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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기 소련과 독일의 인적자원 격차 (채승병)소련은 어떻게 1941년에 그렇게 말아먹고도 종전까지 병력을 보충할 수 있었냐란 댓글에 대한 관련글안녕하십니까, 채승병입니다. 아래 서봉덕님의 두가지 질문에 한번에 다 답하려니깐 양이 무지무지 많군요.일단 소련의gall.dcinside.com


안녕하십니까, 채승병입니다.


아래 서봉덕님의 두가지 질문에 한번에 다 답하려니깐 양이 무지무지 많군요.

일단 소련의 인적자원 문제부터 이야기를 풀어 나가겠습니다. 서봉덕님은 제 아무리 소련이어도 그만한 타격을 입고서 어찌 전쟁을 이끌어 나갈 수 있을 것인가.... 1차대전 당시 독일 체제와 같이 사실은 미국 지원이 없으면 금방 이라도 붕괴가능한 체제였는데 간신히 유지된게 아니냐는 의견을 제시해주셨습니다.


그럼 소련의 인적자원을 독일과 비교해서 통계를 가지고 풀어나가죠.


먼저, 전쟁에서 국가가 가용한 인적자원을 동원하는데는 다음의 4단계가 있다고 흔히 알려져 있습니다.


1단계. 실업인구 및 취업 부적격 인구를 소집


2단계. 불요불급한 소비산업의 종사자들을 소집


3단계. 낮은 우선순위의 전시 산업 종사자들을 소집


4단계. 전시 필수산업 종사자들의 점차적인 소집


보시면 아시겠지만 1,2단계에만 그치고 해결되면 전시 산업계에 미치는 영향은 거의 없다고 보면 됩니다. 문제는 3단계 이상으로 넘어가면 자칫 군수품 보급에 악영향을 끼칠 위험이 커지고, 그러다 4단계의 체제가 장기간 지속되어 파국으로 갈 위험이 농후해진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독소전의 각 단계에서 소련의 전투원 소집체제는 이중 어떤 상황에 놓여 있었는가를 따져볼까요?


처음 소련이 1941년 6월 전쟁에 돌입했을 당시 이미 소련은 2단계 동원체제에 들어가 있었습니다. 소련과 같이 완전고용을 추구하는 공산주의 국가에서 실업자가 많이 있을 턱이 없죠. 그러다가 1941년의 파멸적인 패배를 겪으며 1942년에 들어가서는 3단계 동원체제로 이행합니다. 그러다가 지속적인 손실을 겪으면서 1942년 말에는 4단계 동원체제로까지 넘어가는데 이때 소련에선 여성과 어린이들을 대거 군수산업으로 전환하여 산업에의 피해를 최소화하고자 노력했습니다.


자세히 당시까지 소련의 피해를 추산해보면, 독일이 광대한 서부러시아를 장악하므로서 총 6600만명에 달하는 인구가 독일 점령지구로 넘어갔습니다. 거기에 1942년 12월까지 전투원 손실이 650만명 사망 또는 실종, 550만명 부상에 이르러 농업 종사인구는 대전 전의 3540만명에서 1510만명으로 떨어졌고, 공업 종사인구는 1100만명에서 720만명으로, 기타 산업 종사인구는 2020만명에서 1120만명으로 떨어졌습니다.


이렇다면 얼핏 생각하기에 과연 소련이 더이상 산업에 피해를 주지않고 무슨 수로 전투원 손실을 보충할 수 있었겠는가...는 말이 나오지만, 조금더 생각해봐야 할 요소는 새롭게 동원 적령인구로 편입되는 청소년 연령층의 분포입니다.


소련도 18세가 넘으면 병역에 동원되는데, 당시 신규 소집대상인 1920년 경의 남자 출생인구는 대략 연간 200만명 수준이었습니다. 또한 적백내전 이후 소련도 베이비붐을 겪었기 때문에 이후 출생률은 폭증하여 1920년대 중반엔 연간 남자 약 300만명 정도가 출생했습니다. (반면 농업집단화 등의 부작용으로 1930년대엔 다시 출생률이 감소하게 됨) 그래서 1941년 소련 남성 인구 비율은 20대 미만이 약 4300만명(45%), 20대 및 30대가 3150만명(33%), 40대 및 50대가 1470만명(15.4%), 60대 이상이 620만명(6.6%) 정도의 구성비를 보였습니다. 젊은층이 꽤 두터웠죠.


그리고 소련은 장기간의 의무병제를 통해 상당한 규모의 예비군을 가지고 있었으며, 거기에 평시에 정기적인 군사훈련을 실시하고 있었습니다. 그중에는 이미 1차대전과 적백내전기에 활약한 전투경험을 가지고 있는 인구층도 매우 많았으며, 이들이 신규 동원 적령층와 함께 1941~42년 소련군의 주요 전투원 보충원이 되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소련군의 인력 보충 구조는 1941~42년의 파국적인 시기에는 30대 이상의 예비군 전력이 상당부분을 떠맡았고, 이후엔 새롭게 동원적령층에 포함되는 인구가 맡는 구조를 가졌다는 이야기입니다.


독일은 이미 이러한 소련의 전투원 규모를 1941년도에 추산하고 있었습니다. 독일 정보계통에서는 당시 독일이 19~45세의 동원 가능인구 1720만명 가운데 31%인 534만명의 동원체제를 가동하고 있는 것을 그대로 소련에 적용해 볼때, 소련의 15~50세 남성 연령층 4600만명을 고려하면 1426만명이 역시 동원가능 할 것으로 판단했죠. 거기에 그때까지 소련이 입은 450만명의 사상자와 350만명의 포로를 생각해도 여전히 소련군은 약 620만명이 투입가능하여 독일군 340만명에 비해 큰 우위에 서 있음을 인지합니다.


거기에 1942년 초에 다시 추산하니 당시로 소련은 동원 인구(16~50세)의 80%인 약 3800만명을 징집할 수 있는데, 이중 당시 활용되고 있던 인구는 전투원으로 700만명, 당시까지 사망 및 실종자 600만명, 후방임무 600~800만명의 인원을 제하더라도 여전히 2000만명 가까운 동원 가능 인구가 대기중이란 결론을 내립니다.


사실 독일이 더욱 놀란 것은 그런 단순한 인구 수뿐만이 아니라 소련이 유난히 젊은층이 두껍다는 사실에 있었습니다. 당시 소련의 인구는 초반 중장년층의 격심한 피해까지 겹쳐 20대 이하의 인구층이 전체의 50%에 달했는데 반해 독일은 20대 이하 인구층이 30%도 안되었으니 신규 동원인력에서 더욱 큰 격차가 벌어진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위험은 점점 사실로 드러나 1944년 중반에 이르자소련은 그동안 사망 및 실종 850여만명, 포로 및 징용 750만명, 비적격 불구자 450만명 등 2000여만 명의 피해를 입었지만 여전히 적령 인구 중 군수산업에 480만명, 건설 및 농업부문에 270만명 등 900만명을 산업부문에 활용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전투원 임무를 위해 1600만명을 확보해놓고 이중 1100만명 정도가 입대하여 약 600만명이 독소전에 투입된 상태였습니다.


결국 1945년에 이르면 동원 적령층인 1888~1927년생 남성인구 5040만명 중에 그때까지의 완전손실(사망, 실종, 포로, 징용) 및 부적격자 2800만명을 제외 하고서도 2200만명의 인력을 가지게 되었고, 이중 1200만명이 전투원 임무에, 나머지는 각종 산업부문에 배치될 수 있었습니다.


즉, 소련은 이미 1942년말 이후에는 베이비붐 세대의 젊은층들이 지속적으로 동원 적령인구에 편입하면서, 안정적으로 1000~1200만명의 인력이 군무에 종사하고(이중 약 600만명이 독소전에 투입) 1000만명 정도의 남성인력이 군수 및 건설,농업 등 각종 산업분야에서 일하는 체제가 정착되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나머지 4000만명 수준의 산업인력은 모조리 여성과 어린이, 노인들로서 채워져 운영되었습니다. (그래도 각종 중공업 분야에는 적령기 남성인력 배치가 우선시되어 약 50% 정도가 이들 적령기 남성이었고, 반면 농업이나 경공업 분야는 거의 전부 여성, 어린이 등이 메꿨습니다.)


이러한 각 군무원 및 산업부문 인력구조의 안정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이냐면,


1941-42년의 위기를 겪고난 이후 소련은 오히려 전선의 손실을 상회하는 수준의 인력 보충을 받을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소련군은 1943년에 이르면 연간 완전손실 200만명 수준, 1944년에는 140만명 수준으로 점차 감소되었습니다. 매년 250만명 이상의 징집에 적합한 신규연령층이 들어오는 추세는 1930년대 출생률 감소기의 영향이 나타날 1950년 근방까지 유지가 가능했습니다.


그럼 그에 반해 독일은 어땠을까요? 독일은 당시 매년 동원 적령기로 편입하는 인구 자체가 소련의 30% 수준에 불과했습니다. 대략 약 70~80만명 수준이었죠. 그런 상황에서 독일이 1945년까지 동원 적령인구 중 전투원으로 적합한 인력을 모조리 짜내봐도 가능한 인원이 누계 1100만명 정도였습니다. 이중에 독일도 소련과 맞상대할만한 산업 규모를 유지하기 위해서 필요한 남성인구 약 1000만명 수준을 고려하면 여유가 별로 없었습니다. 이미 독일도 43년까지 300만명 이상이 사망 또는 실종, 포로, 불구 등의 손실을 입어서 군무 종사인력을 500만명 수준에서 유지시키기가 힘들었고, 동부전선에 배치된 독일군은 250만 규모를 유지시키기가 힘들었습니다.


거기에 1943년 무렵부터 산업생산의 효율화와 확대를 통해 증산 노력을 기울이자 산업부문의 인력수요가 더욱 증가하여 군에 보낼 인력들은 점점 질적으로도 양적으로도 매우 불충분한 구조적 문제에 봉착하게 되었습니다. 결국에 1944년 말 새로운 총동원체제 하에서 동원인력을 16~60세로 확대해야만 하는 지경에 이르렀고요.


사실 통계수치로 독일과 소련을 비교하면, 독일이나 소련이나 남성인력을 쥐어짠 정도는 거의 비슷합니다. 양측이 동원 적령기 인력에 대해 실제 군무로 끌어들인 인력 비율이 거의 같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독일은 소련에 비해 전반적인 산업계에 여성 등의 인력을 끌어들이는데 매우 주저했기에 실제 남성층이 군무-산업 분담률이 소련보다도 과중했습니다. 소련이 전쟁지원 산업 유지에 1000만명의 적령 남성 노동자와 4000만명의 여성 및 노약자를 활용한데 반하여, 거꾸로 독일은 소련보다 양적으로 딸리는 산업구조나마 적령 남성인력을 1000만명 이상 필요로 했습니다. 이는 오히려 독일의 징병현실은 소련 이상으로 산업부문의 희생을 바탕으로 보충된 것이었음을 의미합니다.


자, 이제는 이러한 통계를 바탕으로 "미국의 지원이 없던" 상황을 가정해 볼까요? 소련은 당시 미국의 지원이 없었다면 부족한 부분을 충족하기 위해 약 500만명의 산업 인력의 추가 편성 또는 재배치가 필요했다고 합니다. 이러한 상황에 직면했다면 소련은 동등한 군수품 생산을 위해 100만명 수준의 남성 인력을 군무 인력에서 빼내야 했다하고요. (나머지는 여성 인력을 끌어 썼을테니...) 여기서 한가지 주의할 점은 소련도 군무 종사인력중 약 50% 수준만 이 독소전에 투입되던 상황인지라 어느 정도의 버퍼가 존재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어쨌건 소련은 동부전선의 육군 병력규모를 500만명 이상으로 유지시킬 수 있었을 거라는게 상당히 설득력있는 통계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그 반면에 독일은 증가하던 소련의 양적인 산업생산 규모를 따라잡으려면 더욱 많은 인력의 군수산업으로의 전환이 요청되던 시기였습니다. 이미 대전중 독일은 인력 부족으로 기존에 가지고 있던 여유설비도 가동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던 터였지요. 설사 1943년 말 이후 미국이 참전하지 않았다해도 1943년 경의 독일의 인력배치 상황은 소집연령층 총 1400만명 가운데 현직 군무원 500만명을 제하고도 산업인력이 200만명 이상 모자랐으니, 미국이 없던 여력으로 군무원을 엄청나게 증가시킬 수 있다는 환상은 버려야 합니다.


물론 독일도 이를 보충하기 위해 점령지로부터 수많은 강제노동 인력을 끌어왔긴 하지만, 독일은 소련에 비해 여기에서도 치명적인 문제를 더 안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잘 아시다시피 독일의 군수품들은 소련의 그것에 비해 훨씬 복잡한 제품들이라 단순히 끌어온 저질 인력으로 완전 대체가 불가능한 약점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소련은 훨씬 단순한 군수품 생산에 치중했기에 대다수 여성인력이 그자리를 메우고 들어갈 수 있었던데 반해 독일은 어차피 산업 자체의 체질을 바꾸고 여성인력의 활용범위를 대폭 늘이는 등의 구조조정을 하지 않는한 산업인력의 군무원 대체 유연성에 한계가 있었습니다.


독일이 놀고있는 설비를 돌려 산업생산을 배가시키기 위해서는 100만명을 군무원에서 빼돌려야 했는데... 가뜩이나 허덕대는 전선 상황에 그랬다간 자살 행위겠고, 거꾸로 야전의 소모를 보충하기 위해 산업 부문에서 100만명을 군무원으로 돌렸다간 당장 들고 싸울 무기생산이 격감하고... 독일의 딜레마는 이렇듯 매우 심각했습니다.


결국 "미국이 없었더라도" 소련은 동부전선에 약 500만명의 일선 전투원들을 유지하면서 1950년까지 매년 약 250만명의 손실을 감당할수 있었던데 반해, 독일은 여전히 약 250~300만명의 일선 전투원 규모에 매년 약 70만명의 손실을 감당할 수 있었을 뿐이었을겁니다. 인원과 각종 전차, 야포 등 대다수 측면에서 몇배의 물량 우위를 소련이 누리는 상황에 이러한 소모전의 구도에서 독일이 승리할 수 있으리라고 저는 생각할 수 없습니다.


전선에서 그만큼 격렬하게 싸우면서 소련인만 죽어 나가고 소련 물자만 소모 되며, 소련의 숙련노동자 수급만 힘들던건 결코 아니었습니다. 그런 동안 독일은 자체 산업의 특성 때문에 소련보다도 더욱 상대적인 어려움에 직면해야 했으며 역시 무지막지한 타격을 받고 있었습니다. 서봉덕님이 말씀하신 힌덴부르크 계획과 유사한 문제점들은 아주 좋은 지적이십니다만, 그러한 문제는 분명 소련보다 독일에게 먼저 닥쳤을겁니다.


독일의 산업구조, 인력 수급구조는 소련과의 물량대결에서 도저히 버텨낼 재간이 없었습니다. 또 그건 결국 각 체제가 현실의 물량전에 적합하게 조직화 하는 능력의 차이와 맞닿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굳이 한가지 덧붙이자면, 저는 "소련은 미국없이도 이길수 있었다"는 것이 왜 "미국의 지원이 의미가 없었다"와 동등하게 인식되어야 하는지가 잘 이해가 안되는군요. 미국의 Lend-Lease 프로그램은 나름대로 충분히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것이 없었다면 아마 독일은 한 100만명쯤, 소련은 한 200만명쯤 더 죽고 나서야 전쟁이 끝을 맺었을테죠. 독소전 자체가 지독한 비극이지만, 차라리 그 선에서라도 끝이 났다는게 오히려 다행이라면 다행이고 미국의 힘이 투영된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P.S. 옛날에 봤던 가물가물한 통계 뒤져가며 정리하려니 지독하게 힘들군요... 저도 이런 소모전(?) 계속 하다가는 뻗겠습니다. 웬만하면 토론장까지 가지 않고 적당히 끝났으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