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분을 알게 된 계기는 PBS의 장진호 다큐멘터리를 보다가 이종연(John Y. Lee) 변호사가 나오는 것을 보고 처음에는 이종연 변호사에 대해 검색했는데

한 기사에서 이 분을 언급하고 있었음. 백인이라고 우월감을 나타내거나 하지 않는 평양 말씨를 쓰는 신사였다고.

처음에는 아니 한국어를 왜 할 줄 아는거지? 싶어서 더 찾아 봤는데, 이 분의 삶을 알고 나서 많은 것을 느꼈음.

나는 특정 종교를 믿는 것도 아니고, 그냥 이 분을 보니까 군인으로서 뿐만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 뭔가 배울점이 있다고 생각함.


William Hamilton Shaw 해군 대위는 한국에 온 선교사 William Earl Shaw 의 아들로 평양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한국어에 아주 유창했음

2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어뢰정의 부정장으로 노르망디 상륙작전에 참가하였고, 우리나라 해군 사관학교 설립과 교육에 많은 도움을 주었음.

그는 미국으로 돌아가 하버드 대학교에서 철학 박사학위를 공부중이었는데, 한국에서 전쟁이 발발했다는 소식을 듣게 됨

그 때 그가 한 말이


"I cannot in good conscience return to Korea as a Christian missionary in peacetime if I am not first willing to be there to help the Koreans defend their freedom in time of war."


대충 해석 해 보면, 만약 내가 자유를 위해 전쟁을 치르고 있는 한국인들을 먼저 도우러 가지 않고, 평화로울 때 선교사로 한국에 간다면, 양심이 허락하지 않는 다는 내용.


쇼 대위는 한국어에도 유창했고 당연히 평양 지리에도 익숙했으므로 맥아더의 옆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고, 또 인천 상륙작전 이후에는 자원하여 해병대와 함께 전투를 치르다가 지금의 은평구 녹번동에서 전사함. 현재 그곳에는 그를 기리는 비석이 있다고 함. 

쇼 대위의 부인 또한 6년 후 두 아들을 데리고 한국으로 건너와 12년간 선교사로 활동했고 쇼 대위의 아버지 역시 한국에 계속 남아 교육과 선교 활동에 힘썼다고 함.

자세한 정보는 아래 링크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