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대항규이 우리 방어선을 밀어버리고, 급편방어선조차 신나게 털려서 전선 부대들 각개격파되고, 지휘소는 자주포에 쳐맞아서 소령 하나랑 다이아 몇 명 빼고 대령 이하 즉사, 통신도 털려서 후방은 그 사실조차 모른 채 둘러앉아 전식이나 까먹으며 아 우리 연대장 형님 이대로면 장포대 확정이라며 시시덕 거리던 때였음.


전시창에서 슝슝슝 소리가 나더니 텐트 위에 설치된 감지기에서 연막이 뻐엉 하고 터지며 부대원들 절반이 사망, 어ㅅㅂ 이게 뭐지 하면서 누가 죽고 누가 살아남았나 재편성을 하기 시작함.


수치상 거의 2/3이 즉사했고 1/3만 남음. 간부 셋 (중위 중사 하사) 병사 아홉인가 그랬을 걸


"이성"이 마비된 생존자들은 제각기 K2 한 정 꼬옥 껴안고 덤불이나 수풀에 옹기종기 모여 해병성채에서 토론하는 해병들마냥 제각기 기합찬 아이디어를 내기 시작함


1. 한 명이 희생해서 두돈반으로 길을 막아버리자
-> 옆에서 듣던 통제관이 거부. 기각


2. 이대로 지휘소 있는 곳까지 퇴각하자
-> (당시에는 지휘소 털린 걸 몰랐음) 우리 위치 버리고 멋대로 퇴각해도 됨? ㅈ되는 거 아니냐? 그냥 있자


3. 사망자인 척 위장해서 후일을 도모하자
-> 통제관이 노려봄. 기각


4. 총원 옥쇄



결국 채택된 아이디어는 한국 육군답지 않은, 참으로 일제스럽기 그지없는 "총원 옥쇄". 근처에서 담배 피다가 살아남은 애들, 운전병, 의무병, 정비병까지 모두가 K2 한 정 들고 옥쇄하기 위해 모였음.


중위 간부가 소산하기 전 우리에게 짧게 한 훈시는 참으로 기합스러웠는데, 기억이 완전하지는 않지만 더듬어보자면
"마지막 한 명까지 죽음을 각오하고 싸우자" 였던가 그럼


근데 참 신기한 게 상황이 상황이라서 그런가 다들 생각하는 수준이 거기서 거기였나 봄


전차가 우리 00m 앞까지 왔고, 고개를 내민 전차장 표정이 보일 정도로 전차가 가까이 옴. 숨죽여서 옥쇄 타이밍만 노리고 있는데, 전차장이 계속 머리를 내밀고 있더라고? 그래서 우리끼리 전차 위에 올라타서 전차장이랑 내부 인원 죽이고 전차 뺏기만 하면 이건 포상 일주일이다 ㅇㅈㄹ 하고 있었는데


어디 소속인지는 모르겠지만 KCTC 한다고 파견 온 사단 방공중대가 위치한 곳에서 아저씨 한 명이 소총을 들고 전차 옆 면으로 먼저 돌격해버림


아무래도 정황상 전차 옆 면 숲에서 튀어나왔는데, 전차 포탑이 돌아가있을 때 기습적으로 옆으로 달려가서 보기륜 밟고 올라탄 다음 전차장을 총으로 쏴 죽이려던 게 아니었을까 생각해봄


통제관 세 명이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지르며 원격으로 그를 사망시킴


우리가 하려던 짓이 정확히 밴 당하는 것을 보고 나서야 "이성"을 되찾고 옥쇄고 뭐고 소총 껴안고 누워서 지나갈 때까지 기다려서 끝까지 살아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