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해도 뜨지 않은 이른 새벽 대대 철조망을 넘어 도망치려던 찰리 포대 전사관이 초병들에게 잡혀 들어왔다. 무슨 일인가 웅성거리는 병사들이 생활관 밖으로 얼굴을 내밀었다. 그들의 눈에 주먹다짐이 오갔는지 얼굴에 피딱지가 내려앉아 있는 전사관이 포박줄에 묶인채 연병장을 걸어들어오고 소식을 들은 대대장이 다른 간부들을 뒤에 달고 부리나케 뛰어 내려오는게 보였다.
\"이 개새끼야!\"
고성과 함께 대대장의 방탄이 전사관의 가슴팍위로 내리 꽂혔다.
\"간부란 새끼가 병사들도 안하는 짓을 해!\"
퍽! 소리가 주위에 모인 부대원들의 귀에 선명히 들릴 정도였지만 이미 재정신이 아닌 전사관은 고통조차 느끼지 못하는 듯 했다. 대신 모든 걸 놓아버린 표정으로 대대장의 바짓 가랑이를 붙잡더니 발길질에도 놓아주지 않았다.
\"대대장님. 그동안 열심히 하지 않았습니까....\"
울음소리가 섞인 전사관의 목소리가 처연히 울려퍼졌다.
전사관을 무너뜨린건 어젯밤에 일어난 일이었다. 독립 포대를 모조리 비우고 대대로 집결해 진지 방어를 강화하고 있던 대대로 일단의 민간인 무리가 위병소 문을 두들겼다. 이전의 평화는 어디가고 사방에서 괴물들이 들끓고 있었다.
그들 입장에서는 총으로 무장한 군부대안이 가장 안전한 장소라고 여겼을 것이다. 그중에는 병사들이 얼굴정돈 어렴풋이 아는 얼굴들도 존재했다. 간부들의 아내며 아들이나 딸이었다.
그러나 굳게 닫힌 문은 열리지 않았다. 이야기를 전해들은 대대장은 눈물을 머금으며 위병소 문을 열지 마라 명령했다. 사병들은 집에서 멀리 떨어진 이 타향에서 가족들의 생사도 모른채 자기 자리를 지켜주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간부들의 가족들이라고 특별히 대우해주라 말 할 수 없던 것이다. 대대장 본인의 가족또한 예외는 아니라는 애기에 아래 간부들은 차마 반대를 주장하지 못했다.
말은 내뱉지 못했지만 전사관은 그걸 버틸 수 없었던 것이다. 평시에라면 그는 항상 사병들을 먼저 생각하고 부대에 일이 있으면 앞장섰던 간부였다. 하지만 결국 월급 때문에 선택한 간부의 길. 비상시에서의 재능은 아니였던 모양이다.
대대장은 마음같아선 곤죽이 나게 때려눕히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이미 실망 할 대로 실망했을지 모를 병사들에게 꼴성사나운 모습을 더 이상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주위를 돌아보자 말로 표현하기 힘든 표정을 짓고 있는 병사들의 얼굴이 스처지나갔다. 대대장은 마음을 가다듬으며 뒤에 도열해있전 하사 둘을 집었다 .
\"상급부대에서 결정이 떨어질때까지 추진 탄약고에 끌고가서 감금해놔.\"
\"예 충성!\"
하사들이 짧게 경례하며 전사관의 양팔을 잡아채 억지로 끌고 갔다.
\"대대장님. 대대장님. 아무것도 안바랍니다. 제발 집에 가게만 해주십시오! 이거놔! 대대장님!\"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던 전사관이 이윽고 건물 사이로 모습을 감추었다. 하지만 악에 받친 그 목소리만큼은 지울 수 있는게 아니었기에 남은 사람들의 마음음 무겁기만 했다.
침이 쓰다. 김병장은 차마 삼킬 엄두도 내지 못한채 침을 바닥에 내뱉었다. 흙먼지를 맞아 잔뜩 걸쭉해진 침이 입술 사이에 대롱대롱 매달리다 뚝 하고 떨어져 내렸다.
\"에이, 씨벌 아침부터 뭔 지랄이냐.\"
\"찰리 포대 전사관님 애기 말입니까.\"
혼잣말을, 전방을 주시하던 이일병이 냉큼 받아들었다.
\"님은 무슨 씨발 새끼지.\"
여기서 누가 가족을 생각하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사태로 부터 벌써 일주일. 김병장도 당장에 가족들을 만나러 가고 싶었지만 실행하지 못 한 건 군인으로서의 의무감같은 건 아니었다. 고향까지의 거리 때문이라는 현실적인 이유 일 뿐 이다.버스도 끊기고 기차도 끊긴 마당에 부대로 부터 차를 타고도 3 4시간은 걸릴 거리를 걸어갈 엄두가 나지 않은 것이다. 설령 나간다고 해도 탈영병을 가만 놔둘리도 없다. 요즘 같은 시대엔 투항 요구도 없이 봐로 쏴갈기지 않을까.
그 상황에서 대대가 버틸 수 있던건 모두가 같은 처지라는 동질감때문이었다. 오늘 전사관은 그 금기 하나를 어기고 만 것이다. 김병장은 그 정돈 아니었지만 오늘 그 광경을 본 병사들의 마음엔 그 어느 때보다 가족이 사무칠게 뻔했다. 김병장도 병장된 신분에 최대한 참아보려 노력해도 눈물 한방울 찍 흘러나오는건 막을 수 없었다.
\"넌 어떠냐. 괜찮냐.\"
그러다 보니 살짝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의 총에도 이일병의 총에도 실탄이 그득 담긴 탄창이 끼어져 있었다. 오발을 우려한 상급 부대 방침에 따라 끼어있기만 할 뿐 아직 장전까진 하지 않고 있지만 노리쇠를 당기는게 얼마나 일이라고, 이일병이 마음만 먹으면 순식간에 탄을 밀어넣고 방아쇠를 당기는데 몇초면 됬다. 하지만 이일병은 딱히 그럴 생각이 없는 모양인지 오른손이 방아쇠에서 멀찍히 떨어져 개머리판을 짚고 있었다. 실탄의 위험성에 대한 이일병 나름의 보호 본능이었다. 김병장의 물음에 이일병이 어깨를 으썩였다.
\"저야 뭐 군대 오기전에도 가족들이랑 사이가 안좋다가 와서 말입니다.\"
\"아 그랬나?\"
김병장은 갑자기 듣는 비사에 난처함을 느끼면서도 한편으론 안도감을 느끼는 자신에게 비참함을 느꼈다.
\"자랑할 애기가 아니라 제 포반에서도 분대장이랑 포반장님 밖엔 말 안했었으니 모르시는게 당연하십니다. 그보다 제가 화나는건 도대체 언제까지 주둔지에 처박히기만 하고 있어야 되냐는 겁니다.\"
\"...북한 애들 한테 물어보라고 하면 화나겠지?\"
\"지금 상황에서도 괴물들 보단 북한을 더 무서워해야 하는게 옳은건지 모르겠습니다.\"
지금도 위병소에서 바라보이는 자주포의 포신들은 북쪽으로 고정된채 꿈적도 하고 있지 않다. 표적이 바뀌질 않으니 움직일 이유도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북한도 안 움직이는데 어떻게 할 수가 없지 않을까. 이때다 하고 처들어오면 어떻게 해.\"
\"북한도 우리 사정을 알텐데 남침을 해오겠습니까. 지들이 감당 못 할 일이라는거 뻔히 알텐데.\"
\"어, 그런가..?\"
이일병의 단호함에 김병장은 말을 잇지 못하고 입술을 어물쩍 거렸다. 아는 애기라도 있어야 말을 하지 김병장도 아는 거라곤 이일병이나 다를게 없었으니할 애기가 떠오르지 않았다.또 이일병이 저렇게 단호하게 애기하니 그런거 같기도 했다. 어쩌면 자기도 모르게 김병장의 마음속 일부가 이일병에게 동조하고 있는 것일지도 몰랐다. 아니 그냥 고폭탄으로 다 날려버리면 안되나! 장전을 하고 빵쏘면 내맘도 후련. 괴물 가슴도 후련.
하지만 김병장의 고민을 날려버린건 포탄이 아니라 머리 맞은편에서 들려오는 총소리였다. 부리나케 위병소 벽에 몸을 숨긴 김병장이 고개만 살짝 빼 총소리가 난 방향을 바라본다.
\"저희 부대에서 난 소리가 아닙니다.\"
같이 쭈그리고 있던 이일병이 속삭였다.
\"나도 알아. 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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