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선, 해전, 일분군 관련 밀글을 주로 작성하던 배군 아재가 16년 전인 2008년 이글루스에 작성했던 Sink the Bismarck!!! 4부작 중 4부
https://cafe.naver.com/bitethatbait/117253 - 1부에서 4부까지의 전체 내용 백업본은 해당 링크 참조
* 해당 글 사진들 중 없어진 건 공란으로 놔둠
< 거함의 최후 >
제 1막 (0848 - 0858시) : 영독전함 결전을 개시하다.
반신불수가 되어 버린 비스마르크는 앞서 언급했듯 어떻게든 키를 수리하려고 했지만 실패했습니다. 그리고 2230시, 움직임이 눈에 띄게 둔해진 비스마르크를 영국해군 제 4 구축대가 습격했습니다. 이 부대는 직위함이 귀환한 본국함대 기함 킹 죠지 5세의 직위에 임하도록 명령받고 있었지만 구축대 사령인 바이안 대령은 항진 코스로 비스마르크가 접근중이라는 정보를 입수하자마자 견적필전(...)의 넬슨정신을 발휘해 킹 죠지 5세와 합류하기 전에 비스마르크를 먼저 공격하기로 결심했습니다.제 4 구축대의 습격으로 시작된 조우전에서 쌍방은 격렬한 교전을 벌였지만 비스마르크도, 제 4 구축대도 매우 거친 날씨에서 벌어진 교전이었으므로 양측 모두 전과를 올리지 못한 채 약 4시간이 지난 다음날 새벽 0300시경 전투는 종료되었습니다. 비스마르크는 영국 구축함 3척을 격침시켰다고 발표했고 영국측도 마오리, 코사크, 시크가 각각 어뢰를 명중시켰다고 보고했지만 이것은 양측 모두 열악한 시야에서 서로의 포염을 오인했기 때문이었지요. 실제 이 교전에서 양군은 손해가 없었습니다.
참고로 이 전투 직전인 2140시에 뤼첸스 사령장관은 서부 관할구역 사령부에 이제는 마지막이라는 결별전을 타전했습니다(...) 이에 서부 관할구역 사령부나 해군 최고사령부, 게다가 히틀러까지도 공군의 지원을 준비 중이라거나 후드 격침의 무훈으로 기사 십자장을 수여한다는 격려문이 다음날의 0900시까지 수차 발신되었지만 이에 대한 회신은 되돌아오지 않았지요(...)
날이 바뀐 5월 27일 아침, 비스마르크의 운명이 다했다고 깨달은 뤼첸스는 전투일지를 프랑스로 옮기기 위해 아라도 수상기의 발진을 명했지만 사출기의 고장으로 이것도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또한 그 U-556가 이것을 수령하겠다는 통보도 있었지만 이것도 타이밍이 맞지 않안 결국 실현되지 못했습니다. 이후 비스마르크의 전투일지는 생존자의 증언으로 복원되었지만 뤼첸스 제독이 이러한 무리수를 두었던 행동의 동기 등은 영원히 해명되지 않고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0753시, 요함 P.오이겐이 이미 떠나 고립무원의 처지가 된 비스마르크를 마침내 영국 본국함대가 포착했습니다. 가장 최초로 접촉한 것은 중순 노포크였는데 동함으로부터의 전보로 전함 킹 죠지 5세와 로드니, 중순 도세트셔가 각각 서쪽과 동쪽에서 비스마르크를 포위하기 위한 기동을 시작했습니다.
1941년 5월 27일 0847분, 전함 로드니의 포격으로 비스마르크와 영국해군의 마지막 싸움이 시작되었습니다. 그 1분 후, 기함 킹 죠지 5세가 284형 대 수상 수색 레이더로 25,100야드의 거리에서 비스마르크를 탐지해 14인치 주포탄 사격을 개시(*주1) 비스마르크도 약 1 분 후 응전으로 사격을 개시했습니다.양국 전함은 반항전 형태로 돌입해 거리 약 2만미터 내외에서 포화를 주고 받았는데, 비스마르크는 처음엔 로드니를 목표로 사격을 개시했습니다. 0848시, 로드니는 제 2 회째의 일제사격만에 비스마르크를 완벽하게 협차했습니다. (*4) 한편 KGV는 악천후와 더불어 자함의 배연이 역류해 함교를 감쌌고(*5) 비스마르크도 발포시의 포연에 휩싸인 결과 시야가 차단당해 광학 측거의(마이크로미터)로 탄착 관측을 할 수 없는 상황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주) 이 포격이 세계 해전사상 최초로 실전에서 레이더에 의해 사격 지휘를 받은 함포사격.
(*주) KGV와는 달리 로드니는 이때까지도 아직 레이더가 미장비, 즉 광학 측거의로 일궈낸 성과였기에 단 두 번의 일제사로 협차를 잡은 것은 훌륭하다고밖에 말할 수 없습니다.
0852시, 비스마르크는 다시 우현측으로 침로를 수정해 거의 진북으로 변침했습니다. 이것을 본 KGV의 페터슨 함장도 우 20도 변침을 하령, 비스마르크에 거의 직진으로 접근하는 침로를 새로 잡았지만 로드니는 3번 주포탑의 사계를 확보하기 위해 090도로 변침 회두중이었기 때문에 양국 전함간의 거리는 다시 벌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영국함대의 이 노련한 변침기동으로 0853시부터는 KGV의 후부 주포탑과 로드니의 제 3 주포탑도 사계가 전부 확보되었기 때문에 영국함대는 주포전문을 이용한 포격전을 개시할수 있게 되었지요.
다만 KGV는 284형 레이더의 조작원이 아직 훈련 미비라(...) 여전히 정확한 거리를 잡는데 고생하고 있었습니다. 0853시가 될때까지도 거리는 22,400야드라는 보고가 계속 올라오고 있었습니다만 광학 측거의상의 거리 측정에선 20,500야드라는 새로운 보고에 따라 KGV는 앙각을 새로이 수정, 비스마르크의 양현 200야드 위치를 목표로 두번의 일제사격이 비스마르크에 대해서 가해졌습니다.
새로 조정된 거리에 의한 이 일제사격은 단번에 비스마르크를 완벽하게 협차했고 최초의 명중탄이 관측되었습니다. 이 포탄은 비스마르크의 좌현 전방 상부 구조물 기초부를 관통한 뒤 상갑판부에서 작렬해 KGV에서도 섬광과 함께 화재가 일어난 것이 관측되었습니다. 정리하자면 이 시점까지는 양측 모두 동일 침로를 잡고 반항전으로 돌입한 상태에서 양측 모두 주포전문을 서로에게 지향 가능한 사계를 확보한 상태였는데, 상당한 악천후라는(*주) 점은 모두 같았음에도 불구하고 레이더도 없는 상태에서 초탄 발사에서 두 번만에 협차를 낸 로드니나, 레이더의 조작 미스로 새로운 거리정보로 다시 사격을 개시한 KGV가 사격개시 5분만에 명중탄을 낸 것은 정말로 훌륭한 솜씨였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겠지요.
그리고 거의 같은 시각부터는 비스마르크의 우현 전방에 전개중이던 중순 노포크도 거리 약22,000야드부터 포격전에 참가하고 있습니다(*7). 비스마르크의 포격도 이 시간대에서는 상당히 정확했는데 0859시까지 발사한 11번의 일제사격 가운데 세번째 사격은 로드니를 협차하는데 성공했습니다. 그 정확함은 로드니의 공식 배틀 리포트(전투 상세보고)에도「 0859시부터 이어진 우리 함을 향한 적함의 포격은 상당히 정확했다.」라고 기록되었으나 명중탄이 나오지는 않았습니다.
(*주) 영국 해군성의 배틀 리포트에 의하면 당시 해당수역에서는 풍속 10.8m/s ~ 17.1m/s의 거친 바람이 불고 있었고 구름도 많은데다가 일기도 불량해 시야는 매우 좋지 않았음.
제 2막 (0859시 - 0920시): 비스마르크, 치명적 손상을 입다.
0859시, 영 본국함대 사령장관 토베이 대장은 그가 지휘하는 두 전함에 비스마르크와 다시 병행침로를 잡도록 지시합니다. 이 명령에 의해 KGV는 침로를 175도, 로드니는 침로 182도로 재차 변침을 개시했습니다. 이 시점에서 KGV와 비스마르크의 거리는 약 16,000야드까지 좁혀졌는데 유틀란트 해전의 제 1막, 비티 VS 히퍼 순양전함부대의 명중탄이 나왔던 바로 그 거리와 비슷한 거리로 진입하게 되었지요. 허나, 이 직후부터 비스마르크는 치명적인 피탄을 여럿 당하게 되었고 단시간만에 전투능력을 거의 잃게 됩니다.
0859시, 로드니의 16인치 포탄이 비스마르크의 전방 1번과 2번포탑 사이에 명중해 상갑판에서 작렬했습니다. 이 포탄 자체는 함내까지 관통하지는 못했습니다만 폭발에 의해 함내에 대량의 파편을 날리게 되었고 전방 주포탑 포탑구획에 대손상을 줘 이들을 작동 불능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로드니가 날린 단 한발의 포탄이 비스마르크의 주포화력을 한꺼번에 반감시켰던 것이었지요. (*8) (*9).
이 직후인 0900시에는 중순 노포크의 8인치 포탄도 비스마르크의 주 사격지휘소에 명중, 사격 지휘장치를 파괴함으로서 비스마르크의 주 사격지휘소는 기능을 완전히 상실했습니다. 그리고 뒤이은 0902시에도 로드니의 16인치 포탄이 비스마르크의 1번포탑 상부에 명중, 이 포탄은 2번포탑까지도 손상을 주는 것과 동시에 대량의 파편을 함교 부근까지 작열시켜 이 파편에 의해 함교부의 많은 장병이 전사했습니다. (*10).
0902시부터 영국의 두 전함은 새로운 침로로 완전히 정침, 착실하게 비스마르크를 공격할 수 있는 포지션을 잡았습니다.(*11). 또한 0904시부터는 비스마르크 우현 후방에서 나타난 중순양함 도세트셔까지 거리 약 20,000야드부터 포격전에 참가해 비스마르크는 완전히 포위된 형태가 되어부렀습니-_-다.(*12).
0905시, 이 시간부터는 KGV 및 로드니의 부포까지 포격에 참가합니다. 이 시점에서 KGV는 비스마르크의 약 14,000야드 지점에 있었지만 시야 불량은 여전해 관측에 곤란함이 많았기 때문인지 부포는 포격을 때때로 중단하면서 완만한 사격을 실시하던 상황이었지요.
(*8) 이 포탄 명중시각은 Battleships : Axis and Neutral Battleships in WWII의 표기에 의한 것입니다.「전함 비스마르크의 최후」(게르하르트 유나크저)에도 남방을 향한 회두 중에 비스마르크의 전방 갑판에 대한 명중탄을 확인한 취지의 기재가 있으므로 0859 - 0902시 사이에 명중탄이 나왔던 것은 확실하다고 생각됩니다.
참고로 KING GEORGE V CLASS BATTELESHIPS (V.E. TARRANT)에 의하면 이 포탄은 0902시에 명중한 것으로 나와 있습니다. 뭐 0902시에는 1번포탑에도 명중탄이 났다는 기록이 있으니깐 이쪽의 서술이 더 정확한 것인지도 모르겠네요. 참고로 이 책에 의하면 이것이 로드니가 비스마르크에게 준 최초의 명중탄입니다.
(*9) 영중순 노포크의 포술장이 0927시경 비스마르크의 전방 주포탑군을 관측한 결과「비스마르크의 전방 포탑군은 포의 부/앙각 기구가 아군 포격의 직격으로 대타격을 받아 전투력을 상실, 1번 포탑의 연장포는 최대부각(즉 아래로-_-)으로 내려가 있고 2번 포탑의 포신은 2문 모두 반대로 하늘 높이 치솟아 있었다.」라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10) 제임스 카멜론의 다큐멘터리에선 0902경 로드니의 16인치 포탄이 명중해 주 사격지휘소와 사령탑이 전멸한 것으로 묘사되어 있지만 이것은 완전한 허구입니다.-_-; 물론 사령탑에 16in포탄이 명중한 것은 확실하지만 그것은 0902시가 아니거든요. 본문에도 기술되었듯 비스마르크의 사격 지휘장치를 파손시킨 것은 8인치였습니다.
(*12) 카멜론의 그 다큐에서는 중순 셰필드도 이때 포격전에 참가한 것으로 되어 있지만 역시 거짓말.
0907시경, 폰 레히베르크 소령이 지휘하는 비스마르크의 후부 예비 사격지휘소에 사격 관측실(후부)로부터의 연락이 들어왔습니다. 내용은 주 사격지휘소가 기능하지 않는다. 적어도 연락이 되지 않는 상태가 되었기 때문에 전방 주포탑이 사격을 중지한 사실이 전해졌던 것이지요. 동시에 예비 사격지휘소에서 살아남은 후부 주포탑의 사격지휘를 맡아주도록 요청이 들어왔던 것이었습니다.
이 소식을 받은 예비 사격지휘소는 이제 남은 후부 주포탑군에 대해 사격목표를 새로 바꾸도록 하령했습니다. 이 시점에서 비스마르크는 예비 사격지휘소(후부)에서 로드니를 관측하는 것이 불가능했기에 사격 목표를 KGV로 전환하게 되었습니다. 이때 비스마르크는 거리 약 11,000m에 있는 KGV에 대해 폰 레히베르크 소령의 훌륭한 사격 지휘로 네 번의 일제사격을 감행했고 마지막 네번째의 일제사격이 드디어 KGV를 협차하는데 성공합니다.
그러나.......기막히게 운이 좋았던 영국해군에 비해 비스마르크는 완벽하게 행운의 여신으로부터 버림받고 있었습니다. 레히베르크 소령이 제 4 탄째의 일제사격에서 협차탄의 착탄을 확인한 직후인 0913시, 거의 동시에 비스마르크를 협차한 KGV의 포탄이 비스마르크에 먼저 명중해 비스마르크 예비 사격지휘소도 피탄에 의해 의해 크게 파손되어 레히베르크 소령을 비롯한 예비 사격지휘소 요원들이 대거 전사 또는 부상당했습니다. 살아남은 레히베르크 소령은 다시 목표로 조준을 맞추려고 조준기를 다시 들여다보았지만 이미 조준기에 KGV의 모습은 더이상 보이지 않았습니다. (고장) 이 피탄으로 KGV의 14인치 포탄이 예비 사격지휘소 상부에 있던 마지막 측거의(마이크로미터)도 파괴해 예비 사격지휘소의 관측기기마저 사용 불능으로 만들어버렸던 것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남아있던 후부의 예비 사격 지휘장치마저 파괴되었기 때문에 레히베르크 소령은 후부 제 3 , 4주포탑에 대해 사격 지휘소의 통일된 지시 없이 각 포탑간 개별 사격을 명령할수 밖에 없었습니다(*13). 교전 개시부터 약 25분이 지난 이 시점에서, 이제 비스마르크는 통일된 사격지휘를 실시하는 것이 불가능하게 되어 효과적인 반격을 실시하는 것이 지극히 곤란한 상황에 빠졌던 것이었지요.
이에 대해 KGV는 0900시부터 0913시 사이 무려 22회의 주포전문 일제사격을 퍼부을 수 있었고 그중 14회의 일제사격이 협차를 기록하고 있어서 레이더 전탐 사격이 충분한 능력을 발휘한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그 사격간격은 약 40초라는 빠른 스피드였기에 KGV의 주포탑은 가진 화력을 최대한 발휘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호사다마랄까요, 이때부터 KGV도 각종 고장이 빈발하게 됩니다. KGV가 비스마르크에서 약 12,400야드 거리에 위치하던 0913시, 284형 대 수상 레이더가 발포충격에 의해 고장났기 때문에 KGV는 다시 탄착 관측이 곤란한 상황에 빠졌습니다 (*14).
(*13) 0900시의 피탄에 의해 비스마르크의 전방 주 사격지휘소의 기기가 사용 불능이 된 일에 대해서는 이미 서술했지만 0912시에 전방 사령탑에 로드니에서 발사된 16인치 포탄도 명중한 사실이 있으므로 사실상 이미 이 시점부터 함의 중앙 지휘계통은 대부분 붕괴된 것으로 생각됩니다 (단 함장 에른스트 린데만 대령 및 부함장은 이 시점까지도 생존해 있었으므로 오히려 피탄에 의해 함 전방부분으로의 통신계통이 두절되었던 것이 지휘계통이 붕괴한 요인으로서는 더 크다고 생각되네요. 게르하르트 유나크의 수기에서도 함내에선 함장과의 연락이 중간중간 끊겼기 때문에「사령관과 함장 전사!」라는 함내방송이 흐른 후 잠시 뒤에「함장 전사는 잘못된 방송이었다. 함장께선 살아계신다!」라는 방송이 재차 이루어진 일로 보아서도 함내의 지휘통신 계통이 붕괴, 최소한 혼란 상황에 빠졌던 것을 잘 나타내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
참고로, Battleships : Axis and Neutral Battleships in WWII의 표기에 의하면 이때 사령탑에 명중한 포탄은 KGV의 14인치 포탄일 가능성도 있다라고 되어있습니다. 이 때문에 아래 작성한 피해도에서도 사령탑에 대한 명중탄은 로드니 또는 KGV의 포탄에 의함이라고 표기했습니다.
(*14)「KGV」를 포함해 이러한 사례에서「사격용 레이더는 자함의 발포충격으로 진공관이 파괴되어 자주 사용불능이 되기 때문에 광학 측거의에 비해 그 측정 우위는 훈련 중의 것에 지나지 않는다」- 라는 주장이 있지만 실제로는 이때를 포함하여 사격용 레이더가 고장나는 것은 진공관보다는 전기회로 계통의 문제에 의해 작동이 정지하는 것이 많았습니다. 또한 이때「KGV」가 탑재하고 있던 284형 레이더는 전압 제어반내의 전선을 연결하는 납땜 부분이 파손된 것에 의해 작동불능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해전 이후 영국 해군성은 284형을 포함한 각 함선용 레이더에 대해 각종 대 충격대책을 발빠르게 준비한 결과 발포충격에 의한 고장확률은 현저하게 저하되었지요. 실제 1943년 12월 26일의 북해 해전(샤른호스트 추격작전)에서「듀크·오브·요크」의 284형 레이더는 77회에 이르는 자함의 주포 발포충격에도 끝까지 양호한 정밀도의 전탐사격을 실시하게 됩니다.
또 하나 뱀에 다리를 붙이자-_-면, 미 해군에서 레이더에 대한 충격대책이 취해진 것은 북아프리카 작전시 카사블랑카에서 프랑스 전함「장 바르」와의 포격전때「매사추세츠」의 대 수상 레이더가 예의 그 발포충격으로 고장났던 전훈을 겪은 이후의 일로, 1942년 11월 이후 각 함에 대해서 그 대책이 취해지고 있었습니다. 이후 미 해군의 레이더에 대한 충격대책도 충분한 성과를 올리고 있어서 대전 후반에는 자함의 발포충격에 의한 레이더의 항감성은 지극히 높은 것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또다른 영전함 로드니는 탄착관측이 매우 곤란한 상황에서도 맹사격을 감행해 이후에도 협차 및 명중탄을 여러번 얻어내고 있었습니다. 또한 이때부터는 비스마르크와의 거리가 로드니가 탑재하는 어뢰의 사정거리 내에 접어들었기 때문에 어뢰 공격으로도 비스마르크를 공격하기 시작했습니다. 전함 로드니의 전방 수중어뢰 발사관은 0911시부터 0913까지 걸쳐 거리 약 11,000야드 거리에 있던 비스마르크에 대해 양현의 어뢰 발사관으로부터 6개의 어뢰를 발사합니다만 이것은 모두 빗나갔습니다.(*15).
허나, 이 직후인 0916시, 다시 비스마르크와 거리가 벌어진 것을 보고받은 로드니의 함장 해밀튼 대령은 교전 개시 전에 토베이 장관으로부터 받은, "상황에 따라 독자적인 판단에 의거한 행동을 허가한다" 라는 명령에 근거 로드니의 항해장에게 우8점 회두(우180도 변침)를 명령합니다. 이 변침결과, 로드니는 다시 비스마르크와 동항전 형태로 북쪽을 향하는 침로를 취하게 되었습니다.
(*15)「로드니」의 어뢰 발사관은 단장 발사관이므로, 당시 동함의 승무원들은 구경 622mm의 대형어뢰를 약 1분-_-마다 재장전하여 발사하고 있다는 계산이 되는군요. ( 로드니가 장비한 24.5inch MkI 어뢰는 전체길이 약 8.1m, 중량은 2.6톤으로 일본의 93식 산소어뢰에 비해 전체길이는90cm정도 짧지만 중량은 거의 비슷한 대형 어뢰입니다!!! ). 이 발사속도로 미루어 볼 때, 아마「로드니」의 발사관은 기계식 장전구조로 생각됩니다만 그 기구가 어떤 것인지는 좀....^^;;
제 3막 ( 0920 - 0952 ) :「KGV」고장 빈발-_-; &「비스마르크」전투 불능
0920시, 영 본국함대 기함 KGV가 새로운 침로로 접어들었을 때 이 전함은 19노트의 속도로 거의 진북을 향해 항행하고 있었습니다. 이 시점에서 비스마르크는 KGV와 약 12,000야드의 거리에 있었고 방위는 우현 50도 위치에 있었지요. 이때까지도 비스마르크의 후부 주포탑군은 아직 살아남아 로드니를 향해 포화를 열고 있었지만 0921시에는 KGV의 14인치 포탄이 비스마르크의 3번포탑 포탑전순(砲塔前盾-포탑 전면장갑/이하 포탑전순)에 클린힛트했습니다. 허나 이 포탄은 신관이 민감했던 것인지, 장갑을 관통하지 못하고 포탑전순에서 폭발해버렸습니다만 이 피탄에 의해 비스마르크는 3번 포탑의 우포가 부앙 불능이 되어 결국 3번 포탑도 포탑장의 판단에 의해 발포를 중지하게 되었습니다.
또, 0921시에는 KGV의 우현 부포도 사격을 재개하고 있습니다. 비스마르크의 각종 상부 구조물에 명중한 5.25인치 포탄은 비장갑 및 경장갑의 부분에 손상을 주고 상갑판에 있던 인원을 대거 사상시키게 됩니다. 그러나 0922시부터는 지금까지 쾌조로 가동하고 있던KGV의 주포탑에도 갑자기 고장이 발생하기 시작합니다. 5월 25일의 덴마크 해협에서 P.웨일즈를 괴롭힌 장전기구의 트러블 문제가 KGV에서도 발생했던 것이었지요. -_-;
이 시점에서 KGV는 1번 포탑과(4연장) 3번 포탑의(4연장) 모든 포가 사격불능이 빠져버려 이제 사용할수 있는 포는 2번 포탑의 14인치 연장포만이 되어버렸습니다. 이에 의해 주포 포격력은 통상시의 20% 까지 감소하게 되어(10문중 8문이 사용 불능) KGV는 2문의 주포만으로 사격을 계속하게 됩니다. 참고로 2문 이하의 대구경 주포로는 대 이동 표적에 대해 살포계 관측에 의한 사격 수정이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에 사격에는 상당한 곤란이 있었다고 생각되지만 이 상태에서도 계속해서 명중탄을 준 KGV포술과 사관들의 기량은 대단한 것이었다고 평가해도 좋겠지요.
그러나 이때까지도 비스마르크의 마지막 4번 포탑은 아직도 발포를 계속하고 있었고 로드니에 지근탄 수발을 날리는데 성공하고 있었습니다.(단 명중탄이 아님!) 그 중 로드니의 우현 함수 지근에 떨어진 한발은 수중에서 작렬, 우현 함수 어뢰발사관부에 손상을 주어 우현 발사관을 사용 불능에 빠뜨렸습니다. 또 0927시에는 간신히 제 1번 주포탑이 다시 사격을 실시하지만 이 사격과 거의 같은 시각에 KGV의 14인치 포탄이 겨우 살아난 1번 포탑 부근에 착탄해 비스마르크의 급소를 찌른-_-이후에는 완전히 침묵하게 됩니다(*17).
0929시, 드디어 KGV는 비스마르크와 불과 거리 8,000야드*(약 7300미터-1야드는 약 0.914미터)라는 가까운 위치까지 접근하게 되었지만 해상을 가리는 포연과 비스마르크가 뿜어내는(피탄)연기 등의 요인에 의해 견시에 의한 탄착 관측은 여전히 곤란한 상황에 있었습니다.
이때문에 일단 급한대로 279형 대공 수색 레이더에 의한 사격관측을 실시하도록 명령이 내려졌지만 대 수상용 레이더가 아닌 대공 레이더에서의 관측은 불충분했으므로(...) 잘 되지 않았었지요. 하지만 대략 이 시각부터는 KGV의 3번 주포탑이 전열에 복귀하게 되는데 아직까지도 사용 가능한 포는 3번 포탑의 4문 중 중앙의 2문뿐이어서 외측의 2문은 결국 전투종료시까지 발포 불능으로 남고 맙니다.
0930시, 비스마르크의 4번 주포탑의 좌포가 폭발을 일으켜 발포 불능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 후에도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우포는 두번의 사격을 시도했지만 곧바로 포탑 바배트부가 로드니의 16인치 포탄에 의해 관통되어버려 4번 포탑 내부에 화재가 발생해 4번 포탑의 포탑원들은 포탑 내부에서 탈출하게 되었고 이에 의해 결국 이 시간 이후 비스마르크의 모든 주포는 완전히 침묵하게 됩니다. 비스마르크가 그 전투능력을 완전히 상실한 것은 전투 개시로부터 약 40분이 지난 1941년 5월 27일, 0931시의 일이었습니다.
(*17) 개인적으로는 전투 초반 이미 전열에서 탈락한 비스마르크의 1번 포탑이 다시 살아났다고는 생각하기 어렵고 아마도 내부 폭발을 막기 위해 장전이 끝난 포탄을 처분하기 위한 발포는 아닐까......라고 생각하지만 확증은 없습니다. ㅡ.ㅡ;. 참고로 전술한 각주에도 썼지만 당시 비스마르크의 1번 포탑은 이미 전투 초기 KGV의 14인치 포탄에 명중당해 포탑 구동용 기기부가 파손되었기 때문에 최대 부각 상태로 침묵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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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멜론의 Sink The ~비스마르크 에서 캡쳐, 비스마르크의 4번포탑 바배트에 지금도 남아있는16in포탄에 의한 탄흔
- 사진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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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비스마르크는 영국함대의 모든 함으로부터 각종 구경의 포탄에 의한 대타격을 받고 해상에 떠올라 있는, 거대한 이동(...) 표적이 되었습니다. 0930-0935시경에는 로드니의 16인치 주포탄이 비스마르크 전방 함교의 측거의(마이크로미터)와 사격 지휘장치부에 클린힛트해 함교는 좌현측부터 붕괴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로드니의 주포탄은 이와 거의 동시기에 다시 한번 비스마르크의 좌현 수선장갑대와 주 수평장갑을 완전히 관통해 좌현 기관실 및 연돌을 대파시켰습니다.(*18). 이 피탄에 의해 비스마르크는 과거 연돌이 있던 자리부터 상갑판부까지 거대한 균열을 보이게 되었고 여기에서 기관부 파손의 배연을 뿜어 올리게 되어 속도가 더욱 저하되었던 것이었지요 (*19).
(*18) 비스마르크의 근접 방어력의 강인함은 유명하지만 이때 로드니의 발포거리는 영국 해군성의 배틀 리포트에 의하면 약 4,000야드(약 3,657미터)라는 근거리였으므로 경사 장갑부까지 완전히 관통해 함내를 대파시키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겠지요. 덧붙여 발라드 박사에 의한 1989년의 해저 조사에서도 비스마르크의 연돌 좌현 갑판부에 큰 관통부가 있는 것이 확인되고 있으므로 전 이 사실로부터 기관부에서 배연이 나온 것이 관측된 것이다 - 라고 추측했습니다.
(*19) 비스마르크는 전투개시 직전부터 10노트 이상의 전투 항해를 실시하고 있었지만 이 시각 이후 동함은 3-5kts 정도로밖에 움직이지 않은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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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스마르크의 주포탑/지휘계통에 대한 명중탄.
(「Battleships : Axis and Neutral Battleships in WWII」P244에 계재된 그림과 King George V Class Battleships의 표기를 참고로 작성)
- 사진이 없어 https://www.warships.com.cn/navweaps/INRO_Bismarck_p3.htm해당 링크 짤로 대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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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40시, 로드니와 비스마르크의 거리는 다시 한번 멀어져 약8,000까지 벌어지게 됩니다. 그러나....... 이때 비스마르크의 2번 주포탑 후방에 명중한 로드니의 16인치 포탄에 의해 비스마르크의 2번 포탑 후부에서는 대규모 폭발이 일어났습니다. 이 폭발은 엄청난 것이어서 포탑 후부의 장갑판이 완전히 날라가 함교 상공 하늘까지 그 파편이 튀어올랐을 정도였습니다. 이 폭발로 2번포탑 좌현측의 갑판부에는 큰 균열이 발생함과 동시에 2번포탑의 주변에서도 대규모 화재가 발생하게 되었습니다.(*20).
이후에도「로드니」는「비스마르크」의 기동에 맞추어 운동을 계속하여, 6,000yds이하의 지근거리에서 계속「비스마르크」에게 향해 그 거탄을 퍼붓고 있었습니다. 한편「KGV」도 약 8,000yds전후의 거리를 유지하면서「비스마르크」의 좌현측에 포격을 날리면서「비스마르크」의 함상이나 함내를 아수라장으로 만들어갔습니다.
시각은 불명확하지만「비스마르크」의 우현 현측 장갑을 관통한 대구경 포탄(*21)에 의해 제15 구획에 있던 무선실이 완전히 파괴되어 총원 전사를 기록했으며 우현의 수선 장갑대를 관통한 포탄은 좌현 앞부분의 부포탄약 창고 내에서 폭발, 좌현 2번부포를 관통한 포탄과 함께 동 포탑 후부 천개(天蓋-상면장갑)를 날려버려 사용불능으로 만듬과 동시에 그 폭발에 의한 대량의 파편이 함상을 휩쓸게 됩니다. 또한「KGV」로부터라고 생각되는 포탄도 좌현 기관구획 후부의 발전기에 명중, 변압기로부터 화재를 일으키고 있었습니다.
0950시부터 1000시 사이에는 함의 후부에 명중한 16in포탄의 파편이 4번포탑 바배트에 뚫린 구멍으로 포탑 내부로 확산되어 포탑 하부에서 화재가 발생, 유폭을 방지하기위한 승무원들의 필사적인 노력으로 4번포탑 탄약고에 주수가 되었습니다. 전방 마스트가 완전히 붕괴되기 시작한 것도 이 시간대의 일이었습니다.
이밖에도 많은 포탄이「비스마르크」의 현측 상부 및 주장갑대를 관통해 함내로 돌입, 함내에 큰 손상을 주었습니다. 또한「노포크」나 「도세트셔」로부터도 8in포탄이 쏟아지고 있었고 전함의 부포인 6in및 5.25in포탄도 현측 상부의 145mm장갑대를 관통해 함내에 손해를 주고 있었습니다.(*22). 이 시간대 이후에는,「비스마르크」는 완전히 해상의 폐허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정도로 파괴되었습니다. 이미 포위하고있던 영국 군함으로부터도「비스마르크」상부 구조물 도처에 뚫린 관통구로부터 불길과 연기가 뿜어져나오고 있는 것이나 현측이나 갑판으로부터 열린 파구로부터도 함내 구획에 발생한 화재의 불길이나 연기를 볼 수 있었습니다. 물론 주 수평 장갑이나 상부의 함내도 아비규환의 양상을 나타내고 있었으며 특히 함교 전방의 함수구획은 손상이 격심했으며 완전히 불길에 휩싸여 있었습니다.(*23).
그러나 이같은 상황에서도 아직 비스마르크의 메인 마스트에는 용감하게도 전투기가 펄럭이며 있었으며, 느리긴 했지만 앞으로 자력 주행을 계속하고 있었기 때문에 영국측의 각 함은 전투를 계속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 광경에 대해서는「로드니」의 함장 해밀튼 대령도 훗날 이때의 심경을 이하와 같이 술회하고 있습니다.
「 그때 내가 그러한 일방적인 일(전투불능인 함에 대한 포격)을 즐거운 마음으로 하고 있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렇지만 비스마르크가 여전히 전투기를 내건 채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이상, 우리가 해줄 수 있는 것은 그것밖에 없었다. 」
(*20) 「로드니」의 기록에서는 0942시에「비스마르크」2번포탑 후부에서 큰 화재 발생이 목격되었다고 서술하고 있습니다. 덧붙여 이 화재가 발생했다고 여겨지는 파구는1989년에 행해진 발라드 박사에 의한 해저 조사에서도 확인되고 있습니다.
(*21) Battleships : Axis and Neutral Battleships in WWII에 의하면 이 부근에 두세발 명중한 것으로 되어있지만, 그 명중장소 부근의 우현측 주 수선 장갑대에는 그 이상의 복수의 대구경 포탄에 의한 파공이 2001년의 영국 TV국(4TV)의 영상으로 확인되었습니다.
(*22) 수선상부의 145mm 장갑부분에 대구경 포탄뿐만 아니라 중구경 포탄이 관통한 관통구가 뚫려있는 것은 발라드 박사에 의한 1989년의 해저조사 및 2001년 영국TV국(4TV)에 의한 해저 조사에서도 확인되고 있습니다. 또한 상부 및 주 현측 장갑대를 관통한 영국의 포탄 가운데 경사장갑부를 포함한 주 수평 장갑대를 관통하여 수평장갑 내부까지 손해를 끼친것은 소수이지만 상부 수평 장갑대와 주 수평 장갑대 사이에 있는 많은 중요구획 , 특히 통신 정보전달 계통의 함내 구획은 각종 구경의 포탄으로 큰 손해를 받게 되었습니다.
2001년 영국TV국에 의한 해저조사의 결과에 의하면,「비스마르크」의 선체 부분에는 약 400여개에 이르는 포탄관통구가 있는 것이 확인되고 있습니다. 한편 제임스 카메론의「Sink The 비스마르크」에서는 선체에 명중한 포탄자국은, 조사결과 현측장갑을 포함해 4개-_- 밖에 장갑을 관통한 자국이 없다고 말하지만 이것은 당시 전투에 참가한 영국 군함의 함상에서「비스마르크」를 관측하고 있던 수병들이 이구동성에 말하는 -「포탄의 명중에 의해 비스마르크의 선체에 열린 다수의 관통구에서는 함내로부터 솟아오르는 불길이나 연기가 보였다」라는 증언이나 실제로 영국 군함의 포격에 의해「비스마르크」의 주요 방어 구획을 포함한 선체 내부에서 많은 손상이 발생한 일과도 크게 모순되는 사실입니다. 개인적으로 집쥔은「Sink the 비스마르크」의 조사결과는 , 무엇인가 의도적으로 내용을 오도하고 있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더군요.
또한 이 건을 포함해 카메론의「Sink~」에 관한 내용에 대해서는 많은 해외의 연구자들도 그 내용에 대해 의문을 표명하던지 , 부정하는 의견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 증거로서 A. Preston (The World's Worst Warships의 저자이며, 저명한 함정 연구가) 이 영국 TV에 의한 해저 조사시에 촬영된 사진을 보고「(이러한 사진은 ) 결정적으로「비스마르크」가 포격전에 의해 함내가 침수되어 침몰한 것을 증명하고 있다, 사진에서 확인되는 약 400여개의 파구가 선체에 널려있는 것을 볼 수 있고 이러한 파구의 대부분은 대구경탄이 현측장갑을 관통해 형성된 것이다, 도세트셔가 발사한 4발의 어뢰(실제로는 세발)는 동함의 침몰을 앞당겼지만 실제로는 그 이전의 단계에서 포격으로 인한 파공이 동함의 함내에 수천톤에 이르는 침수를 일으킨 결정적인 요인인 것으로 보인다.」라는 발언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23)「비스마르크」생존자의 대다수가 포격전 종료 후, 주 수평 장갑판 아래의 구획으로부터 올라온 승무원인 것으로부터도「비스마르크」의 주요 방어구획내 중 주 수평 장갑보다 위의 선체 내부에서의 손상이 격렬했던 것을 알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함교보다 앞부분의 함수구획 부분의 생존자는 한명도 없는 것이 특히 함수측의 손상이 심했던 일을 나타내고 있다고 말할수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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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탄/화염에 휩싸인「비스마르크」의 광경을 그린 그림이라나...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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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막( 0952 - 1040 ) : 거대전함 , 대서양의 파도 속으로 사라지다.
0952시가 되면 북쪽을 향해 나아가고 있던「KGV」는「비스마르크」의 함수 좌현 전방으로 나오기 시작합니다. 이는「비스마르크」의 좌현측을 병행 항진하며 포격전을 실시할 수 있도록 침로를 220도로 변침한 것이었고 목표와의 속도 차이 및 위치 변위에 수반하는 목표와의 방위각의 변화율을 감소시키기 위해 속도가 저하된「비스마르크」에 속도를 맞추는 형태로 함의 속도를 14kts로 떨어뜨리게 되었습니다. 이 직후 0953시가 되면 시간적으로도 프랑스에서 독일 공군기가 내습할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판단되어 주포의 탄착관측을 실시하고 있던 279형 대공레이더에게 본래의 대공 수색 임무를 맡도록 명령이 내려집니다. 이와 함께 양현의 5.25in부포도 대공전투에 대비해「비스마르크」로의 사격을 중지하고 대공 경계 배치에 전환되고 있었고 전투 내내 대기하고 있던 근접 대공화기 요원들도 각각 전투 배치로 오르고 있었습니다.
또한 오랫동안 전투불능 상태에 있던「KGV」의 제 1 주포탑이 전열에 복귀한 것도 0953시의 일이었습니다. 고장후 31분을 경과한 되에야 동함은 전 주포탑이 전열에 복귀한 것이지만 제 1 포탑도 3번포탑과 같이 외측의 2문은 결국 완전히 수리되지 못하여 이후「KGV」는 전투 종료까지 가동하는 주포 6문을 가지고 전투를 계속하게 됩니다.
한편 지근탄에 의한 어뢰발사실 침수 등의 장해를 넘은 불굴의「로드니」수뢰과가 다시금「비스마르크」에게로 어뢰공격을 감행한것도 요즈음의 이야기입니다. 전술과 같이「로드니」의 우현 어뢰발사관은 이미 사용불능이 되어 있었지만, 이번에는 좌현 발사관만을 이용해 뇌격을 감행했습니다. 0955시에 발사된 최초의 어뢰는 명중을 확인할수 없었지만 0957시경 재차 발사된 어뢰는 항주거리의 후반 2/3를 수면상에 모습을 나타내면서「비스마르크」에게 향해 정확히 나아가 0958시에는「비스마르크」의 함 중앙부에 명중한것이「로드니」함상으로부터 확인되었습니다.(*24).
이제「비스마르크」는 완전히 전투능력을 상실한 상태가 되었습니다. 이 때문에 결국 1000시 직후라고 생각될 무렵부터 응급지휘소에 있던 부함장 에일스 중령과 기관장 레만 중령을 시작으로 각 부서의 응급수리반의 장에 대해서 자침 명령이 내려지게 되었습니다.(*25). 이 명령을 받은 함미 제 1 ~ 제 4구획를 담당하는 응급수리반의 슈미트 상급 준위는 작동중인 모든 펌프를 주수로 새로 바꾸어 담당 부서의 전 구획에 해수를 보내기 시작했습니다(*26).
이 시점에서도 주기는 아직 3기 모두 무사했고, 저속이었지만 운전을 계속하고 있어서 기관으로부터 필요한 증기가 주기에 공급되고 있는 상태에 있었지만 중앙 기관실에 있던 게르하르트 유나크 소령도 이 명령을 받고 자침작업에 착수했습니다. 이 명령으로 우현과 중앙의 기관구획에서는 킹스턴 벨브가 열림과 동시에 냉각기용 흡기구에 자침용 폭약이 설치되었습니다. 그러나 좌현 기관구획에서는 이미 전투 손상과 파구로부터 들어간 해수가 환기구를 통해 함내로 유입되고 있어서, 이에 의해 상당한 침수가 내부에 생기고 있었기 때문에 킹스턴판의 개방 및 폭약의 설치라고 하는 자침 조치에 수반하는 작업을 실시할수 없었습니다.(*27). 그러나 함수 구획을 포함한 다른 함내 구획에서도 자침조치 실시를 하지 않았던 구획이 있는 등, 함내에 있어서 자침조치는 철저히 행해진 것이 아닌 것에는 충분히 주의를 필요로 할 필요가 있겠습니다.(*28).
「비스마르크」가 함내에서 자침작업을 하고 있을 이때까지도 영국 전함부대의 포격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었습니다. 1005시경에는 토베이 장관이「KGV」의 페터슨 함장에 대해「비스마르크」에 최후의 일격을 가할수 있도록 보다 근접하라는 명령을 내렸고 이에 따라「KGV」는 다시 북방으로 침로를 잡았습니다.
「.........놈이 우리의 포격으로 가라앉는 것을 볼 수 없다니!!!!! 왕립 해군 전함전대의 이름에 먹칠을 할 셈인가! ㅡ.ㅡ;」
라며 격앙하는 사령장관을 실은「KGV」는 더욱 가까이「비스마르크」에게로 다가갔습니다. 1009시부터 사격을 중지하는 1022시까지,「KGV」는 약3,000yds(약 2743미터, 아마 이 위치가 양 함이 최대한 근접한 위치가 아니었을까 싶네요.) 거리까지 접근하여「비스마르크」를 공격했습니다.「KGV」의 주포사격에 의해「비스마르크」의 2번포탑의 전면 장갑이 완전히 관통된 결과 동포탑이 완전히 폭발하여 화염에 휩싸인 것은 이때의 일이었으며(*29) 1014시에「비스마르크」의 앞부분 사령탑 부근에 명중한 포탄이 함교의 상부 구조물의 남은 몇군데마저 완전히 파괴하기에 이르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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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이것이 사실이라면 항주중인 전함이, 항주중의 적 전함에 어뢰를 명중시킨 세계 해전사 사상 유일한 전례이지만「비스마르크」의 생존자들은 이 어뢰 명중을 부정하고 있습니다. 이것은.....뭐 영국측이 포탄의 착탄에 의한 물기둥을 착각한 것이든지, 독일측이 어뢰의 명중을 포탄의 명중으로 잘못 알았는지의 어느 쪽이던지간에 명중한 장소가 가장 두꺼운 우현 중앙의 수선 장갑대 부분이므로 선체에 파공이 생기지도 못했을 것이며, 실제 해저 조사의 영상에서도 여기까지는 확인하는 일이 없었던 것으로부터 아마 이것은 영원한 수수께끼가 될 것 같네요. ㅡ.ㅡ;
(*25) 제임스 카메론의「Sink~」에 가라사대-_-; ,「공포에 휩싸인 승무원들이 자주적으로 자침 조치를」이라는 것은 적어도 실수!!!!.
(*26) 「거대 전함 비스마르크」(폰 레히베르크 저 / 일본어판)에서는 기관실도 함수의 작업에 의해 주수가 개시된 것처럼 나와있습니다만 실제로는 본문의 서술이 정확할듯 합니다.
(*27) 당시 기관병의 증언으로도, 실제 이 시기에는「비스마르크」가 왼쪽으로 크게 기울어 있는것이 영국 전함에서도 관측되고 있었으므로 이 시점에서 좌현측에는 기관구획을 포함한 상당한 침수가 있던것이 확실할 것입니다.
(*28) 해수를 함내에 들일 수가 있는 구획 자체가 그렇게 많지는 않지만, 그 중 4번포탑을 제외한 주포 탄약고 구획에 주수 되었는지 어떠했는지는 생존자나 ,응급반원이나 기관병의 증언에서도 확인되지 않고 부포 및 고각포 탄약고에서도 우현 앞부분의 부포탄 화약고 구획 및 좌현 후부의 고각포탄 화약고 구획 이외의 탄약고에 주수되었는가라고 하는 점에 대해서도 생존자의 증언으로부터는 확인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함수 구획에 대해서는, 당시 이미 응급 지휘소로부터 연락이 되었는지 어떠했는지는 의심스럽고, 응급 반원의 대부분이 그 시점에서 전사 혹은 부상하고 있었다고 생각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자침작업을 실시할 수 있었다고는 생각되지 않습니다. (전투중 함수 응급 반원의 숫자가 부족하기 때문에 후부의 응급반원이 지원하러 나갔지만 한명도 돌아오지 않았고 생존자도 없었다는 현실도 있고, 게다가 이때도 아직 영국 전함은 함수측에 포격을 계속하고 있었습니다 ). 비스마르크가 함수를 올린 채 가라앉은 것으로부터도, 함수부에 있어 자침작업은 실시되지 않은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29)「우리 전함들의 14inch, 16inch포탄은 비스마르크 주포탑의 장갑을 관통하여 그 결과 비스마르크의 포탑은 스위스 치즈와 같은 양상을 나타냈다」라는 영국측의 보고서는 결코 거짓말이 아니라는 예로서 들 수 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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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저 조사에서 촬영된 비스마르크 주포탑의 포탄 관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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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로드니」도 1019시에 포격을 중지할 때까지「비스마르크」에게로 사격을 계속하고 있었습니다. 이때는「로드니」도 3,000yds - 4,000yds 정도의 근접거리에서「비스마르크」에게 주포/부포의 전 포문을 가지고 계속 공격중이었습니다.(*30). 이 시기에는 목표까지의 거리가 매우 가깝기 때문에 포의 최대부각을 걸친 채 사격을 계속하고 있었을 정도였으며, 목표와의 사격 방위각 관계로(넬슨급의 주포탑은 3기 모두 함수에 위치)발포충격에 의해 함에 손상을 줄 가능성 때문에 본래라면 금지되고 있던 함미 방향을 향한 16inch포의 사격도 종종 감행할 정도로부터, 동함은 자함의 발포충격으로 갑판 및 함내에 피해를 받으면서도 포격전을 계속하던 상황이었지요.
그러나, 그런만큼「로드니」의 포격은 정확하고 맹렬한 것으로, 1005시경에는 수선장갑대를 관통한 16in포탄이「비스마르크」함내의 PX-_-구획으로 작렬하여 부함장 에일스 중령 이하 다수의 승무원을 전사시킨 것 외에 1011시에는 16in포탄의 명중에 의해「비스마르크」의 함미 부분이 완전 파괴되어 화염과 함께 대폭발이 일어난것이 관측되고 있었습니다. 더욱이 1014시에 마지막 주포에 의한 일제사격에서는 제 1 포탑에 포탄을 명중시켜 포탑을 완전히 화염에 휩싸인게 한 것과 동시에 다른 명중탄의 섬광이「비스마르크」의 남아있는 함교 구조물을 밝게 비추었다는 광경도 남아 있습니다.
또한「노포크」와「도세트셔」의 양 순양함들도 포격과 뇌격을 속행하여 1010시경에는「노포크」가 좌현측의 어뢰 발사관에서 4발의 어뢰를 발사했습니다. 이 어뢰는 1013시경에「비스마르크」의 우현측에 명중했다고 영국측에 의해 기록되고 있지만 독일측은 확인하고 있지 않네요.(*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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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영 해군성의 공식 배틀 리포트 및 Battleships : Axis and Neutral Battleships in WWII의 기재에 의하면 주포가 마지막으로 사격한것은 1014시의 일이므로 마지막 5분간은 부포만이 사격하고 있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31) 2001년에 실시된 영국TV의「비스마르크」에 대한 해저 조사에 의해, 현측의 피해 상황으로부터「노포크」의 어뢰도 최소 한개 이상 명중하고 있었을 가능성이 지적되었습니다 (우현 후부의 파구와 손해상황은 어뢰 한개의 것으로 보기에는 너무 크다고 판단된것 같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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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세트셔」로부터 촬영 :「비스마르크」에 근접해 포격전을 실시하는「로드니」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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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5시경이 되면 불타고 폐허화된「비스마르크」로부터 생존자가 현측에서 바다로 뛰어내리는 모습이 영국함으로부터 발견되기 시작됩니다.그러나 이 시점에서도 비스마르크는 북서로 향해 저속이긴 하지만 확실히 진행하고 있었기 때문에 해면에는「비스마르크」의 항적에 따라 살아남은 생존자가 하나 둘씩 뛰어드는 것을 볼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이 즈음이 되면 영국함대도 전함의 연료가 떨어져가고 있을 상황이라, 기지에 귀환하기까지의 연료밖에 남지않은 상황이 되었기 때문에 토베이 장관은 결국 포격전을 계속하는것을 단념하고「KGV」에 포격전을 중지하고 모항으로 귀항하도록 명령함과 동시에「로드니」에 대해서도「KGV」에 후속하는 침로를 잡도록 명령했습니다. 1015시의 일이었습니다.
또한, 교전수역 남방 해상에 서머빌 제독이 인솔하는 H부대(Force "H")가 모습을 나타냈던 것도 이 시각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순양전함「리나운」과 중순양함「셰필드」양함이 결국 이 포격전에 참가하는 일은 실현되지 않았습니다.(*32).
이후 1020시에는 토베이 장관이 각 함에 대해서「남은 어뢰를 보유한 함은「비스마르크」에 접근하여 모든 어뢰를 투사하라」라는 명령을 보내고 있었지만 이때 이미 전함 부대에 동행중이던 호위 구축함 2척은 연료부족으로 귀로에 오르고 있었고,「노포크」나 「로드니」도 이미 어뢰를 다 쏘고 없었습니다. 그러나「도세트셔」만은 남은 어뢰를 가지고 있었으므로, 이 명령을 받아 동함은「비스마르크」에 대해서 최후의 뇌격을 위한 습격운동을 개시했던 것이었습니다(*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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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원래 지브롤터에 전개하고 있던 서머빌 제독의 Force H는 순양전함「 리나운」과 중순양함「셰필드」외에도 항공모함「아크 로열」을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아크 로열」의 함상공격대는 이미 0900시에 공격을 위해 발함하고 있었지만「비스마르크」상공에 접근했을 때에는 이미 포격전이 한창 치열하고 함대 기동이 정신없을 때라 결국 접근하여 공격하지 못하고 끝났습니다.
(*33) 중순양함「노포크」는 이미 최종결전 개시 전에도 우현 발사관의 어뢰를「비스마르크」에 대해 발사한 적이 있었기 때문에 이 시점에서는 전 어뢰를 소비한 상태에 있었습니다.
이글루에 좋은거 많았네
그나마 인지도 있던 곳들은 여러 사람들이 백업해놨긴 했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