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0년 독일 전쟁해군 유보트 함대는 단 3달만에 282척의 연합군 상선을 격침시키고 이러한 기세를 몰아 1943년 3월에는 103척의 상선을 격침시킨다.
하지만 불과 2달 후인 1943년 5월 독일군 유보트 함대는 무려 43척이나 격침당하며 그 당시 작전에 투입 가능한 유보트의 4/1을 손실한다,
어떻게 연합군이 2달만에 무적처럼 보이던 독일군 유보트 함대를 물리칠수 있었을까?
2차대전 발발과 거의 동시에 시작한 대서양 전투는 주로 영-미 해공군과 나치 독일 전쟁해군 유보트 함대와의 전투를 일컫는다,
전쟁 초기 영국 왕립해군 연안사령부는 구식인 아브로 앤슨 폭격기나 복엽기인 빅커스 빌더비스트와 드 하빌랜드 타이거 모스등을 운용했다,
당연하게도 이러한 구식 비행기들로는 대잠초계임무가 정상적으로 수행될수 없었고,
설상가상으로 신형 폭격기들은 같은 공군의 폭격기사령부에 먼저 배치되는 상황이라 연안사령부는 구식 항공기들을 악으로 깡으로 운용하면서 버텨야했다.
이로 인해 생긴 대서양 사이의 빈틈을 노려 유보트 함대들은 연합군 상선들에게 큰 피해를 입히게 된다,
미국은 영국을 돕기 위해 참전 전에도 중립적 순찰이라는 명목하에 미 해군 항공단을 대잠초계에 투입시켰다,
하지만 그 미국조차도 본격적인 참전 전까지는 구식 보우트 SBU-1 복엽기등을 투입하여 사실상 영국과 비슷한 대잠초계 효율을 보여주었다,
미-영 양국은 이러한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상선에 대잠초계기를 매달고 출항시키거나,
통칭 허프/더프(Huff/Duff)로 불리는 고주파 무전탐지기를 설치하여 유보트 울프팩들의 무전을 감청하는등의 활동을 시도했다,
영국 본토에서는 앨런 튜링등의 학자들이 에니그마를 해독하여 독일 본토에서 보내는 무전을 해독하여 유보트 함대의 위치를 알아냈다,
에니그마 해독까지는 최대 72시간의 간격이 있었지만 연합국 호송대들은 그럼에도 전보다 비교해서 더욱 안전하게 항해 할 수 있었다.
영국은 공군 연안사령부에 쇼트 선덜랜드를 비롯한 장거리 초계기를 배치하기 시작했으며,
미국은 B-24 리버레이터 폭격기를 대잠초계용으로 개수하여 육군항공대 대잠수함사령부와 영국에 공급한다,
영국은 야간에도 1km까지 밝힐수 있는 레이 탐조등을 대잠초계기들에게 설치하고,
ASV와 H2S를 비롯한 항공기용 대수상레이더를 장착하여 부상한 유보트를 찾을수 있게 된다,
호위함들에는 위에서 언급한 HF/DF 무전탐지기나 ASDIC같은 수중음파탐지기를 장착하여 어디서 유보트들이 오는지 확인할수 있게 되었다,
발각된 유보트들은 공격을 취소하고 후퇴했지만 일부 대담한 유보트 함장들은 그러한 위험에도 불구하고 호송대를 공격하러 움직였다,
그러한 유보트 함장들의 최후는 헷지호그를 비롯한 연합군 최신 무기들에 격침당하거나 피해를 입고 함정과 함께 생포되었다.
연합군은 이러한 기술력들의 발전과 더불어 연구로 전에는 6척의 호위함으로 24척의 상선을 보호했지만 연구 결과 8척으로 48척을 보호할수 있다는 결론을 내린다,
이러한 연합군들의 노력의 결실은 1943년 5월 11일 할리팩스에서 출항한 SC-130 호송대에서 결과를 들어내게 된다,
SC-130 호송대를 공격하기 위해 25척의 유보트가 3개의 울프팩으로 뭉쳐 출동했지만 최신예 HF/DF와 대수상레이더를 장착한 연합군에게 오히려 3척이 격침당한다,
연합군은 전투중 1명도 부상을 입지 않았지만 독일군은 3척을 손실하고 142명이 전사하는 뼈아픈 손실을 겪는다,
독일군 전사자들 중에는 전쟁해군 총사령관 카를 되니츠 제독의 아들 피터 되니츠 소위가 지휘하던 U-594도 포함되어 있었다,
독일군은 이때까지 연합군의 신기술들을 파악하지 못하거나 얕잡아보고 있었고,
되니츠 제독의 지시로 최대한의 효율성을 위해 공격직전까지 유보트들은 서로간 통신하며 공격을 준비하였다,
당연히 이러한 통신 전파들은 HF/DF에 감지되어 연합군 초계기들에게 전달되었고 U-273와 U-258은 초계기들의 폭뢰 공격에 격침된다,
실제로 당시 HF/DF 감지 기록에는 무려 104개의 무전전파가 잡혀 초계기들에게 정확한 위치를 전달할수 있었다,
국방군 내부에서도 헤르만 괴링을 비롯한 공군과 카를 되니츠로 대표되는 해군이 대립하여 공군과 해군간의 유기적인 통합작전이 불가능 하였다,
반면에 연합군은 전담 부서를 창설하여 해군과 공군의 연합작전으로 독일군 유보트 함대의 씨를 말릴 기세로 유보트들을 사냥하는것이 가능하였다,
이러한 손실에 1940년에는 유보트 함장들은 평균적으로 2년간의 실전경험이 있었지만 1943년에 와서는 불과 8개월의 실전경험을 가진 함장들이 대다수였다,
위에서 언급한 SC-130 공격에서 침몰한 유보트 함장들 역시 순찰 경험이 1~2번밖에 없던 신참 함장들이였다,
전쟁 초반 스캐퍼 플로우 기습으로 로얄 오크를 격침한 U-47의 함장 군터 프린은 이미 1941년에 전사하였고,
46척을 격침한 오토 크레치만은 군터 프린과 동일한 연도에 연합군에 포로로 붙잡혔다,
독일 전쟁해군은 1943년 5월을 기점으로 몰락을 거듭하여 1945년 5월 8일까지 783척의 잠수함을 손실하고 3만여명의 인명피해를 입었다,
연합군 호송대와 해군들은 3,500대의 상선들과 175대의 군함들을 손실하였으며 741대의 항공기를 손실하였다, 인명피해는 독일군의 2배인 6만여명이 전사하였다,
울프팩 전술 믿고 유보트 3천대 뽑았으면 ㄹㅇ 더 빨리 망할 뻔 했네
발터엔진 유보트 일찍 투입했더라도 이미 초격차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