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멘트리트 장군(Gunther Blumentritt)은 스탈린주의자의 에둘러 말하는 방식을 뛰어넘는 완곡한 표현으로 나치의 반유대주의를 "1933년 이후 잘못 전개된 국면"이라고 불렀다.


그는 "유명한 과학자들을 잃게 되면서 우리 연구에 많은 손상을 입혔고, 그 결과 1933년 이후 연구는 감소했다"라고 말했다. 그의 일련의 생각에는 나치가 유대인들을 박해하지 않았다면 아인슈타인과 같은 과학자들이 더 나은 무기, 어쩌면 소련이 독일을 침략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원자폭탄 같은 "기적의 무기"를 만들어내는데 도움을 주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포함돼 있던 듯하다.


블루멘트리트는 순진한 궤변 때문에 종종 그가 독일 국방군을 나치로부터 거리를 두게 하려는 자신의 시도를 스스로 방해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그는 1918년 혁명으로 인한 혼란과는 대조적으로 1945년에는 폭동이 없었던 것이 히틀러 치하에서 독일이 얼마나 통일된 사회였는지를 분명하게 보여주었다고 주장했다.


독일 장교의 명예에 관해 끊임없이 얘기하는 장군들에 대한 심문을 통해 놀라운 논리적 왜곡이 드러났다. 연합군 최고 사령부의 공동 정보위원회는 '왜곡된 도덕 관념'때문이라고 했다.


300번 이상의 면담을 근거로 한 보고서는 "이 장군들은 '성공한' 모든 행동은 인정한다. 성공은 정당한 것이다. 성공하지 못한 것은 잘못된 것이다.


예를 들어 전쟁 전에 유대인을 박해한 것은 영국인과 미국인들로 하여금 독일에 등을 돌리게 했다는 면에서 잘못된 것이다. 반 유대인 운동을 조금 미루었다가 독일이 전쟁에서 승리한 다음 시작하는 것은 옳은 일이 될 수 있었다.


1940년 영국을 폭격한 것은 잘못된 것이다. 만약 자신들이 자제했더라면, 영국은 히틀러와 함께 소련에 대항하는 전쟁에 참여했을 것이라고 믿고 있다.


소련과 폴란드(전쟁 포로)를 소처럼 대하는 것은 잘못이었다. 이제 독일인을 같은 방식으로 대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미국과 소련에 대해 전쟁을 선포한 것은 잘못되었다. 이 나라들은 독일보다 강했기 때문이다.


친나치 장군들의 진술만은 아니었다. 그들은 독일 국민 사이에 널리 퍼져있는 공통된 생각을 대변했다.


한 종족을 말살하거나 포로들을 학살하는 것은 도덕적으로 옳지 않다는 생각을 거의 하지 못했다.


독일의 범죄에 대해 그들이 느끼는 유일한 공포는 연합군이 어떤 터무니없이 부당한 이유로 자기들더러 연루됐다고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이다"라고 결론 내렸다.



또 다른 미군 보고서에 의하면, 심지어 민간인들조차 나치가 선전에 사용한 문구를 무의식적으로 사용함으로써 그들의 생각이 나치가 선전에 얼마나 깊은 영향을 받았는지를 드러냈다.


예를 들어 그들은 연합군의 폭격을 일반적인 용어인 "공습" 대신 "테러 공격(괴벨스가 쓴 표현)"이라고 부르곤 했다.


이 보고서는 이를 "잔여 나치즘"이라고 불렀다. 많은 민간인은 독일의 고통, 특히 폭격으로 인한 고통을 애기할 때 자기 연민적이거나 생각을 갖곤 했다. 그들은 충격적인 전술로서 도시의 대량 파괴를 고안해낸 장본인이 독일 공군이라는 사실을 기억하고는 분개하며 입을 다물었다.


이미 발생한 일에 대한 전반적인 책임 회피가 있었다. 나치 당원들은 자신들이 강제로 당에 가입했다고 주장했다. 지도부만이 일어날 수도 있었던 일에 대해 유죄였다. 보통 독일인들은 그렇지 않았다. 그들은 "기만당했고 배신당했다".


심지어 독일 장군들조차 히틀러가 전쟁에 그렇게 형편없이 간섭하지 않았더라면, 절대 패배하지 않았을 것이며 자신들 역시 나치즘의 희생자였음을 넌지시 내비쳤다.


민간인과 장군들 모두 무죄를 입증하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심문관들에게 나치 독일의 세계관이 옳다는 것을 설득하려고 했다. 민간인들은 미국이 도대체 왜 독일에 먼저 전쟁을 선포했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들은 미국에 먼저 전쟁을 선포한 쪽은 독일이라는 말을 듣자 믿으려 하지 않았다. 독일인들이 전쟁의 진정한 희생자라는 자신들의 신념에 모순되었기 때문이다.


장교와 민간인 모두 심문관들에게 '볼셰비즘'이라는 공동의 위험에 맞서 미국과 영국이 독일과 협력할 필요가 있다고 설교하려 했다. 그들은 1917년에서 1921년 사이 모든 공산혁명이 완전히 실패했던 중부 유럽과 동남부 유럽에 공산주의가 전파된 이유는 1941년 소련에 대한 나치 독일의 침공 때문이었다는 사실을 여전히 이해하지 못했다. 오히려 소수의 볼셰비키가 독재 정치에 대한 소련의 길들이기를 무자비하게 이용했기 때문에 나치 당원들은 원인과 결과를 혼동하는 조국의 치명적인 경향에 매달렸다.


몇몇 역사학자가 강조했듯이, 1933년에 그렇게 법과 질서를 원했던 이 나라는 역사상 가장 범죄적이고 무책임한 나라 중 하나가 됐다.


그 결과는 그 국민, 무엇보다 동프로이센의 여자와 아이들이 독일이 폴란드와 소련 민간인들에게 가했던 고통과 비슷한 고통에 직면했다는 것이다.



- 앤터니 비버, 2002, 베를린 함락 1945 (원제 Berlin: The Downfall 1945) 내용 중






디터 보르콥스키라는 열여섯 살 된 베를린의 한 소년은 안할터 반호프의 붐비는 전차 안에서 다음과 같은 광경을 목격했다.


사람들의 얼굴에는 공포가 어려 있었다. 그들에겐 분노와 절망이 가득했다. 그런 욕은 난생처음 들었다.


그런데 시끄러운 소리 위로 갑자기 누군가가 소리쳤다.


'입 닥쳐!'


우리는 두 개의 철십자 훈장과 독일 금십자장을 단 작고 지저분한 군인을 쳐다보았다.


소매에는 네 개의 금속 전차 배지를 달고 있었다. 그가 백병전에서 네 대의 전차를 파괴했다는 뜻이었다.


'내가 너희한테 해줄 말이 있다.' 그가 소리쳤고 객차는 조용해졌다.


'내 말 듣기 싫어도 그만 징징대. 우린 이 전쟁에서 이겨야 돼 용기를 잃어선 안 돼.'


'다른 놈들이 전쟁에 이기고 만약 그놈들이 우리가 점령지에서 했던 짓의 아주 조금만이라도 우리에게 한다면 몇 주 안으로 독일 사람은 단 한 명도 안 남을거다.'


객차가 어찌나 쥐죽은 듯 조용하던지 바늘 떨어지는 소리도 들릴 정도였다.



- 위의 내용과 출처동일






생각이 있는 사람이라면 모두가 이 피투성이의 희생자를 보면서 우리가 적국이나 심지어 독일내에서 벌였던 가혹행위를 떠올릴 것이다. 우리가 수천의 유대인들을 죽이지 않았던가? 병사들이 폴란드에서 유대인들에게 자기들 무덤을 파게 시켰다는 얘기를 수 번씩 얘기하지 않던가? 그리고 알자스의 집단수용소에 있는 유대인들에게 우리가 무슨 짓을 했는가? 유대인들도 또한 인간이다. 이런식으로 치면, 우린 적들에게 그들이 승리하면 우리에게 무슨짓을 할지 미리 보여준 셈이다.


- 1944년 소련군의 네멜스도르프 학살에 대한 슈투트가르트 친위대 보완국 보고서 내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