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반왕자(淨飯王子,석가모니)는 옛날의 재주가 뛰어난 사람이었으니, 그가 애당초 어찌 대지(大地)의 독로한(禿驢漢, 중을 기롱하여 부르는 말)으로 하여금 이욕의 교통(膠筒) 속에 모두 붙게 했겠습니까? 그러나 지금 치의(緇衣)를 입고 수염을 깎은 무리들은 눈에는 붉은 독기가 있고 언어는 모질어서 청정(淸淨)한 자비(慈悲)의 사상은 원래 조금도 없습니다.

북한(北漢)의 승려는 이욕에 명예까지 겸하여 가사(袈裟)에 매겹(韎韐, 가죽 슬갑(膝甲))을 띠고 조총(鳥銃)을 육환장(六環杖) 가에 기대 놓았으니, 중냄새는 풍기지 않고 화약 냄새만 코를 찌르며, 수염 없는 양 볼에 쌍옥(雙玉, 한쌍의 구슬)이 별처럼 번쩍거리니 더욱 미워할 만합니다. 그러나 이 무리는 함께 밥먹고 함께 잠자는 데에는 형제와 같은 의리가 있어 끝내 해치거나 흠잡으려는 마음이 없으니, 이것이 바로 백단(百短) 중에 촌장(寸長)이니 여래(如來)의 계율(戒律)이 남은 것은 이것뿐입니다. 나는 매양 이 일을 한탄하였는데 지금 증약이 그것을 말하니 슬픕니다.

-이덕무, 청정관전서 제16권 -

조선 후기 학자인 이덕무의 문집인 청정관전서에 나온 글임.

보통 대중매체에서 승병하면 장병기나 둔기들고 휘두르는 모습으로 묘사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미 임진왜란 도중에도 승병들이 조총과 도창 등의 기예를 알려달라고 요청하고, 구한말 주미 공사였던 포크가 광주 유수부 방위시설 둘러다보면서 사찰에 짧은 소총들이 비축되었다는 기록을 남긴걸 보면 승병들도 조총을 많이 사용했던 것으로 보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