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m.ohmynews.com/NWS_Web/Mobile/at_pg.aspx?CNTN_CD=A0002945516#cb한 해만 3000명 사망... 1956년 한국군엔 무슨 일 있었나'1950년대 군의 이른바 후생사업의 한 단면' 논문을 통해 본 당시 한국군 실태m.ohmynews.com
후생사업의 비극적 단면은 강제적으로 장기복무를 해야했던 병사들 사례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군은 후생사업에 투입할 장기 노동력을 확보하기 위한 방법으로 병사들을 강제적 장기복무로 내몰았다. 휴전협정 체결 후 1954년부터 1968년 1.21사태 이전까지 병사 복무 기간은 36개월에서 30개월로 점차 단축됐다. 하지만 후생사업을 적극적으로 벌였던 일부 부대 실상은 이와는 달랐다. 위원회는 후생사업에 동원돼 무려 64개월 동안 복무 중 사망한 전OO 하사 사건을 예로 들었다.
1955년 1월 훈련소로 입대한 고인은 같은 해 10월 제1군사령부로 전속됐다가 제7사단 8연대 2대대로 전입했다. 이후 후생사업에 동원된 고인은 당시 법정 복무기간인 33개월의 2배가량인 64개월을 복무하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군 당국이 작성한 전 하사 사망 기록에는 '불우한 가정환경을 이유로 제대를 희망했으나 제대하지 못함을 비관해 총기 자해'했다고 기재돼 있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던 것일까.
사망 당시 고인의 계급은 하사였다. 당시 적용되던 육군규정에는 '초등학교 미수료자, 체격 등위가 병종 이하인 자'는 하사관(현재 부사관)이 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었는데, 고인은 체격조건 미달로 군 면제를 받았던 이력까지 있었다. 하사관은 고사하고 입대조차 할 수 없었던 고인이 64개월이나 복무했던 것이다. 위원회가 고인과 비슷한 시기에 입대해 같은 날 1군사령부에 전속한 14명의 복무기간을 조사했더니 42개월에서 68개월까지 천양지차였다. 그런데, 전역 당시 계급은 동일하게 모두 병장이었다.
비밀은 이랬다. 군이 하사관 후보생이란 제도를 악용해 병사를 하사로 진급시켜 장기복무 시킨 다음 전역직전 하사 계급을 해임, 병장으로 강등시켜 전역시켰던 것이다. 고인도 사망당시 계급은 하사였지만, 만약 제대를 했다면 병장으로 전역했을 터였다. 당사자들도 왜 자신들이 강등되어 전역했는지 알지 못한다고 위원회에 진술했다.
1954년 7월 독립 부대장급 이상 지휘관(주로 사단장)에게 병사 만기 전역 발령권이 부여된 이후, 일부 지휘관들은 이 권한을 악용해 병사들에게 강제적으로 하사관 후보생으로 지원하게 해 장기복무를 시켰다.
전역을 희망하는 병사들을 굶기거나 구타하는 방식으로 강제로 장기복무를 지원하게 했고, 이렇게 확보한 병사들을 '숯 굽기' '벌목' '약초 캐기' 등 후생사업 노역에 내몰았다. 자신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후생사업에 투입되어 전역일도 기약할 수 없었던 병사들은 자포자기 상태가 됐다. 매년 2000명선을 크게 웃돌았던 1950년대 중반 군인 사망자 통계는 이렇듯 군 후생사업과 무관하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논문은 "군의 후생사업은 당시 시대적인 부정부패의 모습이 군에서 나타난 측면도 있지만, 군 지휘관의 지휘권이나 전역명령권 등을 통한 포괄적인 인적 지배를 통하여 일종의 '노예제도 처럼 운영된 경우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국가가 전면적으로 이 사업의 실상과 피해를 조사하여 망인의 명예 회복과 유족에 대한 보상 등 해법을 찾아야 한다"고 권고했다.
매년 2000명 비전투손실 ㅋㅋㅋ 미쳤냐고
육군으로 군생활 후 전역증빙 못하거나 재징집 당할까봐 해공군 들어가셨던 분들 떠오르네 제일 끔찍한건 탈영병 잡는 헌병대 앞에서 귀가증 제시했다가 실적 채우려고 귀가증은 눈앞에서 찢겨지고 재입대당했다는 회고였는더ㆍ
헐... 개미친..
남괴시절이네 북괴 청년돌격대가 이걸 벤치마크 한게 아닌가 싶을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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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씩 줄어든거지 90년대에 전역특명이랍신다고 특정 요일에만 전역가능하게 하고 대기하던 시절도 있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