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략> ……


일곱. 어니 파일의 전쟁에서는




  저격병의 총탄에 희생되어 생을 마감했다는 존 스타인벡의 설명(주1)과는 달리, 어니 파일은 독일군이 항복하여 유럽에서 전쟁이 끝나기 20일 전, 일본의 어느 작은 섬에서 기관총에 희생(주2)되었다고 전해진다. 그리고 그의 시체에서는 유럽 전쟁에 끝나는 날 개제하기 위해서 미리 써놓은 글의 초고가 발견되었다.


  그 원고(주3)는 이런 예언적인 내용으로 끝을 맺었다.


--------------------------------------------------------------------------


  이 나라, 그리고 저 나라에서, 여러 달이 지나고, 여러 해가 지나는 사이에, 대량으로 생산된 전사자들. 겨울에 죽은 사람들, 여름에 죽은 사람들.


  아무렇게나 죽은 모습이 워낙 많아서, 대수롭지 않게 보이기까지 하는 죽은 사람들.


  어찌나 엄청난게 많은지 때로는 지겨워지기까지 하던 죽은 사람들.


  이들의 죽음은 고향 사람들이 이해하려고 노력할 필요조차 없는 현상이다. 고향 사람들에게는 그들이 씩씩하게 행군하는 집단으로만 여겨지거나, 멀리 떠나가서 그냥 돌아오지 않은 가까운 사람에 지나지 않는다. 여러분은 그가 프랑스의 자갈길 옆에 그토록 괴이한 고깃덩이가 되어 쓰러진 모습은 보지 못했다.


  우리들은 보았다.


  수천번이나 보았다.


  그것이 다르다.


--------------------------------------------------------------------------




*



  북 아프리카 종군기를 담은 『이것이 우리의 전쟁이다 (Here Is Your War, Ernie Pyle, Lancer Books) 』를 보면, 어니 파일의 전쟁에서는, “야간에 행군하는 병사들이 유령처럼 보였다. 수백 필의 말이 대포와 탄약과 보급물자를 운반했다. 나는 수백만에 이르는 사람들로 하여금, 고향에서 따듯한 침대에 들어가 잠들었어야 하는 남자들로 하여금, 며칠씩이나 기나긴 밤을 새면서 기계처럼 정밀하게 이동하도록 만들어 놓은 어떤 재앙의 엄청난 힘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세상에서 살아가는 평범하고 하찮은 사람들을 전쟁은 이상하고도 거대한 괴물로 만들어 놓는다.” (p. 132)


……


  어니 파일의 전쟁에서는 “물론 선택하는 자가 항상 스스로 선택할 권리를 갖지는 못한다. 세상의 수많은 전투지는 차라리 영웅이 되지 않았더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영웅들로 넘쳐난다.” (p. 37)


……


  어니 파일의 전쟁에서는 “우리들이 어디로 가는지 종군기자들은 목적지를 얼았다. 장교들도 몇몇은 알았고, 나머지 장교들은 그냥 짐작 정도만 했다. 그리고 놀랄 만큼 많은 숫자의 병사들은 그들의 목적지가 어디인지 전혀 알지 못했다.” (p. 8)


……


  어니 파일의 전쟁에서 “나는 병사들이 두려움을 어떻게 표현하는지를 어느 장교에게 물어보았다. 그는 말했다 - 비참한 상황 속에서 누군가 같이 존재한다는 기분을 느끼기 위해, 대부분 그냥 처량하게 서로 쳐다보면서, 조금씩 서로 가까이 다가간다고.” (p. 23)


……


  어니 파일의 전쟁에서 “우리들 몇몇은 런던의 BBC 방송이 보내는 밤 9시 뉴스를 들었고, 어떤 부대에서는 단파 라디오로 미국에서 전하는 뉴스를 매시간 들었다. 2백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벌어지는 상황이 미국까지 타전된 다음에 다시 돌아온 뒤에야 우리들이 알게 된다는 사실은 참으로 얄궂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 미친 세상에서는 만사가 그런 식이다.” (p. 32)


……


  어니 파일의 전쟁에서는 “수천 명의 병사들이 언젠가 평화가 찾아오면 아내와 아이들을 데리고 튀니지로 돌아와서, 그토록 익숙해진 전투지를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그곳에 존재했던 광포한 만행을 상기시킬만한 흔적은 별로 없이, 도시들만 남아서 기다리리라.” (p. 205)


……


  어니 파일의 전쟁에서는 “엄청난 죽음과 처참한 파괴의 겨울을 견디어낸 다음이었어도, 전쟁이 얼마나 끔찍하고 얼마나 핍진한지를 인식하게 되는 것은 발작적인 몇몇 순간뿐이었다. 전쟁의 구체적인 현상들을 접할 때면 나는 감정은 죽어버리고 딱지만 남은 듯한 기분을 느꼈다. 나는 줄지어 새로 파놓은 무덤들을 보면서도 목이 메이지를 않았다. 어찌 된 일인지 나는 팔다리가 잘려나간 시체들을 보고도 움찔하거나 깊은 감정이 느껴지지가 않았다.


  그런 모든 새로운 죽음의 엄청난 의미가 생생한 악몽으로 나를 다시 덮치는 순간이 언제인가 하면, 그것은 그런 모든 상황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혼자 앉았거나 밤늦게 침낭 속에 들어가서 내가 보았던 장면들을 되새기면서, 생각에 잠기고 잠기고 또 잠길 때였다. 그러면 가끔 나는 더 이상 견디기가 힘들어 그곳을 떠나야 되겠다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전투에 임하는 병사들은 전쟁의 그런 단계를 극복한다. 첫 전투를 치르고 나면 그런 악몽의 단계를 벗어난다. 그들의 몸에서는 피가 끓어오른다. 그는 살아남기 위해 싸워야 하고, 그에게는 사람을 죽이는 일이 나의 글쓰기처럼 하나의 직업이 된다.” (p. 217)


……


  어니 파일의 전쟁에서는 “시사잡지를 보면 전쟁이 활력과 영웅적인 행위로 가득하며, 사람을 흥분시키는 낭만적인 현상처럼 보인다. 전쟁이 정말로 그렇다는 사실을 나도 알기는 하지만, 그러면서도 실감은 느껴지지 않았다. 미국에서 보내온 잡지를 봐야만 나는 이곳에서 벌어지는 전쟁의 참된 분위기를 깨닫게 된다.


  내가 본 어떤 사진 한 장은 우리들이 아프리카에 상륙했던 기다란 콘크리트 방파제를 보여주었다. 참으로 묘한 기분이 들게 만드는 사진이었다. 무슨 고약한 이유 때문인지는 몰라도, 그 첫날 방파제를 따라 행군했을 때보다는 사진을 보면서 나는 훨씬 더 많은 흥분감을 맛보았다. ‘도대체 내가 왜 이런지 모르겠어요.’ 내가 말했다. ‘우린 이곳 최전선에 와 있지만, 나에게는 전쟁이 전혀 극적이라고 느껴지지를 않아요.’


  내가 하는 얘기를 듣고 워싱턴 주 벨링햄에서 온 퀸트 퀵 소령은 그의 침대에서 팔꿈치를 괴고 엎드렸다. 퀵은 비행대대장이어서 어떤 폭격기 조종사 못지않게 실전 경험이 많았다. 그의 전적(戰績)에 대해서는 모두들 감탄하고 존경심을 보였다. 그가 말했다. ‘나도 마찬가지에요. 극적이어야 한다고 믿기는 하지만, 그런 기분이 들지를 않아요. 그냥 고생스러운 일이라는 생각만 들어서, 복무를 끝내고 어서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기만 해요.’


  그래서 나는 알지 못한다. 전쟁은 극적인가, 아닌가? 분명히 크나큰 갖가지 비극과, 믿어지지 않을 만큼 영웅적인 행동과, 심지어는 희극적인 잠재성도 끊임없이 나타난다. 하지만 글을 쓰려고 자리에 앉으면, 내 눈앞에 어른거리는 모습이라고는, 전선에서 고통을 받으며 어딘가 다른 곳으로 가고 싶어하는 병사들, 후방에서 따분한 일을 하면서 전방으로 나가지 못해 안달하는 병사들, 앞에 앉혀놓고 영웅 노릇을 할 여자들이 없어서, 그들 자신말고는 얘기를 나눌 상대가 아무도 없어서 절망적으로 사람을 그리워하는 병사들, 마실 술도 별로 없고, 노래도 듣기 힘들고, 무척 춥고 더러운 몸으로, 불안감과 불편함과 고향 생각과 위험에 대한 무딘 감각 속에서 무턱대고 하루하루를 힘겹게 살아가는 병사들 뿐이다.


  낭만과 극적인 요소는 물론 이곳에 존재하지만, 숲 속의 유명한 나무(주2)나 마찬가지여서 - 누가 들어주지 않으면 아무 쓸모가 없는 얘기이다. 내가 알기로는 병사들에게 전쟁이 낭만적인 순간은 두 번 뿐이어서, 한 번은 자유의 여신상을 다시 보게 되는 순간이고, 다른 한순간은 고향으로 돌아간 첫날 가족을 만날 때이다.” (p. 95)


……


  그리고 어니 파일에게는 “전쟁이 대단한 활력을 분출하는 현상임을 부인하고 싶은 생각이 없다. 삶의 모든 맥동이 고국과 전선에서 다같이 빨라진다. 전투지에서는 사람을 취하게 만드는 어떤 기운이 작용하여, 평범한 남자들이 때로는 위험의 감각이라는 술을 마시고 자신의 한계를 훌쩍 뛰어넘는다. 하지만 그것은 거짓된 착각이다. 이곳을 떠나 다음 전투지로 이동할 때면, 적어도 나 만큼은 지극히 마음이 내키지 않기가 보통이다.


  마침내 평화가 찾아오는 날, 이른바 ‘전체적인 양상’이 드러나리라. 나는 ‘전체적인 양상’에 대해서는 전혀 아는 바가 없기 때문에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았다. 내가 나는 바라고 하면, 굼벵이처럼 땅바닥을 기어다니며 보았던 양상들 뿐이고, 우리들이 이해하는 부분의 양상이라고 하면, 아직 살았으며 죽기를 바라지 않는 지치고 더러운 병사들과, 한밤중에 소등을 하고 길게 줄지어 나아가는 차량 행렬과, 한 차례 전투를 끝내고 언덕을 힘없이 그리고 말없이 내려오는 병사들의 얼굴에 나타난 충격과, 식사를 하려고 줄지어 늘어선 장병들과 말라리아 예방약과 개인호와 불타는 전차와 아랍인들이 불쑥 치켜든 달걀과 높이 날아가는 포탄의 쇳소리, 지프와 연료 하치장과 퀴퀴한 냄새가 나는 침낭과 C-레이션과 선인장발과 몇 달 동안 입고 다녀서 목덜미가 새까맣게 때에 찌든 속옷, 그리고 또한 웃음과 분노와 술과 사랑스러운 꽃과끊임없는 욕설로만 구성되었을 따름이다. 전쟁은 이런 모든 것, 그리고 무덤과 무덤과 무덤들로 구성되었다.


  이것이 우리들의 전쟁이고, 우리들은 한 전투지에서 다른 전투지로 이동하며 모든 상황이 다 끝날 때까지 전쟁을 수행하고, 그러는 사이에 우리들의 일부는 모든 해안선에서, 모든 야전에서 뒤에 남는다. 이곳 튀니지에서 뒤에 남는 병사들은 시작일 따름이다. 이렇게 빨리 전쟁에서 그들이 벗어났다는 사실이 그들에게 잘된 일인지 아닌지를 나는 알지 못한다. 일단 죽고 나면 그런 문제는 아무 의미가 없어지는지도 모르겠다. 훈장과 연설과 승리는 더이상 그들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어진다. 그들은 죽었고 다른 사람들은 살았으며, 왜 그런 결과가 이루어졌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들은 죽었고, 그래서 우리들은 앞으로 나아가기를 계속하고 또 계속한다. 다음 해안선으로 가기 위해 이곳을 떠나면서, 나무 십자가 밑에 묻힌 병사들에게 우리들이 해 줄 수 있는 일이라고는, 잠깐 걸음을 멈추고 이렇게 속삭이는 것뿐이리라. ‘고맙다, 전우여.’” (p. 272)


…… <후략>



<지압 장군을 찾아서> 中 (2005, 안정효)




------------------------------------------------------------------------------------------------------


  주1) p. x, Once There Was a War


  주2) p. 438, This Was Your War, ed. Frank Brookhouser


  주3) p.419, Ernie’s War, The Best of Ernie Pyle’s World War Ⅱ Dispatches, ed. David Nichols


  주4) 아무도 없는 숲에서 혼자 쓰러지는 나무의 존재성에 대한 철학 명제를 뜻한다.


-------------------------------------------------------------------------------------------------------


한번에 두 문단 다 올리려고 했는데 글자제한 걸려서 나눠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