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해군에게 미드웨이의 패배는 필연이었던가, 아니면 우연이었던가. 일본 해군의 패배는 단순히 "무운이 따르지 않았"거나 나구모 사령관이 오판을 했기 때문이 아니라 일본 해군이 총체적인 난맥상을 안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전략 부재, 소통 부재, 처음부터 빈약했던 국력, 그 와중에 터무니없는 자만심과 상대에 대한 경시 등. 어떤 의미에서는 그전까지의 승리가 운이 좋았던 것이고 그 운이 미드웨이에서 다했다고 할 수 있다. 설령 미드웨이에서 운좋게 승리했다고 한들 어차피 시간문제일 뿐, 언젠가는 필연적으로 재앙이 닥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진주만 기습 이후 산호해 해전까지 6개월 동안 일본 해군은 연전연승을 거두었지만 쉴새없는 싸움과 무리한 확장으로 한계에 직면한 상황이었다. 설사 미드웨이 해전에서 일본 해군이 미 항모 부대를 격파했다고 해도 이들의 전력으로는 하와이는커녕 미드웨이섬 공략조차 장담할 수 없었다. 미드웨이섬은 손바박만한 섬이지만 괌이나 웨이크섬과 달리 완전히 요새화되어 있었다. 수비대 또한 싱가포르의 영국군처럼 사기가 형편없는 오합지졸 식민지 군대가 아니라 잘 훈련된 미 해병대였고 마지막까지 싸울 자세가 되어 있었다. 그곳을 점령하는 일도 어려웠지만 지키는 일은 더욱 어려웠다. 일본의 병참선으로는 지탱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물며 하와이를 공략하거나 더욱 먼 미 본토에 상륙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었다.



미 해군이 미드웨이 해전에서 패배했어도 태평양 전쟁의 향방 자체에는 아무런 영향이 없었을 것이다. 어차피 일본이 미국을 이길 가능성은 처음부터 없었기 때문이다. 이 점은 일본 스스로도 알고 있었다. 게다가 미드웨이 해전이 시작되기 전 일본 해군은 이미 공세 종말점에 도달해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미드웨이 해전이 큰 의미가 없는가. 그저 당연한 수순에 지나지 않았던가. 미 해군은 미드웨이 해전에서 승리하며 처음으로 공세에 나설 수 있었다. 니미츠는 미드웨이에서 모든 전력을 총동원하여 건곤일척의 결전을 벌였다. 여기서 또 한번 패배했다면 미군의 사기는 한층 떨어졌을 것이며 니미츠는 더이상 도박성 있는 작전을 펼치는 대신 남은 전력이라도 지키는 쪽을 선택했을 것이다. 따라서 당연히 과달카날의 싸움도 없었으리라. 미 해군의 본격적인 반격은 적어도 1년쯤 늦어졌을 것이고 1943년 중반, 어쩌면 1944년 초에나 시작되었을 것이다. 1945년 5월 독일이 항복했을 때 태평양에서는 이제 겨우 사이판 공략에 나서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물론 태평양의 흐름과는 상관없이 맨해튼 계획은 차질 없이 진행되었을 것이고 역사대로 1945년 7월 16일 최초의 원자폭탄 실험 '트리니티'가 실현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미국이 원폭을 가졌다고 해도 그것을 일본 본토에 투하할 방법이 없었을 것이다. 원폭 '리틀보이'를 싣고 히로시마로 향했던 B-29  에놀라 게이가 출격한 티니안섬과 마리아나제도를 장악하려면 적어도 몇 달은 더 싸워야 했을 것이다. 그사이 얄타 회담에서 대일 참전을 약속한 소련군이 만주와 한반도, 일본 북부를 침공했을 것이다. 38선은 없었을 것이며 소련군은 별다른 방해 없이 손쉽게 한반도 전체를 차지했으리라. 어쩌면 원폭을 손에 넣은 트루먼이 소련의 참전을 막기 위해 일본 지도부와 협상을 벌였을 수도 있었다. 일본 지도부가 마지막까지 항복을 망설인 진짜 이유는 '국체호지', 즉 천황제의 존속 때문이 아니라 조선과 타이완을 내놓기를 원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들 생각에 다른 점령 지역은 부득이 돌려줄 수밖에 없다고 해도 1차 대전 이전에 획득한 식민지는 마땅히 일본 제국의 일부이며 연합국도 이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트루먼 행정부 내에서도 반공주의자들을 중심으로 조기 종전을 위해 일본과 조건부 협상을 해야한다는 주장이 강력하게 제시되었다. 트루먼은 추축국의 무조건 항복을 못받은 루스벨트의 선언을 자신이 뒤집을 수 없다는 이유로 거부했지만, 전쟁이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면 받아들였을지도 모른다. 미국의 승리로 해방을 쟁취한 우리 입장에서는 미드웨이가 운명을 결정해준 셈이다. 태평양 전쟁과 미드웨이 해전은 전쟁사만이 아니라 우리 역사에도 큰 영향을 준 중요한 싸움이었다.



출처: 미드웨이-어느 조종사가 겪은 태평양 함대항공전, 프레더릭 미어스 저, 정탄 옮김, 권성욱 감수, 교유서가, 2019년, 11~13쪽


<중일전쟁> <군벌전쟁> 쓰신 권성욱 작가님 의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