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타 스즈코는 10대 때 '위안소'로 인신매매되어 전쟁이 벌어지는 동안 대만과 트루크 제도에서 일본군 장교와 병사를 가리지 않고 성적으로 이용당했다. 그는 '위안소'에서 한국에서 온 여자들뿐 아니라 일본 본토와 오키나와의 민간 성착취 산업에서 인신매매되어 온 여자들과도 함께 억류되어 있었다. 시로타의 수기에 따르면 그는 도쿄의 한 민간 성착취 업소에 있는 동안 한 소개업자의 제안을 받고, 엄청난 빚더미에서 벗어나기 위해 대만으로 가게 되었다. 아버지는 17살 나이의 시로타를 '게이샤' 업소에 팔았으며, 이후 딸 이름으로 또 빚을 내 시로타는 '게이샤' 업소에 팔았으며, 이후 딸 이름으로 또 빚을 내 시로타는 '공창' 업소로 팔려간 상태였다. 그러다 소개업자의 제안을 받아 일제 점령지 대만의 해군 '위안소'로 인신매매된 7명의 일본인 여자 모두 소위 "성매매 여성"이었다. 그들은 해군 '위안소' 20속이 위치한 대만의 한 섬으로 보내졌다. 모두 일본인이 관리하는 '위안소'였다. 시로타가 있던 '위안소'에만 15명의 여자가 억류되어 있었다. 이들은 '위안소' 바깥출입이 엄격하게 통제됐으며, 정기적으로 성병 검사를 받아야 했는데 '위안소' 관리자가 군의관에게 뇌물을 먹여서 검사를 통과하게 했다. 시로타는 '위안소'의 주말이 특히 끔찍했다고 기억한다. 병사들이 우르르 몰려와 줄을 섰고 먼저 들어가려고 몸싸움을 벌이기까지 했다. 여자들은 토요일과 일요일에는 많으면 하루에 15명의 남자에게 이용당했다. 시로타는 이런 경험은 "한 마리씩 달려드는 짐승을 막아내야 하는" 악몽과도 같았다고 토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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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로타는 전쟁이 끝난 후에도 민간 업소에서, 특히 주일 미군에 의해 성착취됐다. 시로타는 당시 경험을 이렇게 회고한다. "뭐가 어떻게 되건 남자가 돈 벌고 재미 보는 데만 쓰이는 존재, 그게 나인 것만 같았다. 여자의 숙명인가 싶기도 했다. 내 몸이 쓰고 버리는 일회용품처럼 느껴졌다."'위안소' 생활(그리고 그전에 17세부터 했던 민간 성착취 업소 생활)이 끝났을 때 시로타에게는 대다수 성노예제 생존자와 마찬가지로 몇 푼 안 되는 돈, 심리적 트라우마, 약해진 몸만이 남았고, 전쟁이 끝난 후에도 그런 취약한 상태가 시로타를 '기지촌' 성착취(군인 남자에 의한 평시 성착취) 업소로 인신매매되도록 몰아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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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여자들이 전쟁 한복판에서 땀 냄새 나는 짐승 같은 남자들이 여자 몸의 한계를 밀어붙이며 고문하는 걸 즐겼다고 생각하나? 우리는 모두 가난했고 먹을 게 없었다. 돈이 필요했다. 그래서 이를 갈며 견뎠을 거라는 생각이 안 드나? 여자의 몸은 실제 피와 살로 이루어져 있다. 기계가 아니란 말이다. 남자 50명, 100명이 차례로 달려든다고 할 때 여자의 실제 육신에는 무슨 일이 일어날지 상상해 봐라. 시뻘겋게 붓고 어디하나 멀쩡한 구석이 없게 된다. 다리를 닫을 수도 없어서 게처럼 걷는다. 그런 상태가 되고서도 다음 날에도 남자를 봐야 한다.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온몸에 최대한 찬물을 많이 끼얹고 눈이 붓도록 우는 것뿐이었따.
-라바울에서 성매매 당했던 일본인 생존자의 증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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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 생존자 다카지마 준코는 1914년 야마가타현의 한 마을에서 태어나 1937년 11월 23세의 나이로 도쿄의 한 성매매 업소에 빚으로 매이게 되었다. 육군성이 그가 속한 포주 연합대표를 불러다 여자를 인신매매해 상하이에 성매매 업소를 세우라고 명령한 후 그는 중국으로 재인신매매됐다. 그와 함께 이동한 여자들은 대부분 일본 동북부 지역 출신이었다. 그가 중국에서 머무르게 된 업소에는 방이 15개 있었는데, 여자들이 생활하는 방이 곧 성매매당하는 방이었다. 다카지마는 도착한 날 군의관에게 검진을 받았고, 바로 다음 날 아침 9시부터 그를 이용하려는 군인들이 업소 바깥에 줄을 섰다. 그는 정오에 한 시간 휴식 시간을 가졌고, 그 후 오후 다섯 시부터 일곱 시까지 쉬었다. 그러고 나서 일곱 시부터 아홉 시까지는 장교들이 그를 성착취했다. 하루 평균 15명의 남자가 그를 이용했다.
출처: '위안부'는 여자다, 캐롤라인 노마 저, 유혜담 옮김, 열다, 24~26, 208, 251~252쪽, 202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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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좆짱깨 병신들은 지네들 위안부가 제일 많은 것도 모름 ㅋㅋㅋ
일제에 감사하대잖아. 한잔해~
영화 난징 난징에도 일본인 위안부 나오지 - dc App
20세기가 되어서도 딸을 팔아버리는 일이 비일비재했구나
하루평균 15명.... 아이고야...
부모한테 전쟁터 위안부로 팔려나가는 사람 심정은 상상이 안가네 - dc App
게게게의 키타로 작가 에세이 보면 조선삐랑 일본삐랑 구분했다는 거 보면 일본인 위안부도 많았음 - dc App
아이즈번 차별로 동북부여자들 집어서 위안부 처넣은건가? - dc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