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의 책임전가성 문책은 전쟁 후에 더욱 잔인하게 나타났다. 전 주소 북한대사 리상조와 소련 유학생 허웅배(1928~1997)[38]의 김일성 정전[39]에 따르면 6.25 전쟁에서의 무참한 패배는 김일성으로 하여금 '피의 숙청'을 단행케 한 계기가 됐다. 자신의 전략이 없음으로 인해 패배한 전쟁의 책임을 군사령관에게 전가하고 개인 독재의 길을 여는 명분으로 삼았던 것이다. 당시 김일성의 숙청은 그 잔인함에 있어 이오시프 스탈린을 능가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림은 자신이 희생의 직전까지 갔는데 그에 따르면 6.25 전쟁 당시 장군 중 95%에 해당하는 70여 명이 학살 내지 처형되고 당·정·군의 간부급 20만 명이 숙청됐다. 강제수용소에서 살해된 사람들을 합하면 희생자 수는 무려 수백만 명에 달할 것이라고
- dc official App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