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군 제7사단이 담당하고 있는 동두천 및 포천 정면으로 침공한 북한군 제1군단은 제3사단과 4사단, 그리고 제105전차여단으로 구성된 최정예군이었으며, 철원/연천-포천/동두천-의정부 축선을 따라 조기에 서울을 점령하는 것을 임무로 부여받고 있었다.
반면에 국군 제7사단은 제1연대를 동두천에, 제9연대를 포천 정면에 배치하고 있었으며, 사단 방침에 따라 각 연대는 1개 대대만 38선 경게에 투입하고 2개 대대는 소부대 교육을 실시하고 있었기 때문에 사실상 제7사단은 포천과 동두천 지역에서 거점방어태세를 취하고 있었다. 포천 정면으로 침공한 북한군 제3사단은 불과 교전 4시간만에 제9연대의 경계진지를 돌파하고 전차를 앞세운 채 포천에 나타났다. 포천과 동두천 지역에서 제7사단이 이처럼 맥없이 밀려나자 육군본부에서는 서울을 사수하고자 재경부대 및 후방부대를 전선에 투입하기 시작했다.

이상근(李尙根) 중령이 지휘하는 수도경비사령부 예하 제3연대가 6월 25일 하오에 포천 남방의 송우리 지역에 증원 배치되었으나 적 전차의 포격을 받고 2개 대대가 분산되었으며, 다음날 미명에는 대전으로부터 급거 투입된 제2사단 5연대 2대대가 축석령에 진출해 방어에 임했으나 적 전차의 포격과 기총 소사에 버티지 못하고 후속한 1대대마저 붕괴되고 말았다.
이같이 당시 국군은 대전차 장비로 57㎜ 대전차포를 일부 갖고 있었으나 탄약도 소량인데다 운용방법도 미숙하여 별다른 효과를 거두지 못하였으며, 적 전차를 파괴할 수 있는 전투기나 전차는 한 대도 보유하지 못하고 있었다. 또한 수류탄이나 화염병을 이용한 공격도 궁여지책으로 나온 발상이었으며, 개전 초기에는 생각조차 못한 힘든 방법이었다.
20여 대의 전차를 앞세운 적의 맹렬한 공격으로 더 이상의 방어가 불가능해짐에 따라 제3연대는 야음을 이용해 축석령과 금오리 중간의 155고지와 202고지로 후퇴하여 새로운 방어선을 형성하였다. 이 방어선은 의정부는 물론 수도 서울의 방위문제까지 좌우하는 중요한 결전장이었다. 그러므로 육군본부는 이 방위선에서 적을 섬멸하고 반격전을 시도할 목적으로 육군포병학교 제2교도대대 2포대의 105㎜포 5문을 금오리 방어선에 배치하고 대비시켰다. 포병학교 교도대대장인 김풍익 소령은 6월 25일 21시경 의정부지역으로 출동하여 화력지원임무를 수행하라는 명령을 육본으로부터 하달받고 급거 서울 용산구 갈월동에 위치한 육군포병학교를 출발하여 이날 새벽에 금오리 방어선에 포진하고 있었다.
제2교도대대장인 김풍익 소령은 과묵한 성품으로 부여된 임무는 100% 완수하는 책임감이 투철한 장교로서 초창기의 포병운용, 보전협동작전 등 교리에 뛰어난 식견을 보여 포병대에서 두터운 신망을 받아왔다. 대대장으로 취임하자마자 그는 포술훈련에 진력하고 있었다.

장세풍(蔣世豊) 대위가 지휘하는 제2포대는 적 전차의 유일한 접근로인 도로변에 5문의 포를 배치하고 진지편성을 완료하는 한편 사격준비태세를 갖추었다. 6월 25일 자정 무렵의 상황이었다. 채병덕(蔡秉德) 총참모장이 그의 참모진을 대동하고 제2포대의 진지 지역을 다녀가자, 03시경 김풍익 소령은 장세풍 대위와 함께 지프차를 타고 축석령 지역을 정찰하면서 고개 너머의 적의 상황을 파악하고자 하였다. 축석령 정상에는 포병관측소가 운영되고 있었는데, 관측장교의 보고에 따르면 송우리에서 패퇴한 아군이 지금 철수 중에 있다는 것이었다. 잠시 후 탈진한 병사들이 관측소 옆을 통과하는 것을 보고난 후 진지로 되돌아 온 김풍익 소령은 제2포대장 장세풍 대위와 전포대장(戰砲隊長) 최진식(崔鎭植) 중위를 불렀다.

'우리가 이 금오리 방어선에서 적의 침공을 저지하지 못할 때, 의정부와 더 나아가선 수도 서울의 방어까지 불가능해질 것이오. 특히 우리 포병으로서의 임무는 방어에 임하고 있는 보병부대를 지원해주는 데도 있지만, 그것보다도 이곳에서 우리 임무는 105㎜ 야포로 적의 전차를 격파하는데 있소. 그러니까 우리가 이 방어선에서 적 전차를 얼마나 격파하느냐에 따라서 의정부의 방어 여부도 결정될 것이오. 그래서 나는 이미 죽음으로써 이 방어선을 고수할 것을 결심하였오. 그러니 장 대위와 최 중위도 나의 뜻에 따라 주길 바라겠오. 더구나 우리는 군대의 기간인 장교일 뿐 아니라 부대의 핵심이며, 부대의 성패에 전 책임을 지고 있는 지휘관이라는 점을 명심하고 말이오!'라고 말한 김 소령은 굳은 악수를 나누었다.

6월 26일 07시경 제2포대 진지에는 관측소로부터 적 전차 수 대가 출현했다는 보고와 함께 사격요구가 무전기를 통해 흘러나왔고, 즉시 최진식 중위의 사격지휘에 의해 제2포대의 포가 불을 뿜었다. 포탄은 그대로 적의 전차에 명중되었다. 그러나 포탄이 명중되었어도 적의 전차는 잠시 뒤뚱거릴 뿐 돌진을 계속하였다. 당황한 관측반은 제2포대의 사격을 재촉하였다. 포대장 장 대위는 사격으로는 적 전차의 돌진을 저지할 수 없음을 인식하고 마지막으로 '모두가 포탄을 하나씩 안고 적 전차에 돌진하자'며 포대원들과 함께 필사의 결의를 다지고 있었다.

이때 김풍익 대대장이 그들 앞에 나타났다. 보병은 몰라도 포병은 적 전차를 파괴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이미 내가 진지를 선정하고 왔으니 기준포를 끌어와라!'고 명령하였다. 마침 기준포는 고장이었고 모두가 서로 가겠다고 나섰으나 제6번 포가 지명되었으며, 나머지는 최진식 중위의 지휘 하에 지원사격을 위해 대기하기로 하였다.

진지는 축석령 하단부 전방이 잘 보이는 급커브길 부근이었다. 장 대위는 포반원들로 하여금 신속하게 포를 방열시킨 후 대대장을 바라보았다. 적 전차의 캐터필라 소리가 점점 가까이 들려왔다. '눈금을 제로에 맞춰라. 포탄장진!' 대대장 김풍익 소령의 비책은 근거리 직접 조준사격으로 전차의 궤도를 명중시켜 파괴하는 것이었다. 포병이 창설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당시로서는 누구도 착안하기 어려운 방법이었으며, 설사 생각한다해도 죽음을 각오하기 전에는 결코 행하기 어려운 방법이었다.
급커브길에 적의 탱크가 모습을 드러내자 대대장의 사격명령과 함께 선두 전차의 측면에서 불빛이 번쩍하더니 화염을 내뿜었다. 궤도를 파괴당한 적의 탱크는 급회전을 하면서 길 한복판에 주저앉고 말았다. 대전차포도 아닌 일반 야포로 적의 전차를 격파하는데 성공한 김풍익 소령은 제2탄을 장진할 것을 명했고, 장 대위는 재빠른 동작으로 포탄을 장진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때 커브길에서 나타난 적의 2번 전차가 포격을 가해왔다. 굉음과 함께 6번포는 대전차 고폭탄을 품은 채 그대로 폭발해버렸다. 그 순간, 105㎜ 야포는 산산이 부서졌고, 김 소령과 장 대위는 피투성이가 된 채 부서진 포 곁에 쓰러졌다. 적의 2번 전차는 파괴된 전차가 길을 막고있어 전진이 불가능해지자 다시 커브길을 돌아 후퇴했다.


http://www.wmk.kr/ko/node/15981


우리 나라 포병이 그렇게 직사를 강조하는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