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초 미군이 참전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한국에서의 전선 상황이 급격히 붕괴되는 상황에도 불구하고 워싱턴에서는 ‘38도선 돌파 및 북진’이라는 전선 상황과 전혀 어울리지 않은 정책적 검토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1950년 7월 1일 국무부의 동북아시아국장인 존 앨리슨(John Allison)이 한국전쟁 이후 한국에서의 38도선 돌파에 따른 무력 재통일을 최초로 제기하였다. 앨리슨은 7월 1일 트루먼 대통령의 대한정책에 포함될 정책사항들을 고려함에 있어 그의 상관인 러스크에게 보낸 각서에서, “인위적인 분단이 38도선에 존속하고 있는 한 한국에는 어떠한 지속적인 평화와 안전도 있을 수 없다…만약 우리가 할 수 있다면…만주와 시베리아 국경에까지 곧바로 돌진해 나가고, 이것을 실행한다면 유엔 감시하에 한국 전역에서 총선을 실시해야 한다”라고 하였다.

미국 국무부의 극동담당차관보인 러스크는 앨리슨의 이러한 입장에 동의하였다. 또한 맥아더 장군도 육군참모총장 콜린스 장군과 공군참모총장 반덴버그 장군이 7월 13일 도쿄를 방문했을 때 참모들과의 전략회의에서, “북한군을 섬멸하기 위해 북한군을 격퇴할 뿐만 아니라 38도선을 넘어 그들을 추격할 의도가 있다”고 말하였다.



출처: 미국은 왜 한국전쟁에서 휴전할 수밖에 없었을까, 남정욱 저, 한국학술정보, 2010년, 213~215쪽


어째 74년 지난 지금도 딱히 틀린 말은 아닌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