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 미 대사 무초( (Muccio)가 국무부 장관에게
2급 비밀(secret)
우선(priority)

서울, 1949년 5월 31일
627. 1. 미군 병력 2200여 명이 5월 28일과 5월 30일에 인천을 출발했고, 이로써 6월 30일까지 주한미군 철수 작업 완료를 위한 조치가 개시되었습니다. 주한미군사령관(CGUSAFIK)은 수송 일정이 잡힌 육군 장비 중 60퍼센트가 인천을 출발한 것으로 추산했습니다.
2. 병력 철수로 인해 야기된 소란과 공포는 제가 예상했던 정도를 훨씬 뛰어넘었습니다. 현재 거의 공황상태에 달하는 위기감이 한국 정부 내 고위층을 휩싸고 있고, 그와 같은 위기감은 결국 국민 전반으로 확산한 것 같습니다. 사태가 이렇게 진행된 책임 요인으로는 미군이 잔류할 것이라고 한국 정부가 고수했던 선전 노선, 최근 한국 군인과 야드급 소해정(YMS)이 변절한 사건註 001 등을 꼽을 수 있습니다.
3. 이곳의 불안한 상황을 고려할 때, 우리는 향후 몇 주 동안 중차대한 시기에 직면하게 될 것입니다. 이 시기 중 최악의 상황은 군대 철수가 완료되는 시점에 발생할 수 있을 것입니다.
4. 따라서 저는 우리 미국이 이와 같은 중차대한 시기에 한국 정부와 한국 대중이 갖고 있는 신뢰를 강화하기 위해서 가능한 모든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우선 첫째로 미국의 모든 공식 기관은 병력 철수 완료 일자를 밝히는 공개적인 발표를 해서는 안 되고, 철군 조치에 관해 실질적인 언급을 피해야 한다고 제안하는 바입니다. 긍정적인 측면에서는 저는 다음과 같은 조치를 제안합니다.


(a) 미국의 지원이 계속될 것이라는 몇 가지 포괄적인 약속과 함께 군사고문단(KMAG)과 관련한 언론 보도자료를 조속히 발표하는 조치(5월 18일에 제가 발송한 전문 557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註 002.
(b) 실행 가능한 시기에 경제협조처(ECA) 원조에 관해 충분히 홍보하는 조치.
(c) 해안경비대의 함정과 비행기에 대한 대한민국의 최소 요구를 충족시키는 노력을 계속하는 조치.
(d) 풀브라이트 협정(Fullbright Agreement)에 대한 협상 개시를 발표하는 조치.
(e) 병력 철수 완료 이후 곧장 해군이 방문하는 조치.


국무부 627로 전달, 미 극동군최고사령관(CINCFE)에게 반복 전송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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