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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롬비아는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중 유일하게 한국전쟁에 전투병력을 파병한 국가다.


본래 미국은 멕시코-아르헨티나-브라질등 남미 주요국가들에게 한국전쟁에 병력을 파병해줄것을 요청했으나 이 국가들은 각자의 사정 때문에 이 요청을 쌩깠다.


그와중, 콜롬비아의 새로 당선된 대통령 라우레아노 고메즈(Laureano Gómez)는 미국과의 관계를 개선하고 싶은 욕심에 병력 파견에 응하였다. 2차대전 때 콜롬비아는 노골적인 친독노선으로 미국에게 찍힌 상태였고, 콜롬비아 정부는 미국이 초강대국이 된 상황에서 이 관계를 개선시켜야 한다는 중압감에 시달렸다.


당시 콜롬비아군은 좌익 반군세력과의 잦은 전투로 인해 함부로 병력을 뺄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콜롬비아 국방부는 2선급부대, 경찰, 예비군들을 대상으로 병력을 강제차출 해가며 겨우겨우 1개 대대 규모의 전투병력을 긁어모아 한국으로 보냈다. 대부분의 병사들은 한국이 어디있는지도 몰랐고 전쟁에 가고 싶어하지도 않았다. 그들에게 동기가 된 것은 미합중국이 지불하는 높은 액수의 월급이었다. 지원율이 바닥을 쳤기 때문에 일단 서류만 넣으면 100% 합격이었다. 이를 이용해서 현시창 같았던 인생을 탈출하려고 일부러 한국행을 택한 콜롬비아 젊은이들도 있었다.


이렇게 결성된 콜롬비아 대대(Batallón Colombia)는 태평양을 횡단한 끝에 1951년 6월 15일 부산에 도착하였고 짧은 훈련을 거친 뒤 미 7사단과 25사단에 배속되어 전투에 참여했다. 콜롬비아 해군의 타코마급 2척도 미해군 소속으로 소해임무에 투입됐다.


그들이 본 한국은 제대로 된 도시도 없고 온통 산투성이의 칙칙한 국가였다. 미군은 콜롬비아가 고산지대 국가이다보니까 이들 역시 산악전에 잘 적응할거라고 여겼다. 하지만 온난건조한 기후에 익숙했던 콜롬비아군들에게 한국의 겨울은 너무나도 견디기 힘든 날씨였다.


비록 강제로 끌려와서 동기도 부족하고 적응도 힘들었지만, 콜롬비아군들은 정말 열심히 싸웠다. 이들이 투입된 전투는 썬더볼트 작전, 삼각고지 전투, 폭찹힐 전투등 한국전쟁 후반기를 장식한 대표적인 전장들이었다. 특히 1953년 3월에 벌어진 5차 불모고지 전투에서 콜롬비아 대대는 5일간에 걸쳐 중공군의 대공세에 맞서 치열하게 싸웠고 97명 전사, 30여명 실종이라는 부대 전체의 20%에 달하는 사상자를 내면서 전선이 붕괴하는 것을 막아냈다. 대부분의 콜롬비아 참전용사들도 이 불모고지 전투를 제일 힘들었던 시기로 기억한다.


본래 미군 지휘관들은 콜롬비아군의 전투력에 대해 반신반의하고 있었다. 이들은 다른 유엔군들과 달리 전의가 많이 약해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위 전투들을 계기로 콜롬비아군은 미군에게 재평가 받았고 믿을만한 동맹군으로 각인되는데 성공했다.


콜롬비아 대대는 1953년 휴전협정이 체결될 때까지 한국에서 싸우며 전사 145명, 부상 610명, 실종 69명이라는 피해를 입었다. 그리고 이듬해인 1954년, 한국을 떠나 지구를 다시 반바퀴 돌아 카리브해의 고향으로 돌아갔다.


콜롬비아는 한국전쟁을 통해 두가지 확실한 이득을 얻었다. 첫번째로 미국과의 관계 강화였다. 비록 정세가 불안정하긴 하지만, 미국은 콜롬비아가 믿을만한 동맹국이라고 평가했다. 이 시기 맺어진 미국과 콜롬비아의 군사적 협력관계는 21세기 오늘날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두번째는 콜롬비아의 군사역량 증진이었다. 기존 콜롬비아군은 1차대전 수준의 전근대적 군대였지만, 미군의 지휘를 받으며 신식 전술과 장비를 경험하고 온 장교진들은 귀국 후 엘리트 라인으로 취급됐다. 이들중 몇몇은 초고속 승진하며 콜롬비아군의 개혁을 지휘했고 군현대화의 기틀을 닦았다.  


하지만 고향에 돌아간 콜롬비아 병사들에 대한 사회의 시선은 곱지 않았다. 사회주의 운동이 전국적으로 퍼져있던 콜롬비아에서 이들은 '미제의 앞잡이' 취급을 받았다. 많은 병사들이 전역할 수 밖에 없었다. 그중 상당수는 전역 후 경찰에 취직했다. 좌파운동으로 인해 치안이 불안정해져서 경찰도 대규모 인력충원을 벌이고 있던 시기였다.


1954년, 보고타에서 벌어진 학생시위를 진압하던 경찰은 도중 실탄발포를 해대서 11명의 사망자와 39명의 부상자가 나오는 대참사가 벌어졌다. 이에 시위대 측은 '한국에서 민간인을 학살하고 온 악마들이 우리에게 발포를 했다'라고 프레임을 씌워 비난해댔다. 진실인지 거짓인지는 둘째치고, 이 선전은 제대로 먹혀들어갔고 한국전 참전용사들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급속도로 나빠졌다. 참전용사들은 자신이 한국에 갔다왔다는 사실을 숨기기에 바빴다. 1962년 한국과 콜롬비아가 공식수교한 후 한국정부는 참전용사들에게 감사를 표하려고 했지만 많은 이들이 행사에 참여하길 거부했다. 거기다 70~80년대부터는 마약 카르텔들 때문에 콜롬비아의 정세가 어지러워지면서 한국과의 관계도 많이 소원해졌다. 콜롬비아에서 한국전쟁 기념사업과 행사가 다시 빛을 발하게 된 것은 아주 오랜 세월이 흐른 2000년대 이후부터였다. 코이카를 필두로 한 NGO 단체들이 참전용사들을 일일히 찾아다니는 노력 끝에 참전용사들도 더 이상 자신의 과거를 숨기지 않고 양지로 나오기 시작했다.





주: 한국전쟁에 참전한 콜롬비아군을 다룬 '맘브루'라는 책이 있음. 한번 읽어보길 권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