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참리 같은 역사학자들은 영국이 1940년 히틀러의 평화협상 제안을 받아 독일과 소련이 전쟁하다 지치는 꼴을 봤어야 했다고 주장한다. 처칠이 아닌 다른 사람이 이끄는 정부였다면 영국이 독일과 단독 강화를 맺어 히틀러가 스탈린과 자유롭게 싸우도록 해주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할 수 있다. 독일이 오로지 소련 하나만 상대하는 전쟁이었다면 적어도 영국의 우익에게는 매력이 좀 있었을 것이다. 여러 보수파는 언제나 공산주의를 파시즘보다 더 큰 위협으로 여겨왔으니 말이다. 가령 1940년에는 스탈린에 맞서는 핀란드의 투쟁에 널리 지원이 이뤄졌다. 세인트 조지 연대(아마 존 애머리가 지휘하는)[영국과 영연방 출신의 전쟁 포로 중에서 자원자를 모집해 구성한 일종의 나치 친위대]가 공산주의에 맞서 싸우고 독일의 지휘 아래 복무한다는 상상은 스페인과 프랑스 파시스트들이 동부 전선에서 그랬듯 불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심지어 정부 내에서도 처칠과 그의 가까운 지지자들이 새로 구축한 친러 성향에도 불구하고 히틀러와 스탈린이 맞서게 하는 전략을 선호한 사람들이 있었다. 그러나 1942년까지도 토리당 각료 존 무어-브라바존(John Moore-Brabazon)은 많은 사람의 사적인 속마음을 공개적으로 발언한 탓에 사임해야 했다. 나치 독일과 스탈린의 러시아가 싸우는 것은 우리에게 좋다는 속마음 말이다. 그것은 헨리 키신저가 이란-이카르 전쟁 때 취한 것과 동일한 입장이었다.
"양쪽 모두 질 수 없다는 게 애석하군."
이것이 한마디로 표현한 수정주의자들의 주장이었다. 그렇다면 조만간 어느 한쪽이 마침내 승리했을 때 일어나지 않을 수 없었을 결과는 무엇일까? 무솔리니가 그리스를 침공하려다 실패하고 영국군이 리비아에서 이탈리아군을 공격한 지중해 전쟁으로 관심이 분산되지 않았다면 승자는 독일이었을지도 모른다. 독일이 지중해에 개입하면서 리비아에 군대를 보내야 했고 불가리아, 유고슬라비아, 그리스, 크레타까지 점령했으므로 스탈린을 치려는 바르바로사 작전 개시가 결정적으로 중요한 순간 한 달간 늦어졌다. 만약 히틀러가 영국과 모종의 합의를 했다면 그는 지중해에 전력을 분산하지 않고 계획한 일정에 맞춰 소련을 공격했을 가능성이 크다. 특히 전체 육군, 해군, 공군을 온전히 러시아에 집중할 수 있었을 것이다. 서부에서 제2전선이 열릴 희망도 보급선도 그 어떤 연합군도 없는 상태라면 대숙청을 거친 러시아라는 적군, 즉 난쟁이 같은 핀란드도 제대로 쳐부수지 못한 적군은 패해 우랄산맥 너머로 밀려났을 확률이 높다. 사실 독일 육군은 스탈린그라드를 수중에 넣고 레닌그라드를 포위했으며 모스크바의 외곽 전차 역에 이르렀다. 수정주의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영국이 1940년이나 1941년에 독일과 화평을 추진했다면 러시아에서 독일이 승리했을가능성은 확실히 컸다.


출처: 버추얼 히스토리, 니얼 퍼거슨, 김병화 옮김, 지식향연, 2024년, 399~403쪽
처칠이 언씽커블 생각한거 보면 1940년에 차라리 히틀러 제안 받고 독소전쟁 나는 것도 미국 영국 입장에서 현실판 에일리언 vs 프레데터일테니 꿀잼일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