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01/0000375553?sid=104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의 할아버지인 프레스콧 부시를 중심으로 한 부시 가문이 아돌프 히틀러 치하 나치스의 자금 해외유출과 나치스로의 비밀송금을 도맡은 `돈세탁 협력자'였다는 내용을 담은 저서가 미국에서 출간됐다고 쿠바 언론이 최근 보도해 파문이 일고 있다.
미국 작가 웹스터 G. 타플리와 앤턴 치트킨은 몇 년 간의 조사 끝에 공동저작으로 최근 출간한 `조지 부시: 허락 받지 않은 자서전'이란 책에서 히틀러가 권력을 잡는 데 재정적 도움을 주면서 큰 돈을 번 미국 월가 금융자본가들 가운데는 부시 대통령 가문이 포함돼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고 쿠바 공산당 일간지 그란마가 전했다.
이 책을 발췌 소개한 그란마에 따르면 부시 대통령의 할아버지이자 `아버지 부시'의 아버지인 프레스콧 부시는 나치즘이 막 출현한 1920년대 당시 독일에서 네덜란드를 거쳐 미국까지 해외송금을 허락받은 독일내 몇 안되는 금융기관을 막후에서 장악하고 있던 타이슨 가문과 밀접한 관련을 맺으며 나치스의 비밀자금 관리에 깊숙이 개입하게 된다.
타이슨 가문의 중요한 인물인 `나는 히틀러에게 지불했다(I paid Hitler)'의 저자 프리츠 타이슨은 좌중을 압도하는 히틀러의 웅변과 추종자들의 군조직과 같은 충성에 매료돼 막 창당한 국가사회주의독일노동자당(나치스)에 2만5천달러를 기부했으며, 1931년에는 나치스에 입당하면서 `나치스 전쟁기계'의 막강한 인물로 부상한다.
당시 타이슨은 월가의 영향력 있는 인물인 클래런스 딜런이 설립한 독일철강 트러스트의 경영에도 관여했는데 딜런의 측근 동업자들 가운데 한 명이 바로 프레스콧의 아버지이자 현 부시 대통령의 증조부격인 새뮤얼 부시이다.
또 1923년 타이슨 가문과 미국 철도업계의 실력자 W. 애버럴 해리먼은 은행을 설립했는 데 프레스콧의 장인인 조지 허버트 워커가 행장으로 임명됐다. 특히 이들이 3년 뒤인 1926년 설립한 `유니언 뱅킹 코퍼레이션(UBC)'의 책임자로는 프레스콧 부시가 가게되고, 같은해 프레스콧은 `브라운 브러더스 해리먼' 은행의 부행장 겸 파트너로도 임명된다.
UBC는 히틀러와 밀접한 타이슨의 관계에 따라 네덜란드를 통해 미국으로 유출되는 나치스 자금을 보호하는 비밀통로가 됐으며, 브라운 브러더스 해리먼은 나치스가 미국에 보관한 자금을 필요로 할 때마다 이를 독일로 직접 송금하는 역할을 했다.
이런 방법으로 나치스의 첫 `돈세탁 협력자' 기능을 한 두 은행의 중책으로 있은 인물이 바로 프레스콧 부시였다는 점이 타플리와 치트킨의 저서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고 그란마는 지적했다.
따라서 히틀러를 지원하고 돕는 일이 금융사업의 중요한 부분이었던 부시 가문의 직간접적 원조 덕택으로 부시 대통령이나 `아버지 부시'는 모두 대통령에 오를 수 있었다고 저자들은 강조한다.
1942년 미국 정부는 프레스콧 부시가 행장으로 있던 UBC 뉴욕 본점에 예치된 나치스 자산을 몰수했고, 이 은행도 적국에 금융 도움을 줬다는 혐의로 모든 자산이 압수됐다. 프레스콧이 운영하던 다른 두 금융기관 자산도 압수됐다. 그러나 금수조치가 내려진 또 다른 회사는 1951년 제재가 풀렸고 프레스콧은 동시에 150만달러를 회수하면서 재기를 위한 발판을 마련하게 된다.
결론적으로 저자들은 부시 가문의 재산은 아돌프 히틀러의 정치적 프로젝트를 무조건적으로 지원한 결과라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으며, 두 부시 대통령의 타국 영토 및 재산의 지배는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라 1930년대 형성된 `파시스트 유전자' 등 집안 내력도 상당한 역할을 했다고 그란마는 덧붙였다.
kimys@yna.co.kr
그래서 완벽한 제재라는건 없음
1920~30년대 협력으로 따지면 자유로운 미국기업이 있긴한가
그래서 FDR도 내부 분탕들 때문에 꽤 고난적으로 대통령 직을 수행했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