념글에 용문산 파로호 전투가 9개 사단을 무찌른 전투라고 하는 글이 있길래 황당해서 대략적으로 설명해봄
1. 중공군 63군은 애초에 견제 목적의 양공 임무로 중서부전선 6사단 정면에 투입된 부대임
1) 5월 공세 중공군 주공부대는 현리에 투입된 12, 15, 20, 27군임
2) 이 중공군 주공부대의 공격 시점은 5월 16일 야간임. 반면 63군의 6사단 정면 공격은 그로부터 48시간이나 지난 18일 야간부터 시작됨.
이 시점이면 중공군 주공부대가 현리에서 3군단 붕괴시킨 뒤라서 주공부대 식별은 오래 전에 끝났고 미 3사단이 속사리에 제때 도착해서 돌파구를 봉쇄하느냐 마냐가 초미의 관심사인 상황임
3) 따라서 63군에게 부여된 임무는 미 9군단이 전력을 염출해서 동부전선으로 전환하지 못하도록 견제하는 데 있지 강력한 공격을 수행할 상황이 아님.
4) 실제로 용문산 전투에서 63군의 공격은 18일 야간~20일 새벽까지 약 36시간 정도 이어지는데, 이는 4월 공세 당시 중공군 주공부대가 국군 1사단 정면에 가한 약 1주일 간의 지속적인 공격(4월 22일 야간~29일 새벽)이나 동 기간 중공군 조공부대가 사창리-가평 방면에서 6사단과 영연방 27여단에 실시한 약 3일의 공격 기간(4월 22일 야간~25일 새벽)과 비교해보면 현저히 짧은 기간의 공격임을 확인 가능함
2. 게다가 중공군 63군은 용문산 전투에서 커다란 타격을 입은 것도 아님. 63군은 18일부터 20일까지 짧게 6사단을 공격한 후 물러났음.
그 뒤 한계 전투(미 2사단 돌파구 좌견부 방어) 운두령 전투(미 3사단 돌파구 첨단 봉쇄), 대관령 전투(국군 1군단 돌파구 우견부 방어)로 5월 공세가 대실패하고 유엔군이 전면 반격으로 돌입하자 문산의 북한군 1군단이 국군 1사단 공격으로 붕괴하면서 측방이 노출된 공산군 방어선이 서에서 동으로 도미노처럼 무너지는데, 이 상황에서 바로 철원 남쪽까지 내빼버린 부대가 63군이었음.
그리고 5월 말부터 6월 초까지 63군은 철원-금화에서 미 1군단 정면에 지연방어 임무를 맡고 투입돼서 자체 집계로 1만여명 이상의 엄청난 손실을 입음. 6사단의 용문산 전투에서 커다란 타격을 입었으면 이런 임무에 투입될 여력이 없었다고 보는 게 맞음.
3. 실제로 6사단이 용문산 전투 기간 전투상보로 보고한 적 사살전과는 5000여명인데 반해 포로 획득 전과는 단 "9명"에 불과함. 국군 1사단이 4월 공세 파평산 전투 기간 약 8000여명의 사살전과와 270여명의 포로획득 전과를 보고한 것을 감안하면 6사단의 용문산 전투 사살전과는 포로획득 전과에 비해 지나치게 높아 의심스러운 부분이 적지 않음.
짧게 쓰려고 했는데 쓰다보니 길어지네. 용문산 전투 이후 지암리 전투와 파로호 전투도 그 글에서 과장된 부분이 너무 많은데 이따가 쓰든 하겠음
이제 너 짱깨됨
애초에 그정도 전투였으면 미군도 공식전사에 언급을 해줬겠지 백마고지 전투는 되있거든. 근데 일언반구가 없다?
조선족이라는 댓글이 달리겠군
무찌른게 전멸시켰다는 말은 아니잖아 격퇴시킨것만해도 큰 전공 아님? 거기다 주로 알려지기로는 63군 3개사단만 격퇴했다고 알려져있는데 63군 말고 다른 군단 상대로 한 전과가 더 크다는게 잘 안알려져서 그런측면에서 축소되었다고 하는거지 - dc App
1. 그렇게 따지면 4월 공세에서 공산군 공부대로 투입된 64군이랑 북한군 1군단 방어한 1사단 파평산 전투가 훨씬 큰 전공임 2. 다른 군에 대한 전과도 과장임. 짧게 설명하면 지암리 전투에서 격멸된 중공군은 60군 180사단 단 하나고 그나마도 미 9군단의 군단 차원에서의 공격작전이 거둔 성과지 6사단 단독의 성과가 아님. 미 24사단과 미 7사단의
전차-차량화보병 TF가 양측방으로 고속진출해 180사단의 퇴로를 차단한 게 180사 섬멸 성공의 핵심 요인인데 이걸 6사단만의 전공으로 놓으면 이상하지. 프랑스 전역에서 클라이스트 기갑집단이 아니라 A집단군에게 성공을 돌리는 게 사리에 맞다고 볼 사람은 없을 거임.
그부분은 인정 근데 합동작전이기 때문에 좀더 저평가된 부분이 있다고 봄 합동작전에선 내 전공을 더 내세우는게 당연한거고 그건 미국도 마찬가지라서 미국측에 일언반구도 없다고 전공이 없다? 그건 아니라고 봄 - dc App
5월 공세에서 6사단 괜찮게 싸운거 맞음. 근데 그럴 거면 180사단 포위섬멸 가능하게 북한군 1군단 방어선 조기에 붕괴시킨 1사단 전공이 더 큼. 북한군 1군단 방어선 붕괴-우측방 노출된 좌인접 65군 패주-65군 도망가는 거 본 63군 바로 빤쓰런-도망 타이밍 못잡은 60군 180사 노출된 좌우측방으로 미 차량화 TF 투입 포위섬멸로 스노우볼이 굴러감.
좀 많이아쉬운 주장인거같은데 2는 차라리 중국군이 입은 피해통계가있으면 그걸로 주장하는게 더신빙성있을거같고 3은 솔직히 단순히 포로없으니까 의문이든다 정도밖에안되보임
중공군 춘계공세와 이어지는 유엔군 반격에서 63군의 피해 집계가 언급되는 건 딱 두 번임. 4월 공세 때 영 29여단 정면 공격에서 약 1만명, 5월 말-6월 초 미 1군단 정면 지연방어 약 1만명. 63군이 약 3만명 규모인 걸 감안하면 저 두 전투로 2만명을 날려먹은 건데, 그럼 그 중간의 용문산 전투에서 대타격을 입었다고 보기 어려움.
ㄴ 그렇다면 보충병이없었다는 가정이있다면 그럴수도있긴하겠지만 상대가 중국이라 워낙 풀린게없으니 또미지수가되긴하네...
파로호 명칭 바꿔야 한다고 했던 사건때문에 유명해진거지 그전에는 그냥 625 중에 일어난 방어전투 중에 하나였음. 철원 사람도 몰랐을정도로 유명하지 않았음
파로호 명칭이 현지주민들 사이에서 구전되던게 공식으로 채택된건지 아니면 위에서 이래라고 지시내려서 생긴 명칭인지 궁금하네 전자라면 실제로도 꽤 죽었을거라 봄
이거 착각이 좀 많은 건데, 용문산 전투와 화천 추격전(파로호 전투)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음. 그리고 화천 추격전은 국군 공간사에서도 9군단이 부여한 중공군 주공부대 퇴로차단 임무는 실패했다고 인정하는 전투야. 5월 공세 전체가 대실패긴 한데 파로호에서만 엄청나게 죽어나간 그런 전투는 아님. 그냥 전선 전체에서 마구 죽어나간 거지.
중국 공간사에 내용없다 들었을땐 뭐 패배했으니 그럴려나 했는데 미군 공간사에도 별내용 없다 소리듣고 아 과장되었을수도 있겠구나 생각들었지ㅋㅋ 중국이랑 이거 가지고 드잡이질 하고 있다면 중국판 청산리 전투 논쟁이 되었을지도
애초에 지암리 포위전에서 괴멸된 중공군 180사부터가 철수 엄호를 위해 투입된 부대 중 하나였으니 뭐... 그 결과가 화천 추격전에서 다대한 전공이 있음에도 실제론 적 주력을 포위망에 가두지 못했다는 평가가 나오는 거고. 애초에 공세이전 들어가자마자 펑더화이가 손절 친 상황이었으니 어쩔 수 없다 싶음.
6사단이 지암리에서 전환돼서 구만리발전소 방면 공격 개시한 시점에서 이미 중공군 주공부대 후위가 구만리발전소 퇴로로 빠져나가고 있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