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ab8c432fcdb35a769bac5f843827165b8275f985c6f99236f5520124eb338a37072136b4bb6f6ecf50756d5

그것은 바로 두-체

2ab8c432fcdb35a769bac5f84f8175683a96d2b43a5ac0cb3ec7426f18de62d1eea473c8dfd69ad72bff3738

1944년 밀라노에서 청중에게 연설하는 두체

국가사회주의가 어떤 한 국가의 국민임을 판단할 때 인종을 중시했다면 두체의 파시즘은 그 개인의 국적정체성과 애국심을 척도로 했음. 1938년~1943년 사이 독일본토 및 점령지의 유대인들이 피난처로 삼은 곳 중 하나가 이탈리아였기도 했으며 두체의 아내가 유대인 출신이였을 정도였고 1943년 두체의 이탈리아왕국 내각이 무너지고 경찰권과 군권이 낙지군정에 넘어가기 전까지 낙지가 요구했던 반유대정책의 시행을 거부했었음. 두체의 파쇼당에도 수많은 이탈리아 정착 유대인들이 자신들을 파시스트라고 부르며 활발히 활동했는데 두체의 일국사회주의 국뽕에 위아더월드가 되어버린 셈으로 1936년 에티오피아 침공당시의 일화로 이탈리아 파쇼 언론들이 "우린 에티오피아를 점령하고 노예화하러 가는게 아니라 에티오피아의 인민들을 계급제 봉건사회에서 해방하고 파시스트 동지들로 맞이하기 위해 가는거다!"라는 파쇼 이태리의 에티오피아 병합같은 선전선동을 해대는 통에 유언비어 퍼뜨리지 말라고 검열했던 일화가 있었음

두체와 파시즘의 인기는 1943년 파쇼 내각 붕괴와 북부 이탈리아의 파쇼공화국설립 이후에도 계속되서 1943년 이후로 히틀러가 청중들이 모인 공식석상에서 모습을 감췄었던 것과 다르게 위에 올린 사진처럼 대외활동을 활발히 했는데 두체가 자신과 히틀러 사이의 좆목과 정치적인 영향력을 낙지독일에 행사해서 "느그나라 사람들이 좀 굶더라도 우리나라 사람덜 파스타는 삼시세끼 꼭 먹여야겠다" 라고 해서 그랬음. 두체의 살로공화국은 1943년 파쇼내각 붕괴당시까지 이어졌던 파시즘 사회보장제도들을 그대로 계승해 시행했고 이탈리아 국민 대다수의 지지도 계속 이어졌었던 것임

근데 1945년에 왜 주유소에 로꾸꺼 매달려 죽었느냐?

1943년 이후 독일 군정이 이탈리아 지역의 무력통제권을 가져갔고 대전말 독일본토에서 지상전이 잇따라 벌어지면서 이태리 주둔 낙지군의 상황이 어수선해진 걸 틈 타서 1945년 공산마적떼들이 이태리 곳곳에서 준동하기 시작했는데 당시 무솔리니가 탄 차가 하필 공산마적떼들 중 하나의 영역으로 들어가버렸고 공산마적들은 평소에 하던 것처럼 지나가는 차를 털어버리려고 했으나 운좋게도 거기 거물이 들어있었던 거였음

낙지가 빨갱이마적과 손잡고 두체를 주긴거다 이거야

- dc official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