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련 국민들은 이미 20년 동안 공산 독재의 손아귀에서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겪어왔다. 공산당이 집단농장을 건설하기 위해
국민의 토지를 강제로 몰수하는 동안 수백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
또 다른 수백만 명은 머나먼 곳으로 강제로 호송되어 공장과 건설 현장, 또는 황무지 개척의 혹독한 환경에서 노동에 시달려야 했다.
조금이라도 저항하면 비밀경찰에 의해 사형을 당하거나 무시무시한 시베리아 집단수용소로 끌려갔다.
실제로 스탈린은 1930년대의 끔찍한 숙청기간 동안 자신의 독단적인 상각에 따라 자신의 독재에 대해 조금이라도 위협이 된다고 느끼는 모든 지도자와 군인들을 체계적으로 살해해왔다.
일반시민의 생활도 고단한 노동과 도처에 도사리고 있는 위험 때문에 암울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결소비에트 연방은 크렘린의 지배에 거세게 반발하는 피정복민들을 억압하는 하나의 제국이었다.
그랬던 만큼, 히틀러의 군대가 소비에트의 압제를 물리치는 한편으로 자유를 약속했다면
소련의 피정복민들은 어마머마한 규모로 반란을 일으켜 소비에트 연방을 붕괴시키는 일을 도왔을 것이다.
물론 이러한 방식으로 히틀러가 원하던 레벤스라움을 당장 확보할 수는 없었겠지만,
어쨌거나 일단 소비에트 연방이 해체되기만 하면 히틀러는 그 부서진 조각들을 주워 모아 자신이 원하는 대로 조립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히틀러는 정확히 이와 반대되는 행동을 택했다. 그는 소련군 내의 공산당 정치장교를 총살시키라는 '코미사르 명령'을 내렸고,
'아인자츠그루펜으로 파견하여 모조리 찾아내 살해하도록 했으며, 미래의 독일 정착민들에게 줄 땅을 마련하고자 수백만의 슬라브인들을 추방하거나 아사시키기로 결정했다.
(중략)
그러자 전쟁의 시작과 함께 마을마다 들어서는 독일군을 맞이하던 소련 주민들의 진심에서 우러난 환영은
재빨리 공포와 증오로 바뀌었고, 끈질긴 게릴라 투쟁으로 이어졌다.
출처: 히틀러는 왜 세계정복에 실패했는가, 베빈 알렉산더 저, 함규진 역, 2001년 출간 홍익출판사
저자 베빈 알렉산더는 무려 한국전쟁 참전유공자이자 사우스캐롤라이나 찰스턴 대학에서 역사학과를 졸업한 사람이다
민사작전을 잘했으면 그게 나치냐
ㄹㅇㅋㅋ - dc App
못했잖아 - dc App
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war&no=4040342
- 이미 한참전에 군갤에 올라왔던 내용이다
이거 내가 올린건데용 헬스장아이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