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0년의 6주컷을 보며 우리가 낫질을 상상하는 거지만 당대에는 작전 기획 단계부터 측면 노출 문제 등등 가장 기본적인 것부터 약점을 지적당해서 기획자(=만슈타인) 유배 엔딩으로 끝날 뻔했음.

작전의 총론과 각론을 완성하는 과정에서도 작전술 단위로 기갑 전력을 운용할 제대 단위로써 기갑군 편성을 요구하는 구데리안 같은 소장파 장교와 이를 반대하는 기성 장교 사이에 큰 갈등이 있었고 이를 봉합하기 위해 일종의 비상설 제대인 기갑집단을 편성하는 등의 여러 위기와 갈등이 있었음.

더욱이 작전 개시 후에도 아르덴 교통 정체, 뮈즈 강에서의 일시적인 교착 상태 등등 오판과 위기와 임기응변으로 점철된 순간이 끊임없이 있었고 작전 총론, 각론에서의 엉성함을 현지 지휘관의 역량으로 메꿔 나가는 걸 지켜보며 마음을 졸이고 자기 권한을 이용하여 급진적인 전쟁 지휘 또는 상황 전개에 제동을 걸고자 한 고위 지휘관도 분명히 있었음. (대표적인 사람이 룬트슈테트)

한편 연합군측은 낫질이 시작된 후에도 독일군의 주공은 저지대 국가에 진입하는 B집단군이라 판단하고 있었고 스당을 돌파한 A집단군이 대서양으로 진격하는 양상을 파악하고 나서야 비로소 B집단군이 모루이고 A집단군이 망치인 양익 포위 작전임을 파악하고 필사적으로 됭케르크로 철수작전과 지연전을 동시에 진행하고 순식간에 모랄빵이 난 연합군은 아라스에서의 소규모 반격을 제외하면 독일군이 작전상의 계획 변경을 초래할 수 있는 유의미한 반격을 거의 행하지 못했음.

정리하자면 1940년의 6주컷이 신화화된 건 각종 요소가 결합하여 시너지를 일으킨 결과인거지 처음부터 신화적 요소를 내재하고 있었던 것이 아님.

결국 현재 우크라이나군이 알 수 없는 규모로 이행하고 있는 러시아 본토 공격이 어떤 의도로 진행되고 어떤 과정을 통해 전과를 확대하거나 또는 교착되는지 그리고 결과는 어떻게 되는지는 사후 강평이 될 수 밖에 없음.

우리끼리야 당장은 홍낄낄하면서 지켜볼 수는 있겠지만 정말로 어떤 의미있는 결과를 만들어 낼지는 훗날 알게 될거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