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bcc629e68776ac7eb8f68b12d21a1dd593bbdc6e78




그 날 밤에 내가 이집트 땅을 지나가면서, 사람이든지 짐승이든지, 이집트 땅에 있는 처음 난 것(Eldest)을 모두 치겠다.


- 출애굽기 12: 12





1968년 베트남에서는 폭발한 중국제 56식소총과 얼굴에 노리쇠 뭉치가 박힌 베트콩의 시체가 발견되었다는 보고가 산발적으로 들어왔다. 기술 정보부는 이를 열악한 야금과 나쁜 탄약 탓으로 돌렸다. 현지 장병들에게는 적군의 화기를 함부로 노획해서 사용하지 말라는 지시도 내려왔다.


1967년, MACV SOG 사령관으로 복무하고 있던 존 싱글로브(John K. Singlaub) 대령는 정찰팀에게서 다음과 같은 비슷한 보고를 여러번 들었다.

(주: 지미 카터 면전에서 주한미군 철수 결사반대해서 짤리셨던 그 분.)










a04424ad2c06782ab47e5a67ee91766dc28ff1ecdaacc4c0bf11dac15fd3d721af761b7a9515d9366dc5fe5da7ae2d


'호치민 트레일을 돌아다니다 보면 찰리들의 임시 야적장을 발견하곤 합니다. 거기엔 온갖 종류의 소화기 탄약, 박격포탄, 야포탄이 수백 수천발씩 쌓여있습니다. 하지만 저희가 소지한 폭약 몇십 파운드만으로는 전부 날려버릴 수가 없습니다. 그저 탄약을 사방에 흩뿌리는 정도겠죠. 공중지원을 부르기엔 저희 주임무가 실패할 위험이 있고요. 저희는 항상 이런 잭팟을 그냥 쳐다만 보고 지나쳤습니다.'



여기서 싱글로브는 더 기발한 발상을 했다. 그는 1944년 OSS가 버마전선에서 일본군 보급망에 가짜 6.5×50mm 탄약을 보급하는 작전을 입안했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여기서 영감을 받은 싱글로브는 1967년 8월 30일 펜타곤으로 가서 합참에서 자신의 아이디어를 브리핑했다. 미국에서 특수제조된 가짜 7.62X39mm를 NVA 보급기지에 몰래 섞어놔서 찰리들이 AK 소총의 신뢰성에 의문을 품도록 만들자는 것이었다.





viewimage.php?id=3abcc2&no=24b0d769e1d32ca73de98efa1bd62531416b0cf072989a548cbc1d4adf4423ef66add21ef9967b0a7888768d78af18770fca7c6cd9a0a6291e1669dc


북베트남군이 사용하는 SKS, RPD, AKM, 56식과 같은 7.62X39mm 화기들은 최대 40,000psi의 챔버 압력을 버틸 수 있었다. 하지만 CIA가 개발한 특수탄약은 무연화약 대신 250,000psi의 압력을 낼 수 있는 폭발물로 충진되어 있었다. 이 탄약을 격발하면 리시버는 폭발했고 노리쇠 뭉치는 뒤로 튀어나가 사수의 눈에 박혔다. 테스트는 대부분 오키나와에 있는 CIA 기지인 캠프 치넨(Camp Chinen)에서 이뤄졌다. CIA는 박격포 발사관 안에서 폭발하는 82mm 박격포탄 퓨즈도 개발했다. 헬리콥터들을 위협하는 12.7x108mm DshK 중기관총탄도 개발했다.


탄약들이 개발완료되자 이번에는 이걸 양산할 전문 군수팀이 꾸려졌다. 이들은 현지에서 노획한 중국제 7.62X39mm 탄약박스를 조심스럽게 뜯은 후 총알을 분해했다. 그리고 무연화약을 제거한 뒤 대신 특수 폭발물을 충진하고 다시 밀봉했다. 이 과정에서 탄피가 긁혀서 티가 나는 사소한 문제가 발생하기도 했지만 전방의 베트콩들은 그 사실을 알아치리지 못했다. CIA 작업팀이 새로 만든 탄약들은 7.62×39mm 11,565발, 12.7×108mm 556발, 82mm 1,968발이었다.



CIA는 이 프로젝트의 이름을 출애굽기에 나오는 열가지 재앙의 마지막 재앙인 '장자의 죽음'에서 따와 맏아들(Eldest Son)이라고 명명했다.
















a04424ad2c06782ab47e5a67ee91766dc28ff1ecdaacc4c0bf11dac15fd2d621a21ed75f8c79abfd857bacc630d750


이후 다시 베트남까지 운송된 탄약박스는 SOG 정찰팀에게 지급됐다. 정찰팀은 작전중 탄약 보급소를 발견하면 몰래 가짜 탄약박스를 다른 박스들 위에 올려놓은 뒤 철수했다. 파괴된 82mm 박격포 탄약을 심는 것은 더 번거로웠다. 왜냐하면 이것들은 3발들이 나무 상자에 포장되어 보급되기 때문이었다. 박스의 무게는 개당 25파운드(11.3kg)가 넘었다. 당연히 정찰팀은 이 박스를 등에 짊어지고 정글을 누벼야 했다. 혹은 가짜 총알을 몇개 파우치에 넣고 다니다가, 매복으로 사살한 찰리들의 총에 한발씩 장전해놨다. 분명 다른 찰리들이 총을 회수해가서 쓸 것이기 때문이었다.


전방 항공 관제사는 베트남, 라오스, 캄보디아 등지에서 정글 속에 숨어있던 박격포대가 별안간 폭발하는 것을 여러번 관측했고 전방의 보병중대에서도 수색중 별모양으로 갈라진 박격포 포신과 그 주변에 널부러진 찰리들의 시체를 발견했는 보고가 여러건 올라왔다.










viewimage.php?id=3abcc2&no=24b0d769e1d32ca73de98efa1bd62531416b0cf072989a548cbc1d4adf4423ef66add21ebcc32a001e88728a72a67522fb48430e558b8d364b1aadcb9b28a747



1968년 내내 전장 곳곳에서 '폭발하는 AK'에 대한 보고가 들어왔다. 소총수가 죽거나 다치고, 때로는 박격포반 전체가 전멸했다. SOG의 전략적 목표는 북베트남인들이 자신들에게 무기를 공급해주는 중공에게 깊은 불신감을 갖도록 하는 것이었다. 여기에 CIA는 중국제 탄약에 대한 품질 문제를 지적하는 위조된 북베트남군 문서를 뿌려서 혼란을 가속 시켰다.


당시 중국 공장에서 막 찍혀나온 탄약도 최전선의 베트콩들 손에 장전되기 까지는 약 1년에서 최대 3년까지 시간이 걸렸다. 그들 역시 탄약이 운남성과 라오스를 거쳐 내려오는 동안 사이 정글의 기후 때문에 맛탱이 갈 수도 있다는 걸 인정했다.






a04424ad2c06782ab47e5a67ee91766dc28ff1ecdaacc4c0bf11dac158d2d32130d140902fdf0402530a4f88ccc438



MACV에서는 '피로 균열을 초래하는 결함 있는 야금' 또는 '과도한 챔버 압력을 발생시키는 결함 있는 탄약'으로 인해 무기가 파괴된다는 내용이 적힌 적성화기 백서를 발간했다. 북베트남 간첩들은 곧바로 이 백서를 입수하여 하노이로 올려보냈다. 당연히 '계획대로'였다.


하지만 가짜탄약을 섞어놓는 일은 매우 위험했다. 1968년 11월 30일, 가짜 82mm포탄 7박스를 실은 헬리콥터와 정찰팀이 케산기지 서쪽 20마일에서 37mm 대공포에 피탄됐다. 불행히도 대공포탄이 박격포탄 박스를 뚫고 들어갔고 헬리콥터는 공중에서 폭발했다. 생존자는 없었다. 정찰팀 7명의 시신은 20년 뒤에서야 발견됐다.








0baed53ee6c0329e619ef79820da2373fcb9ce995b501e8981d0f4efb031ee



아이러니하게도 SOG 역시 AKM과 RPD 같은 적성화기를 자주 사용했다. 하지만 현지 노획탄은 절대 사용하지 않았고 핀란드를 통해 구매한 소련제 7.62X39mm 탄약을 사용했다. 이 탄약들은 페트로그라드(상트페테르부르크)의 조병창에서 생산된 것들이었다.


프로젝트의 코드명은 보안유지를 위해 여러번 변경됐다. 처음에는 Eldest Son으로 시작해서 Italian Green으로 변경되었고, 결국 Pole Bean으로 변경되었다.



하지막 프로젝트는 1년을 조금 넘기고 나서 폐기됐다. 1969년 중반, 뉴욕 타임스와 타임지에서 가짜탄약에 대한 정보를 입수하여 폭로기사를 발표했다. 합참에서는 남아있는 가짜 탄약을 최대한 빨리 처분하라는 명령을 내렸고 SOG는 몇개월 동안 라오스 국경에서의 임무에서 매번 가짜탄약을 들고 나가는 수고를 해야만 했다.


기밀이 해제된 보고서에 따르면, 프로젝트 기간동안 살포된 가짜탄약의 양은 7.62mm 3,638발, 12.7mm 167발, 82mm 821발로 추산된다.




https://sogsite.com/2021/03/24/project-eldest-s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