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에서의 회담 개최에 합의한 것은 중대한 전술적 실수이자 전략적 과오였으며, 아마도 미국의 협상 역사상 가장 두드러진 실패 사례로 기록될 것이다. 수많은 역사가 및 학자들과 마찬가지로 협상대표 당사자였던 조이 제독과 리지웨이 장군은 각각 1955년과 1967년 그러한 결정이 잘못된 것이었음을 인정하였다. 문제를 제기한 정치학자들 가운데 윌리엄 배처는 특히 이러한 결정이 초래한 전략적 결과를 지적하며 날카롭게 비판하였다. 배처는 이렇게 기술하였다.

"유엔군이 북진하는 통로 상에 위치한 개성시에서의 회담은 유엔군의 추가적인 진격을 지연시키고 방해하였다."

배처는 개성 주변의 서부지역을 쉽게 점령할 수 있었는데도 유엔군은 더욱 지형이 착잡한 동부전선에 전력을 집중시켰다고 주장했다. 만일 회담이 도웁에서 열렸다면 유엔사는 서울에서 훨씬 북쪽인 북한의 수도 평양 근처까지 전선을 밀어붙일 수 있었을 것이라는 것이다. 그릇된 판단에 의한 인명 손실은 쉽게 추정할 수 없지만, 배처는 전략적으로 보다 중요한 서부전선에서 전투할 수 있었더라면 유엔사는 더욱 북쪽으로 진출할 수 있었을 것이고. 그렇게 되면 공산군은 더 빨리 휴전협정에 조인했을 것이라고 하였다.

한국군의 이석복 장군은 배처의 견해를 확대하여, 개성에서의 회담개최는 대한민국에 영구적인 부정적 결과를 초래한 전략적 과오라고 지적하였다. 그는 유엔사가 북한군의 개성 지역 점령을 허용하였기 때문에 한국의 수도 서울은 "장거리포 또는 로켓 공격의 사정거리 내에 취지하게 되어 안보, 정치, 경제 및 사회적 안정면에서 매우 취약하게 되었다"고 주장하였다. 이 장군은 유엔사가 한국군의 진격을 방해하게 될 전투 지역 한가운데가 아닌 해안에서 떨어진 선박 또는 작은 섬에서 회담을 개최했어야 옳았다고 믿고 있다. 사실 미 육군도 1951년 6월 28일 폴니체가 주재한 회담에서 같은 문제점을 지적한 바 있다. 육군은 북한이 덴마크 선박을 수용하지 않을 경우에 대비한 대안으로 원산항 부근의 섬인 요도를 제의하였다.

1994년 미 육군 대령이자 중국 무제 전문가인 알프레드 윌헬름은 한국전 당시 휴전회담에 참여했던 중공 측 대표들을 인터뷰하였다. 그는 "공산 측에 추가 흥정을 벌이지도 않고 미국이 그처럼 중공에 명백하게 유리한 장소를 흔쾌히 수용한 것에 놀랐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윌헬름은 중공이 덴마크 선박인 유트란디아 호를 거부한 것은 이해할 만하다고 보았다. 왜냐하면 중공은 회담을 위해 선박에 승선하는 모습이 마치 일본이 미국의 미주리 호에서 항복하는 장면을 연상시키는 것으로 우려했기 때문이다. 그가 인터뷰한 사람들은 "덴마크 선박이 미국의 이익에 유리했던 것처럼 개성은 중공의 이익에 유리하였다"면서, "미국이 개성보다 훨씬 중립적인 장소를 제의했더라도 중공 측은 이에 동의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출처: 북한의 협상전략, 척 다운스 저, 송승종 옮김, 1999년, 한울아카데미, 87~88쪽



미국 국무부 아태지역 부국장을 했던 척다운스는 개성에서 휴전회담 개최한걸 미국 협상 역사상 최대 실수라고 평가함.

솔직히 평양-원산선까지 밀기는 했어야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