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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는 황해도 해주 옆 은율이라는 마을에서 일본인이 운영하는 과수원에서 일하는 3남매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나심
해안으로 가면 멀리서 제철소 굴뚝연기가 보인다는데 북쪽에 제철소가 있었나봄? 아무튼



때는 1945년 8월 15일 여느때와 다름없이 학교를 다녀와 농사일을 돕는 삶에서 갑자기 해방이라는 이야기를 듣게됨
그렇게 일본의 식민지배는 끝이났고 민중들은 독립을 환호하며 당시 일본인 지주가 살던 집들과 회사 사무실등을 모조리 때려 부수고 불태웠고
겁먹은 몇몇, 일본인들은 야반도주하거나 사람들에게 떡이되도록 맞았다고함 여튼 그러다가
할아버지 집으로 당시 일본인 지주와 직원이 몰래 찾아왔고 밥을주고 숨겨준뒤 도망가는걸 도와주었다고함



그렇게 해방이 되고나서 갑자기 비행기에서 종이 삐라를 뿌렸다는데 내용은 기억을 못하신다함 외국어가 써져있었다고
얼마 지나지않아 소련군이 남쪽으로 내려왔다고 얘기해주심 트럭을 타고 할아버지 마을까지 왔다고 함



당시 소련군의 첫인상은 굉장히 더러웠고 거칠었다고 얘기하였고 평양에선 약탈과 여자들을 강간하고 다니고 있다는 이야기와
평양사람들이 화가나서 박치기로 싸웠다 이런 소문을 들었는지라 할아버지 여동생에게 나오지 말라고 얘기하였다하심
소련군이 마을에 와서 한 행동들은 말그대로 약탈+막무가내 였다 하심
지붕위에 열린 박을 보고 수박인줄 알고 총을쏘거나 지붕위로 올라가 톱질, 팔뚝에 손목시계 주렁주렁 달고다니는 소련군,
시장에서 총부리 들이밀며 먹을걸 내놓으라는 소련군

다와이!!라고 외쳤다고
훌레바리? 라는 흑빵을 베개 삼아 누워서 자는 소련군 뭐 이런이야기를 해주셨고

소련군은 당시 정미소에 저장되어 있던 쌀들과 보리, 곡식 탈피기계? 그리고 발전기같은걸 모조리 뜯어서 트럭에 싣고 다시 북쪽으로 올라갔다고함



그렇게 소련군이 진주해 오고 나서 시간은 흘러 흘러 1950년이 되었음
그러면서 학교에서는 트로츠키? 우크라이나 지역의 사과와 공산주의를 찬양하는 선전영화를 보여주었고
엄청큰 사과와 곡식 영상들을 보여주었다는데 이게 인상깊으셨나봄 꼭 이야기 하심
당시 할아버지는 전쟁이 났다는 것은 모르고 라디오 방송을 듣고 알았다함 학교에 가니 뭐 조국의 통일을 어쩌고 하는 학교선생의 이야기도 들었고



남쪽으로 내려오는걸 결심하게 된것은 자의가 아니셨음
50년도 9월 전황이 심각해졌는지 당시 중학생2학년이었던 할아버지는 중학교 3학년 이상의 나이의 학생들을
모조리 징집해가는걸 보게되었고 곧 북쪽으로 피난을 하라는 명령이 떨어졌다함
북쪽으로 이동하는데 이때는 야간에만 움직여야 했다고 말씀하심 함부러 대낮에 길을 걸어다니는건 자살행위 였다 말해주심
낮에 대로변에 보이는 것들은 유엔공군에 의해 기총소사를 당했다고



차량이나 소달구지가 보이거나 사람이 모여있는걸 발견하면 어디서 호주기가 쌔액소리를 내며 나타나 쑥대밭을 만들고 사라졌다고 얘기해주심 사람이 조각이 났다고

피난길에 올라 계속 북으로 이동하던중 여동생이 건강이 나빠져 급사 하셨고 묻어주었다고함
그리고 당시 해상을 장악하고 있던 유엔군의 도움을 받아 끊임없이 유격대원들이 상륙해 습격해 사살하고 포로로 잡아가거나
북한 주민들의 탈북을 돕는일이 잦아지자 해안가에서 30km 떨어지라는 피난명령을 내렸다고 이야기 해주셨음
그렇게 가기싫었던 사람도 야간에 이동하던중 할아버지가 속해있던 피난민 무리가 구월산 유격대의 습격을 받았다고 얘기해주심
여기서 노인이나 여자, 어린아이들은 내버려두고 가지고 있던 소달구지와 소, 그리고 징집연령의 남성들은 구월산 유격대가 초도라는 섬으로 데려갔다고 하심
여기서 할아버지는 가족들과 이별하게됨 전쟁의 슬픔이 이런 생이별이겠지....
데려온 소들중 일부는 도축해서 먹고 일부는 거기서 키웠다 얘기해주심

초도로 데려온(끌고온) 장정들에게 간단한 군사훈련을 시켰고 총기조작법을 알려준뒤 유격대 인원으로 편입시켰다고 함
할아버지가 처음 받은 총은 M1개런드
당시섬에는 레이더기지를 운영하는 소수의 미군과 국군인원, 해병대, 구월산 유격대 (덩키부대 대원) 이렇게 구성되었다고 했으며

할아버지는 당시 덩키부대? 소속이었다고 하심 Donkey
찾아보니 정리해둔 외국사이트 있어서 링크를 남김 https://arsof-history.org/articles/v3n3_wolfpack_donkeys_page_1.html
할아버지는 나이가 너무 어리고 경험이 적다고 섬의 경비나 물 길어오기, 물자관리나 탄약옮기기, 총기손질, 삽탄 같은 잡무를 하셨고
덩키부대는 주로 야간에 배를 타고 이동해 적 해안에 상륙해 정보를 수집하거나 파괴공작을 하거나 정보원 포섭, 조종사 구출등의 임무를 맡았다고함
이때 미군으로부터 씨레이션을 처음으로 선물받아서 먹어보았는데 과자는 달아서 맛있었는데 나머지는 입맛에 맞지가 않았다고 얘기하심

당시 섬에는 비행기가 착륙할수 있는 해변이 있어 물자를 지원하거나 비행기가 추락한 조종사를 구조 수색하는 일도 있었다고함
섬에서 내륙까지의 거리가 가까워서 포격을 하면 섬까지 포탄이 떨어졌는데 이를 사전에 포착해서 포격이 떨어지니 대피하라고
미군이 이야기를 해주면 섬 반대편으로 대피하였다고함 정박해 있던 선박들도 반대편으로 이동하고 다시 포격이 떨어지면 원상태로 복구
정기적으로 포격을 가했는데 별 피해는 없었다고



해병대와 패싸움썰은 해병대는 당시 구월산 유격대를 호의적으로 보지 않았다고함 저것들은 진짜 군인이 아니다, 군번도 없는 것들인데 국군이 아니다
이런식으로 무시하였고 처음에 구월산 유격대 대원(덩키부대)는 문제를 일으키고 싶지 않아서 조용히 지내려 했는데 당시 해병대 대원이
손찌검을 하는일이 생겼고 이 일로 패싸움을 벌어짐 할아버지 말로는 수가 딸리니 해병대원들은 도망갔다고함

그리고 해병대에선 이 일을 문제삼아 징계를 내렸고 당시 해변에 해병대 대원을 전원 집합시킨뒤 완전군장에 총을들고 목까지 올라오는 수심까지 걸어가 서있게 했다고함
총은 젖으면 안되니 양손위로 올리고 있고 뭐 그런 극기훈련을 계속 반복시켰다고함



그렇게 계속해서 초도에 주둔중이던 어느날 휴전협정이 체결되었고 당시 북한은 휴전선 이북에 있던 모든섬에 주둔중인 유엔군과 국군은 퇴거하고 섬을 내놓으라고 했다함
그렇게 할아버지는 인천의 섬으로 이동하셨고 거기서 해소식을 가지고 인천에서 서울로 이동, 거기서 다시 강원도 홍천으로 이동해 8사단에서 군생활을 4년하고
제대하심 당시 할아버지에게 고향 가보고 싶지 않으시냐 가족들 안보고 싶냐 말을 했었는데
내가 남쪽으로 피난온게 알려져서 다 죽였을 거다 살아있지 못할거다 고향에 가보고 싶지 않으시다 궁금하지 않다 하셨는데
돌아가실때 고향땅 한번 보고 가셨길 싶음 훈장 받은 사진도 있는데 나중에 할머니집 가면 올려볼게

두서없이 재미없는 긴글 읽어줘서 고마워 군붕이 여러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