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요르단 국왕 압둘라 1세는 하심가문이 메카를 상실하자 팔레스타인 전역으로 벌충하려 했다. 요르단을 막으려고 이집트가 참전했고, 상호 견제탓에 머리가 따로 놀았다. 요르단은 서안지구를 합병하고 현지 토호를 숙청하고 왕국 관리를 파견했다. 압둘라 1세는 토호 가문 젊은이의 총에 암살되었는데, 이집트가 사주했다는 음모론이 있다.
2. 압둘라의 아들 탈랄 1세는 정신병으로 빠르게 양위했는데, 일설에는 반영적인 탈랄1세를 그의 아들 후세인 1세가 영국과 손잡고 이방원해버리고 권좌를 차지했다는 음모론이 있다.
3. 후세인1는 시리아의 수작으로 암살 시도를 여러번 겪었고, 이라크의 하심가문이 혁명으로 총살당한걸 보았다. 그는 시리아와 이라크를 공격하고 싶었으나 영국이 만류하였다. 그나마 이집트의 나세르와는 사이가 좋았는데, 문제는 6일 전쟁 참전으로 서안을 상실하였다.

4. 6일 전쟁 이후 요르단은 plo의 주요 거점이 되었는데, 한번은 plo를 공격한 이스라엘군을 plo-요르단군이 격퇴하였다. 그러나 plo의 인민전선은 급진적인 성향으로 항공기 납치를 수차례 시행했고 심지어 요르단의 정권교체를 주장했다. 파타는 이스라엘 게일라에 열중하는 동시에 요르단의 통제에서 독립적인 상태를 추구했다. 요르단군이 plo 게릴라에 총격을 가하고 보복으로 요르단 장교의 목이 잘리고 걷어차였다는 소리까지 나왔다. 결국 후세인 1세는 plo를 숙청하고 추방한다. 이게 검은 9월.

5. 검은 9월 당시 아랍은 plo의 전멸을 원치 않았고, 시리아는 전차 부대를 보내고 이라크는 개입을 암시하며 경고했다. 이스라엘은 후세인이 실각하면 요르단에 개입할 생각이었다. 나세르가 이를 중재하여 plo는 레바논으로 추방된다. plo 강경파는 검은9월단을 결성, 당시 요르단 총리를 암살하여 보복했다.

6. 4차 중동전쟁 전 후세인은 골다 메이어에게 이집트, 시리아가 전쟁준비를 하고 있다며 경고했다. 메세지를 전한것도 아니라 면대면이었지만 이스라엘은 열등한 아랍을 쉽게 꺽을것이라 자만했다. 아마 요르단을 배신자라 부르는 이유는 이것인듯 싶다.


틀린 거 있을 수 있음. 유진 로건의 아랍이랑 6일전쟁, 욤 키푸르 전쟁 혹은 위키 여기저기 보던게 좀 섞인거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