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찌의 국가사회주의교리상 국가전략->독일민족의 땅으로 이뤄진 단일국가("공화국")

1934년 오스트리아 병탄 시도
1936년 오스트리아 병합
1938년 체코슬로바키아 수데텐란트 병합
1939년 폴란드전 개전

1933년부터 나찌의 주요행보는 독일인 구성이 많은 지역이기도 하거나와 동쪽으로의 영토 확장이였음. 오직 1939년 폴란드전 개전 이후 영국과 프랑스의 선전포고로 인해 서쪽으로 관심이 집중되게 되는데 그 이유는 히틀러가 생각없이 시비거는 놈들&1머전에서 한번 다퉈봤던 적국들에 전쟁선포한 게 아니라 1920년대 '나의 투쟁'(공산주의자들의 '자본론' 같은 존재인 나찌들의 성서)에 써갈겼던 히틀러 자신의 이상국가건설론을 그대로 따르고 있었기 때문임. 애초에 히틀러와 나찌들은 프랑스와 영국영토에 관심조차 없어서 프랑스 3공화국과의 종전조인 이후 알자스-로렌 지역만 합병하고 나머지 북프랑스 해안지역은 영국 견제용 군정점령지역으로 맡겨놓았음. 영국의 경우는 1939년 폴란드전 개전 이전에 히틀러가 짓껄인 말들로 짐작컨데 우방국 내지는 중립관계를 바랬을 정도로 서유럽은 나찌들이 먹고 싶어하던 땅이 아니었음(국가사회주의 교리적으로도 각각 골족과 앵글로색슨족의 땅이라고 여겼고 1930년대와 40년대 각각 영프지역의 국가사회주의 세력을 키워보려고 수작질 부리기도 했었음)

히틀러와 나찌의 확장주의적 행보에 대한 영프의 반동을 대충 정리하고 나서 나찌들은 원래 계획에 착수해 동쪽의 꿀땅들과 유대볼셰비키를 정벌하므로써 나찌의 혁명전쟁을 완수하려고 했고 그 시작이 1941년 6월 22일의 바르바로사 작전이였음.

히틀러는 1920년대 자신이 집필했던 불쏘시개들('나의 투쟁', '2번째 책')에서 설파했던 국가전략대로 씨만 뿌려도 밀알이 탱글하게 자라나는 젖과 꿀이 흐르는 우크라이나와 우물만 파도 시커먼 석유가 븃븃 흘러나오는 캅카스를 차지하는 계획을 바르바로사 작전의 초안에 담았음.

근데 결국에는 모스크바 런을 뛰는 실행안이 되어버렸는데 어떻게 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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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파리의 에펠탑을 구경한 뒤로 맛이 가버린 나머지 모스크바 궁전여행 한 번 해봐야겠다며 프란츠 할더와 OKW가 작계를 임의로 변경해서 주공을 남부집단군에서 중부집단군으로 바꿔버리고 냅다 어택땅을 때려버림으로써 이양반과 '프로이센 장성들'이 히틀러의 국가전략을 개박살내버리는 나찌들 입장에선 환장할 상황이 벌어진 것

이후에 할더는 히틀러가 다시 한 번의 기회를 준 청색작전까지 날려먹은 뒤에 해임됨

나찌의 다민족 절멸 계획은 1943년이 다가오면서 나찌의 국가전략자산들이 바닥나기 시작하고 나찌의 '국가"사회주의"'의 유지를 위해 실행되기 시작하는데 피점령지의 타민족들에게서 먹을 것과 입을 것과 잘 것을 빼앗아 굶겨죽이면서 빼앗은 물자들을 독일본토로 이송해 '독일인의 사회주의 락원'을 유지하는 것이였음. 이와 같이 독일인 이주 장려로 테라포밍까지 시도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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