 온건한 이미지를 국내외적으로 부각시키고 미국과 대만의 무기판매 등을 통한 기존유대관계를 약화시키며 대만측의 반응을 탐색하는 데에 그 주된 목적이 있는 것으로 평가되었으며, 대만측을 통일경쟁측면에서 궁지에 빠뜨리는 역할을 하였다. 이후 1983년 6월 덩샤오핑은 대만의 평화통일을 위한 새로운 구상으로 이른바 「화평제안」을 제시하였다.
1. 통일 후 베이징은 대만에 군대를 파견하거나 대만을 접수하는 것은 아니다.
2. 통일 후 대만은 독립적인 입법권을 가질 수 있다.
3. 통일 후 대만은 독자적 사법권을 가질 수 있다.
4. 통일 후 대만은 외교권 및 대외 경제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
5. 통일 후 대만은「중화인민공화국」의 호칭을 사용할 필요가 없다.
6. 통일 후 대만은 삼민주의(三民主義) 또는 자본주의를 실시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중국측의 집요한 평화통일공세에 대해 대만측은 3불정책에 입각하여 일체의 협상을 거부하며 냉담한 태도를 견지하였다. 이에 따라 중국은 정책적인 면에서 기왕의 제안들을 집약하여 이른바 「1국 2체제」를 주장하면서 평화통일공세를 더욱 강화하게 된다. 한편 대만정부의 3불 정책에도 불구하고, 대만과 중국간에는 1970년대 후반부터 홍콩을 통한 민간차원의 교류와 간접무역이 성행하기 시작하여 80년대에 2억달러수준에 달하던 쌍방의 교역량이 1985년에는 약 5배로 늘어나는 등 민간차원의 교류와 접촉에 대한 요구가 증대되기 시작하였으며 이에 따라 국민당 정부는 국내의 자국기업가와 해외화교들로부터 명확한 입장표명을 요구받게 되었다. 이에 국민당 정부는 1985년 7월 대대륙교역 3대원칙 즉, 직접통상금지·직접상담금지 및 간접무역불간섭을 정부의 공식입장으로 발표하여 정부차원의 교류와 민간차원의 교류를 구분하고 또한 1986년 5월, 「중화항공」항공기의 대륙피납사건이 발생하자 직접 그 반환협상에 나섬으로써 기존의 3불 정책에서 후퇴하여 실익과 현실을 고려한 전환적인 자세를 보이기 시작하였다. 이어 8월에 당시 장경국 총통은 중국 측이 1981년 이래 제의하고 있던 이른바 「제3차 국공합작제의」에 대해 다음의 6개항을 제시하였다.
1. 북경과 대북회담의 기초는 중국을 진흥시키는 것이어야 하며 당파적 이익을 위한 것일 수 없다.
2. 통일 후의 국기는 국부(國父)인 쑨원이 제정한 청천백일기로 한다.
3. 중국 동북부의 3개 성을 국민당이 관리하여 3년내에 국민소득을 2천달러로 끌어 올리고 실패하면 그 국민당 인사를 파면한다.
4. 베이징과 타이베이 양측의 군인은 정치에 관여하지 않는다.
5. 각 정당의 자유로운 활동을 보장한다.
6. 회담진행 시의 모든 관련기록을 즉시 공표한다.
이러한 제안은 현실적으로 중국 측이 받아들일 수 없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고 중국의 평화통일공세에 대한 역공세의 성격을 강하게 띰으로써 그 후 가시적인 협상은 이루어지지 않았으나, 과거 1·2차 국공합작에서 실패를 경험하고 중국측의 평화통일공세에 줄곧 수세에 처해있던 국민당정부로서는 경제적 자신감에 입각하여 통일의 주도권을 잡기 위한 대담한 역제의를 한 것이었다. 그러나 일면으로는 기존의 협상불가 원칙을 스스로 깨트린 것이기도 하였다.
출처
https://www.moleg.go.kr/mpbleg/mpblegInfo.mo?mid=a10402020000&mpb_leg_pst_seq=128903
대만·중국간 관개개선의 진전과 현황② < 법제 < 지식창고 : 법제처법제처www.moleg.go.kr그런데 중공 예젠잉이 제시한 9개 방안 중 9번 대만의 국정논의 참여환영 <- 이거 대로면 통일 후 중국 국기는 청천백일만지홍기 사용, 만주를 국민당이 관리하게 넘겨줄 것, 모든 정당의 자유로운 활동 보장 이런걸 받아들여야 하는데 단순하게 논리적으로만 보면......
그냥 옛날 고려마냥 명분만 통일이고 받을거 다받고 +@로 내륙도 달라는느낌이네 ㅋㅋ - dc App
현실적으론 독립선언 하는것도 벅차지
고려가 뭐임? 고려연방제? 고려연방제는 유럽연합 같이 남북한도 고려민주연방공화국이란 국가연합 만들자는거임. 물론 북괴가 저거 하는 조건으로 주한미군 철수 내걸었지만
ㄴㄴ 옛날 몽골 생각이나서 - dc App
원 치하 고려
서희 얘기하는거 아니냐
솔직히 오성홍기 진짜 쌉노근본이긴 해.. 어느쪽이든 통일중국 됐으면 청천백일기 쓰는게 정통성면에서 욕심나겠지
모두가 인정하는 민주주의 중국이라면 합병할만 하지 ㅋㅋㅋㅋ
현실은 1984 짱깨라는것
한마디로 좆이나 까잡수라는 거네
통일 후 대만은 독립적인 입법권을 가질 수 있다. 통일 후 대만은 독자적 사법권을 가질 수 있다. 통일 후 대만은 외교권 및 대외 경제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 통일 후 대만은「중화인민공화국」의 호칭을 사용할 필요가 없다. ㅡ이러면 지금 현상태랑 다른게 뭐임? 군대해산? 딱봐도 중국이 안지킬것 같은데
대만을 합병하기 위한 중간 단계일 뿐이지. 저렇게 만들어놓은 후 년단위 텀 두고 슬슬 요리하다가 홍콩처럼 집어삼키기. 이런식으로 다른나라 단계적으로 차근차근 집어삼켜서 종국에 식민지 만들거나 합병하는건 제국주의 시대부터 유행하던건데, 이거 하고있는게 이젠 중국밖에 없어서 새로워 보일뿐임
그냥 "니들이랑은 대결만이 남아있을뿐이다"라는걸 고급스럽게 돌리고 돌려서 말한거네. 중공이 저걸 들어줄리가 당연히 없으니.
단순히 논리적으로 따지면 국정논의만 하면 되고 대만 말대로 할 이유는 없지 그래서 저리 반응한거고 니가 쓴 글 막줄에도 적혀 있네 아예 협상을 시작도 안하는 협상불가 방침을 최초로 깬거라고
민주주의 중국으로 공산당-국민당 양당제면 국민당 입장에서도 나쁜건 아니지 - dc App
근데 이게 먹힐라면 70년대는 됐어야지 공산당이 개혁개방 다 했는데 국민당이 뭔 힘으로 거대양당을... - dc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