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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어로 '특수부대'를 뜻하는 닥콩(Đặc công)은 베트민(Việt Minh)이 프랑스를 상대로 싸우던 1차 인도차이나 전쟁 때 탄생했다. 당시 베트민은 베트남 곳곳에 퍼져있는 프랑스군의 전초기지를 공략하려 했지만 제대로 된 대구경 야포는 커녕 박격포조차 구하기 어려웠다. 결국 베트민 지휘부는 자신들이 유일하게 우위를 차지하고 있는 '인력'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다. 소규모의 병력을 침투시켜 폭발물을 설치하여 적의 물자나 주요시설을 파괴하는 지극히 원시적인 전술이었다. 베트민은 1948년 가을부터 1950년대 겨울까지, 약 2년간의 시행착오 끝에 아주 많은 병사들의 피를 댓가로 자신들만의 비정규전 개념을 확립했다. 그리고 1948년 3월, 마침내 바 끼엔(Ba Kien)의 교량을 성공적으로 파괴함으로서 자신드르이 새로운 전술이 가능성이 있다는 걸 증명했다. 1951년 6월에는 300kg의 폭발물을 실은 대나무보트로 군수물자를 운반하던 프랑스 측의 화물선을 침몰 시키면서 해상통제권까지 위협했다. 이후 프랑스가 물러가고 그들의 적수가 남베트남과 미군으로 바뀐 후로도 닥콩은 인도차이나 반도 전역에서 활동하며 그들을 괴롭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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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베트남군(NVA)은 1967년에야 육군과 해군에 특수전부대를 정식 창설했지만 이미 닥콩의 규모는 9개 대대를 넘어섰다. 중대 규모를 기본로 하는 닥콩은 일반 징집병들보다 최소 3~6개월가량 더 훈련을 받았다.


닥콩은 은엄폐의 대가였다. 이들은 목표지역 침투 전에 최대 한달 가량을 훈련하였다. 기도비닉을 유지하기 위해 소리가 나는 철제 장구류는 사용하지 않았다. 예비탄창도 챙기지 않거나 단검 하나만 들고 잠입하기도 했다. 침투 당일에는 반바지 하나만 입고 온몸에 진흙을 칠했다. 이들이 뚫어야 할 미군의 전술기지는 최소 수겹의 철조망과 지뢰밭으로 이뤄져있었다. 닥콩 대원들은 단검만으로 지뢰밭을 개척하고 수시간에 걸쳐 침투하는데 도가 텄다. 대부분은 월광이 거의 없는 새벽 시간대를 노려 침투해왔고 만약 비가 온다면 그날은 마음놓고 뛰어다닐 수도 있었다. 급할 경우엔 나무지지대를 밟고 철조망 한줄 정도는 도움닫기로 뛰어넘도록 훈련 받았다. (주: 최고 침투기록 보유자는 쾅치성에 위치한 Cồn Tiên 기지의 23겹짜리 윤형 철조망과 지뢰지대를 뚫고 탄약고를 폭파한 무명의 닥콩대원들이었다.)


미군은 육안감시만으로는 닥콩을 잡기 힘들다는걸 깨달고 군견을 적극적으로 사용했다. 하지만 닥콩대원들은 침투 며칠 전부터 향신료가 들어가지 않는 식사를 하며 정글속에서 맨몸으로 생활하며 체취를 없애는 방법을 썼다. 진흙을 바르는 이유도 이 때문이었다. 군견들은 확실히 효과가 있었지만 반대로 감지하지 못하고 그냥 지나갔다는 사례도 꽤 많았다. 남베트남군의 경우 군견보다는 거위를 많이 풀어놨다. 거위는 공격력은 떨어졌지만 개보다 탐지능력이 좋았다. 이에 닥콩 대원들은 풀피리로 거위들이 싫어하는 뱀소리를 내서 거위를 쫒아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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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지에 침투하여 쥐도새도 모르게 주요 목표물을 타격하고 빠져나가는 닥콩은 미군들에게 매우 골칫거리였다. 닥콩은 무장이 매우 빈약했으므로 일단 걸리면 그저 움직이는 타겟에 불과했다. 닥콩 대원들의 손실율은 매우 높았으나, 북베트남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이 부대에 입대하려고 줄을 섰으므로 병력자원만큼은 넘쳐흘렀다. 이들이 타격하는 곳은 전초기지 뿐만 아니라 수도 사이공의 탄손누트 국제공항까지 전후방을 가리지 않았다. 이들에게는 전용 덕헌터 패턴이 들어간 위장복이 지급되었다. 소매와 허리, 아랫단에 밴드가 들어간 이 옷은 침투시 어딘가에 걸리는 것을 방지하고 쉽게 입고 벗을 수 있도록 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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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콩의 전술은 매우 원시적이고 사람을 갈아넣는 것에 지나지 않았지만 미군들에게는 매우 위협적이었다. 백명을 잡던 천명을 잡던 한번 뚫려서 터지면 엄청난 손해였기 때문이다. 미군은 닥콩을 공병(sapper)이라고 부르며 총한자루와 단검만을 가지고 사선을 넘어오는 이들의 위험성을 높게 평가했다. 한국군도 미군의 용어를 그대로 받아들여 닥콩을 된발음으로 ''라고 불렀다. 1969년 구정 공세 때 사이공의 미대사관에 침투한 것도, 후에에서 미해병대를 상대로 선두에 서서 치열한 시가전을 벌인 것도 전부 이런 닥콩들이었다. 일부 닥콩부대는 라오스와 캄보디아에서 활동하는 미군 특수전부대와 '개발단'을 추적하는 임무를 맡았다. 호치민 루트를 밥먹듯이 타격하던 특수전그룹 출신들도 공통적으로 이런 닥콩들이 일반 베트콩들보다 훨씬 위협적인 상대였다고 회고했다. 베트남 전쟁이 끝난 이후로도 닥콩은 정규편제로 남아 중월전쟁, 캄보디아 침공의 첨병으로 활약했다. 21세기 오늘날까지도 닥콩이라는 이름은 베트남 특수전군의 총칭으로 사용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