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격 여부 결정은 모든 권력을 쥔 지방 징병 위원회가 결정했다. 이 위원회는 극히 민주적인 모음으로서 해당 지방에서 연령 36세 이상의 주민 3명 이상으로 구성되었다. 간단히 말하면 이들은 판결 대상인 젊은이들의 연상의 친구이거나 이웃이었다. 그들은 자발적으로 보수 없이 이 일을 맡은 사람들이었고 주 지사의 추천에 의해 대통령이 임명했다. 위원회의 일하는 품은 대도시의 딱딱한 관료적인 스타일에서 테네시 주 펜트리스 군과 같은 농촌의 극히 개방적인 것까지 천차만별이었다. 펜트리스 군에서는 유명한 앨빈 요크 상사가 의장을 맡고 있었다. 요크는 혼자서 독일병 25명을 사살하고 132명을 포로로 잡아 명예훈장을 받은 바 있는 제 1차 세계대전의 영웅이었다. 그는 자기 관할 하에 있는 젊은이의 문제에 대해 남다른 심정을 품고 일을 했다. 그는 1917년 군에 복무하기 전엔 "전쟁은 성서에 어긋난다"고 주장하고 종교적 이유로 처음에는 군에 복무하기를 거부했던 것이다. 그래서 징집 해당자가 반론을 제기하면 요크와 다른 위원들은 험한 산길을 넘어 그 젊은이 집까지 가서 현관 입구에서 그의 의견을 열심히 들어 주는 것이었다. (중략)
육체적으로 또는 정신적으로 적격 판정을 받은 대부분의 미국인은 자발적으로 조국을 위해 총을 쥐었다. 그러나 양심적 이유로 군무를 거부한 사람의 수도 비율로서는 적었다 할지라도 없었던 것은 아니다. 입대하라는 명령을 받은 1002만 2367명 가운데 4만 2923명이 종교적 교육과 신앙상의 이유에 의한 양심적 병역 거부자로서 공식적으로 분류되었다. 양심적 병역 거부자 가운데 약 2만 5000명은 위생병으로서 또는 무기를 들지 않아도 좋은 다른 부서에서 복무하는 데 동의했다. 기타 약 1만 2000명은 군에 복무하는 대신 151군데의 민간 공공 봉사기지에서 비군사적 일에 종사했다. 나머지 6000명은 그 어떠한 임무에도 종사할 수 없다고 거부하여 연방 형무소에 수감되었다. 이들은 대부분이 여호와의 증인, 퀘이커 교도, 메노파 교도, 브레드렌 교회 파 교도들이었다. 옥중에서 한 병역 거부자는 자기와 같은 종파의 신도 중에서 의외로 많은 사람이 진주만 공격 이후에 군에 입대할 것에 동의했다는 사실을 알자 전쟁 전의 평화주의자 가운데 전쟁에 나간 자는 마땅히 고발되어야 한다고 신랄하게 주장했다.
분명한 종교적 이유에 따른 양심적 병역 거부자는 정치적 또는 철학적 이유에 입각해서 징병 등록을 거부했던 사람들보다는 징병위원회와 일반의 동정을 샀다. 전시 중에 가장 유명한 양심적 병역 거부자였던 배우 류 에어즈는 철학적 평화주의자로서 "서부전선 이상 없다"라는 영화에서 환멸을 느낀 독일군 병사의 역을 맡았던 것으로 유명했고 그의 평화에의 신념도 이런 사실에 다소 연유하고 있었다. 에어즈는 민간 공공 봉사 기지에서 목재 벌채 일을 하게 되었지만 그에 대한 일반 대중의 적의가 점고되었기 때문에 많은 극장이 그가 출연한 영화의 상연을 거부했다. 제작자들은 "천생의 악인(Born to be Bad)"이라는 에어즈 주연 영화를 주연자를 바꾸어서 재촬영했을 정도였다. 후에 에어즈는 종군목사 부대와 함께 필리핀과 레이테 섬으로 나가 포화 속에서 빈사자와 부상자를 돌봄으로써 이름을 날렸다.
민간 공공 봉사기지에서 일하는 양심적 병역 거부자는 대개 교육자, 사회사업가, 예술가, 그리고 고도한 전문적 훈련을 받은 인사들이었다. 그들 중에는 정신병원 근무를 명령받은 자도 있었는가 하면 약 500명은 새 혈청을 테스트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티푸스균을 가진 쥐를 몸에 달고 다녔고 말라리아에 걸리는 역할을 지원하기도 했다. 그러나 대부분은 목재 벌채나 도로 건설 등 육체노동에 동원되었다. 이러한 일들은 그들의 재능에 적합하지 않았고, 또 사회적으로 유익한 일을 하고자 하는 그들의 희망에 어울리는 것도 아니었다. 스탠포드 대학의 화학 연구원 돈 데볼트 박사는 고랑 파는 일에 동원되었는데 틈틈이 페니실린 연구를 했더니 "반항적 기피자"용의 특별기지로 보내지고 말았다. 그는 징병국에 페니실린 연구를 완성하는 데 도움을 달라고 탄원했지만 무시된 채 계속 하수도 파기 노동을 강요당했다. 그가 그 명령을 거부하고 연구에 전념할 것을 선언하자 징병국은 그를 마침내 투옥하고 말았다.
임금도 받지 못한 채 공짜 노동을 하면서도 식사와 옷가지류까지 자비 부담이었던 기지 내의 양심적 병역 거부자들은 기지의 군대적인 규율에 분통을 터트렸다. 어떤 때는 그 욕구불만이 폭발하여 파업을 하기도 했고 인도의 간디에게서 비롯된 소극적 저항전술을 쓰기도 했다.
연방 형무소에는 양심적 병역 거부자가 복역수 6명에 1명꼴로 수감되어 있었는데 이들은 파업과 단식투쟁을 벌여 인종차별, 우편검열, 가석방에 대한 제의 등에 항의했다. 코네티컷 주의 덴버리 교정 교육기관에서는 불만을 품은 18명의 양심적 병역 거부자가 135일 간에 걸친 장기 스트라이크를 강행함으로써 식당 내의 인종차별을 철폐케 하는 데 성공했다. 이 전술은 매우 효과적이었기 때문에 같은 양심적 병역 거부자 가운데 수명은 전후에 시민권운동을 할 때 이것을 이용했다. 형무소 당국은 중죄범을 다루는 데는 이력이 나 있었으나 이런 사람들을 수감하기는 그때가 처음이어서 어찌 할 바를 몰라했다. 서부에 있는 한 형무소 교도관은 "단순한 살인범이나 은행 강도만 있던 옛날이 그립다"고까지 극언했다.
살인범과 은행 강도들조차도 양심적 병역 기피자들의 동기에 대해서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어떤 양심적 병역 거부자는 악명 높던 살인범 루이스 렙케에게 자기가 왜 뎀버리에 수감되어있는가를 설명했다. 살인 조직의 보스 렙케는 그가 어떤 죄를 범했는가를 잘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돌연히 사정을 알게 되자 믿기 어렵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물었다. "허허, 사람을 죽이지 않는다고 해서 당신을 여기에 처넣었단 거요?"'
-로날드 H 베일리. (1982). 미국의 전시생활. 서울: 타임라이프. (원서출판:1977).
여증갑 ㅋㅋ;
사이비는 위생병으로도 못쓰네...
이걸 터트려야되 말아야되
터트려라 븅신아. 정보글이라고 가져와도 지랄이네.
80년대 운동권 애들 전술이 어디서 나왔나했는데 이런데서 나왔구만ㅋ
지들끼리 뻘글친목 성인물사진 올리는건 안터트리면서 군사관련 정보글도 터트리네 마네 하네 걍 더 추해지기전에 완장넘겨라
눈까리가 돌고래만한 평면괴물새끼들 레닌초상화마냥 도배하는것부터좀 짜르시고
49.173, 103.10//헬름아 프록시 쓰니???
범죄자도 놀라네 ㅋㅋㅋㅋ 하긴 사람 안죽인다고 감옥에 넣는거니까
완장질 오진다 ㄹ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