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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3년 4월 7일, 나치당이 의회 의석 2/3를 차지하고 바이마르 공화국의 총리가 된 '아돌프 히틀러'는 유대인 탄압의 첫걸음으로 전문공무원 복직법(Berufsbeamtengesetz)을 내세웠다. 이 법은 공무원으로 재직중인 비 아리아계 출신 인물들에게 은퇴를 '권고'하는 제도였다. 교사, 교수, 판사는 물론이거니와 변호사, 의사, 세무 컨설턴트, 음악가, 공증인과 같은 개인사업자들에게까지 적용됐다. 수많은 유대계 독일인들이 직장을 잃고 길거리에 나앉았다. 독일 전역에서 반유대주의의 불꽃이 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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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히틀러의 계략을 막아선 남자가 있었다. 바로 바이마르 공화국 대통령이자, 1차대전 독일제국군 야전원수였던 파울 폰 힌덴부르크(Paul von Hindenburg)였다. 그는 독일의 재무장을 추진하는 나치당 집권을 누구보다 반겼고 히틀러조차 마음에 들어했다. 하지만 이때만큼은 노여움을 감추지 않았다. 그는 바로 히틀러에게 편지 한통을 보냈다.



“지난 며칠 동안 흠잡을 데 없는 업무 수행 능력을 갖춘 전쟁 장애가 있는 판사, 변호사, 사법 관료들이 단지 유대인이라는 이유만으로 강제 휴직을 당하거나 옥살이를 하는 일련의 사건들이 내게 보고됐네.


지난 3월 21일 국가적 각성의 날에 죽은 자 앞에 경의를 표하고 전쟁에서 살아남은 자, 부상자, 그리고 나의 오랜 전우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고 선언문을 발표했던 나는, 유대인 상이용사들에 대한 이러한 대우를 개인적으로 절대 용납할 수 없네.


나는 조국을 위해 피를 흘리며 봉사한 유대인들이 독일 시민으로서 동등한 권리를 가질 자격이 있다고 굳게 믿고 있다네. 그들이 얼마나 불명예를 당했는지, 경제적 기반을 박탈 당했는지 보고 있는 것은 크나큰 고통일세. 우리가 그들의 가치를 알아준다면, 그들은 미래의 조국을 위해서도 계속 봉사할 걸세."






힌덴부르크는 이미 나치당과 히틀러에게 권력을 다 빼앗긴 뒷방 늙은이나 다름없었으나, 전쟁영웅이었던 그가 독일에 끼치는 영향력만큼은 아직도 절대적이었다.


그는 며칠에 걸쳐 히틀러와 나치당 수뇌부를 상대로 협상을 벌였다. 사실상 늙은 노인네가 땡깡 부리는거와 다름 없었으나, 아무도 국민적 존경을 받고 있던 그의 말을 대놓고 무시할 순 없었다.


딱 4일이 지난 4월 11일, 나치당은 전문공무원 복직법에 대한 예외조항을 발표했다.



전문 공무원 복직법 제1판 제3조 2항


다음에 해당되는 자들은 해당 조례에서 제외된다.


- 1차 세계 대전 당시 전선에서 복무한 참전 용사

- 1914년 8월 1일 이후( 즉, 전쟁이 시작된 이후) 공무직에 있었던 사람

- 아버지, 아들이 1차대전에서 전사한 유가족

- 단 위 사실을 증명할 수 있는 서류가 있어야만 한다.



단 며칠만에 해고 당한 인원의 50%에 이르는 '비아리아인'들이 그 서류들을 들고 관청에 찾아왔다. 그들은 자신들이 '카이저라이히'를 위해 목숨을 바쳤다는 것을 입증했다. 하지만 나치당은 온갖 꼬투리를 잡고 어떻게 해서든 유대인들의 복직을 막았다. 다시 직장에 출근할 수 있었던 건 소수에 불과했다.


비록 실효성 없는 반쪽짜리 조항이었으나 수많은 독일 유대인들이 이것으로 잠깐이나마 숨을 돌리고 독일을 떠날 채비를 했다. 1934년 8월 2일, 힌덴부르크가 사망하자 나치당은 기다렸다는 듯이 다음해 '뉘른베르크법( Nürnberger Gesetze)'을 발표했고 유대인 탄압을 합법화했다. 마지막까지 독일이 자신들을 버리지 않을거라고 믿고 남는 것을 택했던 유대인들은 모두 강제 수용소로 끌려갔다.



훗날 패전한 독일로 돌아온 유대인들은 아무 효력도 없었던 이 조항을 다음과 같은 이름으로 불렀다.

'전선 용사의 특권(Frontkämpferprivile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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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슈피겔만의 '쥐'에 나왔던 이 노인도 아마 저런 케이스였을 거라고 추정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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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외에도 당대 '1차대전 전사자 유가족 어머니회'가 신문에 냈던 지면광고.


반유대주의가 판치던 당시에도 유대인에게 동조적인 단체와 여론이 분명히 존재했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