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개소문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이들도 장남인 연남생에게 권력을 집중해주지 않아서 분열을 자초했다고 비판하는 경우가 많은데... 내가 봤을 때는 지나치게 결과론적임.
1) 연개소문은 28세의 연남생을 막리지에 앉히는 등 일찍 출세가도를 달리게 하여 국정 운영에 대한 경험을 쌓게 하면서 안정적인 권력 세습을 위해 노력함.
2) 또한 연남생 3형제가 연개소문의 생전에 우애가 나빴다는 정황들도 없을 뿐더러 오히려 좋았다는 정황들이 있음.
연남생은 집권한 지 얼마 안 되었음에도 동생들에게 중앙 집무를 맡긴 채, 지방 순행을 떠났는데 이는 자신이 수도인 평양을 비워도 될 정도로 두 동생들을 신뢰했다는 정황임.
연남건과 연남산 역시 처음엔 연남생이 자신들을 해치려 한다는 이간질에 응하지 않았고, 연남생도 결국엔 밀정을 파견했지만 처음엔 이간질에 응하지 않았음.
또한 연남생은 고구려 멸망 이후, 동생들을 의심해서 골육상쟁은 물론 고구려의 분열과 멸망을 자초한 책임을 조금이나마 통감했는지 연남건이 자신의 아들인 연헌충을 살해했음에도 끌려온 연남건을 죽이려 하는 당고종에게 간청하여 유배형으로 감면시켜서 연남건이 죽음만은 면하도록 도와줌.
이 모든 것을 고려하면 연개소문의 생전에는 연남생 3형제의 갈등은 딱히 없었을 가능성이 높아 보임.
3) 연남생은 연남건이 장악한 고구려의 중앙군에 맞서 이기지는 못 했어도 친위 국내성 세력만으로도 당나라 지원군이 오기 전까지 버텼고, 연남생과 함께 국내성을 포함한 십여 개의 성과 그 세력권이 함께 투항함.
이는 연개소문이 생전에 자신의 후계자인 연남생에게 구축해뒀던 독자적인 친위 세력이 상당했다는 근거임.
연개소문이 제위 계승자를 제외한 왕자들을 모두 죽였던 초기 오스만 제국처럼 두 아들을 죽였어야 했나?
아니면 고려시대 소군처럼 모든 정치적 권리를 박탈하고 출가라도 시켰어야 했다는 건가?
그럼 그냥 순수하게 능력이 병신이라 털린건가?
이미 고구려 국력이 한계였긴 한데, 고구려 망한 이후 당 외정 개판도 그런 개판이 없는 거 보면 그때 잘 막기만 헸어도... 라는 아쉬움이 있긴 함
중앙 권력을 빼앗기면 국내성 주위의 연남건 친위 세력을 제외한 모든 세력이 적이 되니까 밀릴 수 밖에 없지.
하지만 동시대에 김법민과 김인문이라는 반례가 살아있는걸... 김유신과 연개소문도 반례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음. 김유신은 정무적 조율만 하고 군사에 집중했으니까 - dc App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네. 김유신이 김법민(문무왕)과 김인문의 후계 구도에 영향을 끼쳤음? 김인문은 애초에 친당파였다가 나당분열로 문무왕과 갈라선 거라서 전혀 비교 대상이 아닌데?
온 군사력을 쥐고 있었는데 군부 수장의 역할과 김법민의 후원자에 충실했다는거고, 외교적으로 김인문이 당에 굴복하자는 주장이 형에 의해 기각된건 확인 되는디 그 이후에 신라왕 책봉도 본인이 거부하고 김법민이 살려두는데? 김대토, 김진주 그리고 사죄사로 사실상 버림패를 쓰기도 했는데 자기 동생만큼 적절한 대상이 없었는데? 등을 친당파라고 가차없이 죽인 인간이. 거기다 식읍까지 내려주지. - dc App
김유신이 문무왕과 김인문한테 권력을 승계하는 위치에 있었던 것도 아니라 왕실을 보위하는 입장이었는데 그게 자신의 사후 아들들한테 정권을 승계하는 연개소문이랑 뭔 상관이 있고 반례가 됨...?
무려 전쟁영웅인 왕을 오체분시를 해도 나라가 심각하게 분열되지 않고 당나라 침략을 막아낼정도였으면 이미 압도적인 세력을 가진 가문이었을것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감각이 뛰어난 사람이었던것도 맞을것 같아. 그냥 자식이 마음대로 안됐던거지 뭐
것 같은게 아니라 연개소문의 아버지, 할아버지인 연태조, 연자유 때부터 군권을 독점했었다고 기록되어 있음.
그건 아는데 연태조 연자유 시절이면 고수전쟁에 을지문덕이 있던 때인데. 이것도 수수께끼같다.
근데 사실 군주제 국가였던 고구려에서 신하가 세습을 했다는 거 자체가 파멸의 지름길 아니었나 싶기도 함. 연남생이가 왕이 돤 게 아니잖아. 보장왕도 마냥 허수아비는 아니었다는 설도 나오고 있으니
당시 군주제가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상식하고는 많이 다를것 같긴 한데... 일단 영류왕이 뭔가 너무나도 큰 삽질을 했다거나 하는 추정은 가능할듯..
기록이 너무 자세하지 않고 그들이 직접 남긴 기록도 없으니 솔직히 몰?루겠어
나도 영류왕이 크게 실책을 저질러서 민심이 나빠졌거나 연개소문의 지지도가 높았다는 시각에 동의하는 게 연개소문은 정변을 일으킨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직접 군사를 몰고 신라를 공격함.
연남건의 정변처럼 수도를 비우는 건 위험한데도 말이지. 그리고 연개소문의 20년 넘는 집권기 내내 우리가 흔히 양만춘으로 아는 안시성주를 제외하면 반발 기록이 전혀 없음.
난 그래서 보장왕이 실제론 연개소문의 강력한 협력자였다고 생각함. 찬탈자 영류왕을 몰아낸 충신 정도로 생각되었을지도 모르지. 그러다가 세습을 하니까 어 이새끼 봐라? 하면서 아들 삼형제에겐 협력을 안 해줬던 거고
그게 이미 그 집안의 지위는 계속 세습이 되고 있었다잖어. 물론 연개소문이 승계할때도 반발이 심했다더라
그때 국가는 귀족 연맹체로 보는게 옳지.
신라는 뭐 아예 왕성이 대놓고 바뀌는 수준이지만, 고려나 백제도 그에 못지 않게 왕계가 복잡할것 같아. 수상한 기록이 너무 많지. 조선같은 나라로 보면 안될것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