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5년 4월 30일 북베트남의 공격 및 남베트남의 항복으로 베트남이 통일되자, 김일성과 정무원 총리 김일동은 남베트남 임시혁명정부 지도자들, 그리고 베트남민주공화국 정부에 축전을 보냈다. 하지만 북한정부는 북한방송을 통해 1975년 베트남 통일을 언급하게해 달라는 베트남 대사의 요청을 거절했다. 전반적으로, 베트남정부는 북한 언론에 보도된 베트남통일 관련 보도의 양과 질 모두에서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고 한다. 이러한 북한 정부의 소극적 태도는, 베트남 인민들의 성공, 승리, 그리고 통일이 북한에서 폭넓게 이야기되는 것이 불편했기 때문이었다. 이와 관련해 주평양 베트남대사(Cao Kien Thiet)는 “북한정부가 펼치는 통일정책의 정확성에 대해 인민들이 보일 수 있는 부정적인 반응과 의심을 두려워했기 때문”이었다고 지적했다.
또한 베트남의 통일과 관련해서 북한과 북베트남의 미묘한 갈등이 있었으며 북베트남은 이 문제의 원인은 북한에 있다고 하였다. 즉 북베트남측에 따르면 베트남이 주체사상 없이 “미제”에 승리 할 수 있었던 방식과 그 사실은 북한
지도자들에게 “질투”를 일으키는 것이라고 하였다. 이와 동시에 북한의 인민들이 베트남이 주체사상 없이도 통일을 이룰 수 있었다는 생각을 들게 하는 점 역시 북한 지도자들의불안을 고조시킨 것이라 지적했다.
(중략)
통일이란 것은 당시 북한에게는 완전히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에 예민할 수 있었다. 내부적 투쟁의지가 외세의 방해공작을 무력화시킬 수 있을 정도로 컸던 베트남과는 반대로, 북한은 당시 중국에 의존하고 있었기 때문에 중국의 지원 없이 무력전쟁을 실행에 옮길 가능성이 실제로 매우 적었던 것이다.
출처- 붉은혈맹-평양, 하노이 그리고 베트남전쟁, 도미엔 저,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229~233쪽, 202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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