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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에서 나를 따르고 있던 아이가와(相川) 군조(軍曹)가 나를 뒤로 떠밀면서 내 대신 자기가 앞으로 내닫는 것이었다. 그러자 순간 어딘가에 숨어있던 중국군의 일제사격이 가해지면서 아이가와가 쓰러졌다. 나 대신 쓰러진 것이었다.

                                              -중략-

남원전투에서 나를 살려준 아이가와 군조는 입원한 지 10일 후 천진 육군병원에서 내 손을 꼭 잡은 채 숨을 거두었다.'  김석원 회고록중.

  조선인 평민 장교 김석원이 일본과 조선에 크게 이름을 알리게 된 것은 제20사단 78연대 3대대장으로 종군한 남원 전투와 동원 전투의 대활약 때문이었다.

  당시 3대대와 함께 종군했던 아사히(朝日)신문 기자가 남원전투 종결을 앞두고 그만 전사하고 말았는데 그의 유해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발견된 기사원고 [김석원부대의 남원전투 5시간]이 일본과 조선의 언론사에서 송고되면서 김석원 소좌는 일약 유명인사가 되었다.  

김석원 소좌는 남원전투에서 부상을 입고 천진병원으로 후송되어 함께 후송된 생명의 은인 아이가와 군조의 임종을 지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