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서 우리가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하는 사실에 착안하게 된다. 그것은 일본이 평화공작에 매달려 항복을 늦췄기에 자국 국민에게 엄청난 손해를 끼쳤을 뿐만 아니라 한반도의 분할을 가져왔다는 사실이다. 트루먼 대통령이 한때 기대했던 대로 일본이 적어도 8~9일 전에만 항복했어도 소련군의 한반도 진입을 막을 수 있었고, 그렇게 됐으면 한반도의 분할은 회피될 수 있었다. 이렇게 볼 때, 일제는 패망하면서도 우리 민족에게 또 한 차례의 엄청난 손해를 끼쳤다는 비난을 받을 만하다."
-김학준 단국대 석좌교수-
https://shindonga.donga.com/culture/article/all/13/2144113/1
일본이 8월 7일에만 항복했어도 분할 피할 수 있었다한반도의 분단은 지정학적 위치를 떠나서는 설명하기 어렵다. 새삼 말할 필요 없이, 한반도는 해양 세력과 대륙 세력 사이에 놓여 있어서 두 세력의 전략적 이해가 충돌하는 경우 어느…shindonga.donga.com"일본의 항복이 지연된 가장 큰 이유는 천황제 유지보다 한반도만큼은 계속 유지하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일본 지도부는 일본이 식민지 없이 지탱될 수 없으며 특히 한반도만큼은 국제법상 적법대로 가진 영토이기에 그대로 유지하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대서양헌장과 카이로 선언에 따라 미국은 일본의 요구를 들어주기 어려웠습니다. 만약 일본이 포츠담 선언을 일찍 받았다면 국공내전의 향방인 만주에서 공산당이 실제역사보다 불리해지고 한반도 분단도 6.25전쟁도 일본의 쿠릴열도 문제도 없었을 것입니다. 실제 영미 연합군이 점령한 이탈리아에 소련은 지분을 요구하지 못했고 특히나 소련을 경계한 트루먼은 소련이 참전하지 않은 상황에선 소련을 배제하고자 했을 겁니다. 이런 상황인만큼 동아시아 냉전의 양상도 많이 달라졌을 겁니다."
-권성욱(중일전쟁, 별들의 흑역사, 군벌전쟁의 저자)-
일본제국 정부가 7월 말에 포츠담 선언을 바로 수락했더라면, 히로시마-나가사키의 20만 명이 넘는 희생자는 생기지 않았을 뿐 아니라 한반도가 미소에 의해 분단되는 일도 없었을 것입니다.
-니시무라 히데키(출처: 일본에서 싸운 한국전쟁의 날들, 논형, 심아정 외 2명 역, 2020년)-
"1945년 8월 15일 일본의 항복 발표로 일본의 식민지였던 조선에 해방이 찾아왔다. 그러나 일본 정부가 항복을 받아들인 시기로 말미암아 조선은 미소 양국에 의해 분할 점령되고 말았다. 일본이 포츠담 선언을 8월 초순에 받아들였다면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떨어질 일도, 소련이 참전할 일도 없었을 것이고 더 나아가 조선의 분할 점령도 일어나지 않고 끝났을 것이다."
-와다 하루키(출처: 와타 하루키의 한국전쟁 전사, 와다 하루키 저, 남상구 옮김, 청아출판사, 2023년, 41쪽)
대다수 전문가의 말로는 일본이 바로 포츠담 선언(7월 26일)을 받아들였다면 소련의 참전(8월 8일)은 없었고 트루먼은 소련에 대해 강한 경계심(독소전쟁 발발하니깐 "독일이 이기고 있으면 소련 도와주고, 소련이 이기고 있으면 독일 도와서 양국이 피를 많이 흘리게 해야 한다고 주장한게 트루먼)때문에 소련이 절대 만주와 한반도에 못들어오게 막을 거라는데 동의. 실제 이탈리아에 대한 점령통치에 소련의 참가를 미국과 영국은 거절했다.
그리고 소련이 미국의 한반도-만주 단독점령을 쌩깔 능력은 당시 유일한 핵보유국 미국과 독소전 피해로 국토가 망가진 소련이니 없다고 봐도 되고, 스탈린도 대일전 참전한다 약속했는데 결국 약속을 안지킨게 되니 할 말이 딱히 없고.
한국- 미군 단독 점령으로 분단과 6.25는 일어나지 않는다.
일본- 원자폭탄을 맞지 않고 사할린 남부와 쿠릴열도는 지금도 일본 영토.
미국- 한러국경, 사할린 남부를 통해 소련의 태평양 진출을 강력하게 봉쇄
중국(국민당)- 국공내전의 향방이 결정된 만주에서 소련군의 도움을 못받은 중공군 상대로 실제 역사보다 유리하게 싸울 수 있음. (중국은 근데 진짜 예측이 어렵다. 국공내전 결정타인 만주가 소련 차지가 아니라면 공산당이 실제역사보다 훨씬 불리했을테니)
너무 희망적 결과론 같은데
이 논리대로면 일본이 2주 빨리 항복했다면 핵 안맞을수있었는데 왜맞았냐는 말이랑 다를게없음
당연히 2주빨리 항복을 안했으니 핵을 처맞았지
이미 알탸회담에서 사할린남부 쿠릴열도는 소련이 먹는걸로 합의 봤었음
그 얄타회담에서 소련 참전도 약속된건 아노? 소련 참전 없었으니 쿠릴열도도 무효라고 하면 소련이 뭔 할 말이 있을까?
소련 참전 없었어도 대만처럼 잃었을 땅임
교수 타이틀달고 if역사로 억지부리는건 좀아니지않음? 방구석 밀붕이 수준인데
1명이 그런거면 모를까 복수의 전문가가 동의하는 바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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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든 작든 내전 가능성은 있었지. 마자용
나치가 더 빨리 항복했다면 제국 영토 안쪼개졌을것
개소리임 얄타 회담에서 전후 구상이 합의되었다고 냉전을 얄타 체제라고도 부르는데 미국이 뭔 깡으로 무르게?
if달고 할거면 공룡오적이 배신을 안했다면 부터 하시던가 - dc App
일뽕 원종단 새끼들 개소리 운운하고 앉았노 씹새들아 ㅋ 느그들 핵쳐맞아서 한반도 분단된건 팩트인데 뭐 희망적이니 방구석 군붕이 수준이니 씹 ㅋㅋㅋ 복수의 전쟁사학자들이 같은 얘기하는데 병신들이 지랄육갑하노? 소련군이 만주작전 개시하기전에 항복했으면 개입 명분 없어지는건 팩튼데 뭔 망상 타령
분단된건 짱개 바퀴벌레 때문이지 물타기하네 ㅋㅋ
응 쪽본이 미국한테 얌전히 항복했음 그 짱꼴라 빨갱이 새끼들 들어올 각 원천 차단했어. 본국 까이니까 쪽들쪽들한 원종이가 어디서 물타기 타령하노?
결과론적인 소리같은데
당시 한반도에 공상주의 계열이 ㅈㄴ 많은데 분단이 없었을까 내전 한번 나면 미중소 다 개입했을 텐데
존나 냉정하게 보면 625가 나가지고 결과적으로 우리나라에 도움이 됐음 산업화의 양대 걸림돌인 공산주의랑 전통 지주들이 싸그리 쓸려나갔거든 광복 이후 우리나라 현대사는 최선은 아니어도 차선의 시나라오로 흘러간거에 가까움 최선은 당연히 625 승리 한반도 통일이고
독일이 불가침조약 맺었던 소련 공격 안하고, 영국 공략에 집중했으면 지금 세계는 일본어와 독일어 쓰고 이스라엘은 없었을지도. - dc App
북한의 존재 때문에 한국이 그나마 발전한거다. 조선이 실패한 것도 내부경쟁이 없어 발전의 동기가 부여되지 않은 탓이 큼. 남북분단이 오히려 한국을 구원한거
역설적이지만 북한의 존재도 솔직히 어느정도 있다고 봄 내부적으로도 외부적으로도 - dc App
ㅇㅈ
나 이거 펨코에서 봤는데
근데 애초에 사할린이랑 쿠릴 할양은 알타회담때 결정된거라 2주 일찍 항복해도 달라지는건 없음. 일본입장에선 그냥 별 의미 없는 if임
한미일의 승리라니 한 미의 승리지. 일본은 625 안일어났으면 못살아났다
이건 망상임. 소련이 새로운 적으로 부상하고 중국이 공산화된 이상 일본의 부활은 기정사실이었음
"일본의 항복이 지연된 가장 큰 이유는 천황제 유지보다 한반도만큼은 계속 유지하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 이게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야, 이렇게 국수주의적인 학자가 어찌 시야가 넓고 학문이 충분하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
뭔소리? 일본군부가 한반도 유지 위해 필사적이었던건 팩트인데? 당장 오카무라 야스지부터 아나미 고레치카까지 한반도 없으면 일본은 생존 불가능하다는게 일본 군부의 인식이었음
역사에 IF 를 논하는것만큼 망상도 없지만 저대로 간다고 해도 한국에게 좋을일이 하나도 없음 북한도 없고 중국공산당도 없는 세계속에서 현실과도 같은 경제성장을 할지 의문임 중요한건 어느쪽으로 가던 일본은 잘 살긴 할 것 같음
북한 공산당이 뭔 도움을 줬냐
교수가 if도르 ㅅㅂ ㅋㅋㅋㅋㅋ
수치만 달달 왜우는 줄 아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