흠차 내사(欽差內史) 황영기(黃永奇)·최연(崔淵) 등이 황제의 수조(手詔)를 받들고 오니, 임금이 백관(百官)을 거느리고 선의문(宣義門) 밖에서 맞이하여 앞을 인도해서 수창궁(壽昌宮)에 이르러 조서(詔書)를 듣고 예(禮)를 거행하였다.
"1. 지난번에 절동(浙東)·절서(浙西)의 백성 중에서 불량한 무리들이 그대를 위하여 소식을 보고하기에, 이미 수십 집을 죽였소. 그 고려의 산천 귀신이 어찌 그대가 화단(禍端)을 만들어 재앙이 백성에까지 미치게 될 줄을 알지 못하겠는가? 이것이 흔단(釁端)을 일으킨 것의 한 가지요,"
Vita_Activa(hugefiasco94)2024-09-12 19:00
답글
어디까지나 원장이 주장이긴 한데, 공식 항의문서에서 성계한테 절강성 지역에서 간첩 색출한 범인으로 지목된 기록이 남아있음
흠차 내사(欽差內史) 황영기(黃永奇)·최연(崔淵) 등이 황제의 수조(手詔)를 받들고 오니, 임금이 백관(百官)을 거느리고 선의문(宣義門) 밖에서 맞이하여 앞을 인도해서 수창궁(壽昌宮)에 이르러 조서(詔書)를 듣고 예(禮)를 거행하였다. "1. 지난번에 절동(浙東)·절서(浙西)의 백성 중에서 불량한 무리들이 그대를 위하여 소식을 보고하기에, 이미 수십 집을 죽였소. 그 고려의 산천 귀신이 어찌 그대가 화단(禍端)을 만들어 재앙이 백성에까지 미치게 될 줄을 알지 못하겠는가? 이것이 흔단(釁端)을 일으킨 것의 한 가지요,"
어디까지나 원장이 주장이긴 한데, 공식 항의문서에서 성계한테 절강성 지역에서 간첩 색출한 범인으로 지목된 기록이 남아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