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제스가 끼친 영향이 무엇인가를 보다 더 정확하게 판단하기 위해서는 좋든 나쁘든 만약 그가 부재했더라면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을지를 고려해 보아야 한다. 장제스가 없었더라면, 국민당이 왕징웨이, 후한민 또는 국민당 깃발 아래 모인 지방 장군들 중 한 명의 영도 아래 중국 통일을 이루기 위해 광둥 밖으로 나가는 모험을 감행했을까? 만약 그들이 북벌을 추진했다면, 베이징을 차지하고 만주와 중요한 연맹을 맺는 일은 물론이거니와 통일 운동을 하나로 지속시킬 다른 지도자가 나타났을까? 장제스가 없었다면, 군벌 시대와 중국의 분열은 지배 범위를 놓고 끝없이 싸우는 봉건 할거 국면으로 빠져들었을 가능성이 크다.
만일 1936년 총사령관이 시안에서 피살되었다면, 국민당 정부 내의 친일파가 도쿄와 동맹을 맺지 않았을까? 만일 그랬다면 일본 제국 군관들에게 훈련받은 거대한 중국 군대가 일본에 편입되었을 것이고, 히틀러가 서쪽으로부터 소련을 침공할 때 일본군이 동쪽으로부터 소련을 침공했다면, 제2차 세계대전의 역사는 완전히 뒤바뀌었을 것이다. 만일 1937년 중일전쟁이 발발한 뒤 국민당 영수의 지위가 교체되었더라면, 어느 누가 아직 점령되지 않은 여타의 중국 지방을 그토록 오랫동안 단결시키며 지켜 낼 수 있었겠는가? 아무리 장제스가 주재한 연맹이 느슨했을지라도 오로지 총사령관이 국가를 상징했고, 군사적 승리들과 더불어 따라온 정치적 성공으로 일본을 저지했다. 이후 만일 장제스가 스틸웰과 마셜을 매우 효과적을 다루지 않았다면 무슨 일이 발생했겠는가? 만일 정말로 군대를 개혁하며 국공 연합 정부가 출현했다면, 워싱턴은 끝까지 의무적으로나마 지지를 표명했을 것이다. 그리하여 국공연합 정부는 아마 1948~1949년 최후의 결전이 폭발하는 것을 저지했을 터이고, 어쩌면 중국은 양쯔 강을 경계로 분열된 냉전 국가로 변했을 것이다.
1949년 이후 일반인들이 흔히 품고 있는 통념과는 달리 장제스가 공산당에게 패한 것은 역사적으로 불가피한 필연성의 문제가 아니었다. 장제스는 대장정이라는 크나큰 후퇴가 선명하게 보여 주듯 20년 동안 우세를 점하고 있었다. 만약 시안 사건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총사령관은 최종적으로 홍군을 섬멸했을지도 모른다. 아홉 해 뒤 공산당은 일본이 북방에서 일으킨 전역 탓에 심각하게 쇠약해졌다.
장제스 평전, 조너선 펜비 지음, 노만수 옮김, (주)민음사, 2014년, 617~618쪽
일본 정계에 폭넓은 정보망을 갖고 있던 리하르트 조르게는 이 회의의 결과를 즉시 모스크바에 보고하였다. 당시 소련은 독일의 공격으로 심각한 패배를 당하여 수도 모스크바조차 풍전등화의 위기였음에도 70만 명이 넘는 소련 극동군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만에 하나 일본의 공격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조르게의 보고를 받은 스탈린은 일본이 틀림없이 미국을 공격할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는 극동의 병력을 서쪽으로 즉각 이동시키라고 명령하였다. 이리하여 시베리아에서 급히 수송된 소련의 정예 부대들은 모스크바 코앞에서 독일군의 공세를 격퇴하게 된다. 스탈린은 모스크바를 방문한 이든 영국 외상에게 "시베리아의 병력을 투입한 것이 전황을 호전시킬 수 있었던 최대의 비결이오"라고 말하였다. 만약 일본이 독일과 함께 동서에서 동시에 소련을 공격했다면 제2차 세계대전의 향방이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출처: 중일전쟁, 권성욱 저, 미지북스, 2015년, 55~557쪽
그나마 독일한테 소련과 전쟁 희망적인 시나리오
1. 장제스의 죽음
2. 중일전쟁 조기 종료
3. 독소전쟁 때 일본의 소련 공격
4. 극동군 증원 못했기에 독일의 모스크바 공방전 승리로 모스크바 함락
물론 모스크바 함락해도 러시아를 이길지 여부는 모르겠음. 독일-일본 협공 받는다고 소련이 무너질지 그건 모르겠으나 일단 적어도 소련이 현실보다 훨씬 어려웠을 것은 팩트인듯.
일본군으로 떼삼사부대 어캐잡음?ㄷㄷ
끝없는 돌격
극동에 있는 소련군을 붙잡고만 있어도 큰 도움이 되긴 하겠지
일단 극동 증원군만 없어도 모스크바 공방전에서 독일한테 유일한 희망거리이긴 할듯. 소련이 그걸로 항복하냐는 별개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