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년 5월 5일에 소규모 장사를 하는 상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1946년: 제 2차 국공내전이 발발하자 국민당군의 청년군 206사단에 입대하여 군생활을 시작했다. 와룡생은 소년병으로 국민당군에 종군하느라 정규교육과정을 수료하지 못했다.
1848년 : 남경에서 쑨리런 장군의 군관 훈련반이 되어 국민당군이 대만으로 갈 때 함께 대만으로 갔다. 이후 진급을 거듭한 끝에 국민당군의 상급 지휘관이 되었다.
1955년 : 쑨리런이 쿠데타 모의 혐의로 국민당군에서 쫓겨나자 쑨리런 세력에 가담했다는 이유로 군대에서 반강제로 퇴역하고 생활고에 시달린다.
(나무위키)


1946년, 개략 고등학교 1학년쯤 되던 해에 학교를 떠나 국민당의 군대에 입대하였다. 이유는 난세에 군인이 되지 않고서는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기 힘들다고 보았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1947년에서 1948년 사이에 와룡생은 육군에 들어가 전장을 누비며 크고 작은 십여차례의 전투를 경험하는데, 그의 일생에 강렬한 충격과 영향을 미친다. 와룡생은 군대생활을 회고한 적이 있는데 "민국36년에서 민국 37년의 짧은 1년동안, 낙양전투에서 패하고, 남경으로 후퇴하였다. 진짜 피와 살이 튀기는 전투가 나에게 준 영향은 매우 컸다. 지금 회상해보니 그 1년이 나의 가슴에 남긴 인상이 대만에 와서 40년간 산 것보다도 훨씬 깊었다."
1948년에 와룡생은 남경에서 군관훈련반(장교훈련반)에 합격하여, 군대를 따라 대만으로 가서 훈련을 받는다. 1956년에는 군내의 손입인사건에 연루되어 옷을 벗고, 이후에 무협소설을 쓰기 시작한다.


1930년 5월 5일, 중국(국민정부 시대 중화민국 대륙 본토)의 허난 성 난양 지역의 전핑현에서 태어났다.
초등학교 5학년 때였던 1939년에 일가족들과 함께 타이완 성 타이난으로 건너가 정착한 이후, 1947년 당시 소년 시절부터 중화민국 육군 부사관 하사로 군에 몸담아 체계적인 교육을 받지 못했으나 일찍부터 환주러우주(還珠樓主), 왕두루(王度廬),주전무(朱貞木) 등 구파무협명가(舊派武俠名家)의 작품을 읽기 좋아하였으며, 문장에 능하고 상상력과 재치가 풍부했다.
무협 소설은 1955년 중화민국 육군 장교 중위로 퇴역한 후 친구의 권유로 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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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에 부사관에서 현지임관한 중위 출신인데 먼 상급 지휘관이노...

하여튼 나무위키 근들갑 ㄹ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