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고로 오펜하이머와 에드워드 텔러의 첫 계산대로 진짜 지구 정도 행성을 파괴하려면 2.240×1032J(2구2,400양줄) 정도의 힘이 필요한데, 6500만 년 전 공룡을 멸종시킨 운석보다 5억배 강력한 힘. 그런데 그렇게 무서운 무기-지구파괴폭탄-를 가진 도라에몽.....)



모든 보고서를 입수한 미국의 최고위급 연구ㆍ개발 행정 책임자 배너바 부시는 1941년 10월 9일 루스벨트 대통령과 헨리 월리스 부통령을 찾아갔다. 새로운 정보를 토대로 루스벨트는 부시에게 필요한 자원을 모두 제공해주었따.

부시는 콤프턴에게 원자탄 개발 책임을 맡겼다. 콤프턴은 시카고대학에 금속학 연구소를 차렸다. 목표는 원자로에서 지속적인 연쇄반응을 만들어내는 것이었다. 콤프턴은 명민하고 카리스마 넘치는 이론물리학자 J. 로버트 오펜하이머에게 많은 중요한 문제를 해겨해야 하니 탁월한 학자들을 모아달라고 요청했다. 오펜하이머가 "선수들"이라고 부른 학자들 가운데에는 에드워드 텔러와 한스 베테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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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해 여름 원자탄 개발을 위해 소집된 과학자들은 프로젝트를 중단하지 않을 수 없는 정도의 강력한 공포를 느꼈다. 곰곰이 따져본 결과 물리학자들은 원자탄을 폭발시키면 해양의 수소 내지는 대기 중의 질소에 불을 붙이는 결과가 돼 지구가 화염에 휩싸일 수 있다는 사실을 불현듯 깨달았다. 뉴얼 파 데이비스는 물리학자 오펜하이머와 어니스트 로런스를 다룬 연구서에서 회의실을 긴장으로 몰아넣은 공포에 대해 이렇게 적고 있다. "오펜하이머는 너무도 놀란 눈으로 칠판을 응시했다. 텔러를 포함해 회의실에 있던 다른 얼굴들도 점차 오펜하이머와 같은 표정이 돼갔다. 텔러는 핵분열폭탄의 발열량을 정확히 계산해냈던 것이다. 오펜하이머는 중수소로 감싸든 말든 그 정도면 지구 전체의 대기를 불태울 정도라고 생각했다. 그의 생각이 틀렸다고 증명할 수 있는 사람은 참석자 가운데 아무도 없었다. 오펜하이머는 급히 콤프턴과 협의를 했다. 콤프턴은 회고록 <원자탄을 찾아서>에서 자신과 오펜하이머는 "우리가 만드는 원자폭탄이 대기나 바다를 폭파시키지 않는다는 확실하고도 믿을 만한 결론을 제시하지 못하면 그런 폭탄은 절대 만들어서는 안 된다"는 데 동의했다고 설명했다. 콤프턴은 이렇게 회고했다. "나치의 노예가 되는 편이 인류를 말살하는 위험을 감수하는 것보다 낫다!" 한편 버클리에서는 베테가 추가로 계산 작업을 실시해 텔러의 계산은 복사에 의해 흡수되는 열을 감안하지 않은 것이라는 점을 알아냈다. 그렇게 되면 지구를 날려버릴 확률은 100만 분의 3으로 줄어든다. 이 정도면 기꺼이 감수할 수 있는 정도의 위험이었다.





출처: 아무도 말하지 않은 미국 현대사 1, 올리버 스톤 외 1명 저, 이광일 옮김, 들녘, 2015년, 242~24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