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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은 80년대까지 구 소련의 OMG 개념을 본받아 기계화부대를 중심으로 종심기동 및 돌파 교리를 추구했고 이런 기계화부대의 기동을 방해하는 애로점, 목, 특화점을 미리 선점 및 통제하거나 적후를 타격해 혼란을 일으켜 공세 여건을 조성하기 위한 목적으로 경보병 부대를 운용했음.


이런 목적으로 운용하던 기계화부대들은 걸프전, 고난의 행군, 그리고 특히 OEF, OIF 이후로 중대한 전환점을 맞게 됨. 이유는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어려워진 경제여건과 경제제재로 중장비 유지 능력이 현저히 저하된 문제, 그리고 두 번째는 아무리 강력한 기계화부대라도 결국 대칭 전력인 이상 발달한 ISR 탐지자산과 C4I에 노출되면 강력한 항공 및 정밀 타격 자산에 가루가 되기 십상이었기 때문임.


반면 경보병 부대는 넓고 얕게 분산되기 때문에 강력한 ISR 능력으로도 탐지하기가 쉽지 않음. OEF, OIF 당시 미군도 개전 직후에 전차나 장갑차, 전투기를 전부 가루로 만들었지만 소규모 게릴라 공격에 10년 넘게 고생을 한 바 있음. 결국 대칭 전력의 가성비가 저하되는 이런 저런 이유가 겹치며 비대칭 전력 강화 쪽으로 노선을 틀었고 그 결과가 경보병 부대의 확대임.


북한군 전연 군단의 경보병 부대는 도보를 통한 소부대 야간 침투를 기본으로 함. 군단 및 사단 예하 경보병 전력은 대략 10명, 12명으로 일개 분대가 구성되며 국군의 군단 및 사단 작전지역 후방 30~70km 사이에서 운용될 것임. 이들의 목적은 아군의 보급, 수송 등 전투지원, 전투근무지원 부대, 재편성 및 휴식 중인 예비대, 지휘소, 통신, 정보 등 주요 노드를 파괴하는 것임. 이러한 활동으로 방어 작전 시에는 진격하는 국군 전투부대의 공세를 둔화 시켜 종말점을 앞당기고, 공격 작전 시에는 예비대로 둔 기계화부대의 돌파를 위한 여건을 조성할 것임.


이를 위해 좁은 정면에 공격준비사격을 대규모, 혹은 산발적으로 형성하여 배후 타격 여건을 조성한 첨입 후, 후방 진출을 감행할 것임. 전체 20만의 비대칭 게릴라 전력 중 침투 단계에서 약 50%가 손실 된다고 해도 10만임. 이미 감축 된 병력으로 더 넓어진 책임 지역을 감당해야 하는 군단 및 사단 후방 병력의 대응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고, 여기에 대처를 제대로 하지 못한다면 전방의 전투부대는 작전을 지속해나가기 어려울 것임. 특히 침투 이후 경보병들에게 가장 큰 피해를 입을 부대는 공세 첨단의 전투 부대가 아니라 현저히 낮은 야간가시화 능력, 떨어지는 소부대 전술 능력을 가진 후방의 지원 부대임.


국군이 기존의 군단 예하 특공연대를 여단급으로 확대 개편하고, 사단 수색 대대를 증편하며 전원 간부화를 통해 숙련도를 높인 것도 북한의 경보병 부대 개편과 무관하지 않음. 특공/수색의 임무는 적진 종심 침투도 있지만 지휘소 방어, 경계 및 후방으로 들어 온 경보병 병력의 대침투 작전도 맡게 됨.




혹시 경보병들이 밀고 들어와서 민간인 학살 하면 어떡하냐고 걱정하는데, 6.25 전쟁의 초기 작전 실패 이후 반성의 의미 및 전훈 도출을 위해 김일성 주도로 열린 별오리 회의에서는 국방군 잔당을 철저하게 소탕하지 못하고 유생역량을 보존시켜 후퇴한 국군이 재편성하고 다시 반격하게 만든 것을 패배 요인으로 지목하고 있음.


여기서 유생역량이란 전투 병력과 개소닭말은 물론, 비무장 의무병력, 더 넓게 해석하면 징집 가능 연령대 및 군수 및 경제 활동으로 전투 능력을 지원하는 민간인도 말살 대상에 포함 됨. 소련 시절부터 내려온 교리고 그 후신인 러시아 군이 우크라이나 가서 어떤 짓거릴 저질렀는가 보면 전투 지속을 위한 보급조차 현지 약탈로 해결해야 하는 북한군은 더 매운맛을 보여줬으면 줬지 결코 덜하지는 않을거임. 단지 적 병력보다 우선순위에서 좀 떨어질 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