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김일의 방중 회담 내용은 김일성의 전언을 전달한 1949년 5월 15일 자 시티코프의 보고(수신인은 비신스키 외상)와 마오쩌둥의 전언을 전달한 5월 18일 자 코발레프의 보고(수신인은 스탈린)를 통해 알 수 있다. 우선 후자부터 살펴보자. 코발레프는 중공에 파견된 소련공산당의 대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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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조선에 장교 요원과 무기를 지원하는 건에 관해 마오쩌둥 동지는 그러한 지원을 할 수 있다고 답했다. 만주에는 150만 명의 조선족이 있고 그들로 조선인 사단 2개(각각 1만 명 규모)를 편성했다. 이 중 1개 사단은 전투 경험이 있다. 이 사단은 만주에서 국민당군과의 전투에 적극 참여했다. 이 2개 사단은 요구만 하면 언제든지 북조선에 제공할 수 있다. 이 밖에 우리는 장교 2천 명을 양성했다. 그들은 현재 추가 교육을 받고 있으며 한 달 후면 북조선에 파견할 수 있다. 남북 간에 전쟁이 터지면 우리는 최대한 원조하겠다. 특히 상기 사단을 위해 식량과 무기를 지원할 용의가 있다.


 북조선의 동지는 미군이 머지않아 남조선에서 철수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그리고 미군을 대신해 일본군이 들어와 이 원조를 등에 업고 북조선 공격을 획책하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다.


 우리는 이 군대에는 반격하라고 권고했다. 반격 시는 남조선군에 일본군이 있는지 없는지를 반드시 고려할 필요가 있다. 만약 일본인 부대가 참가하고 있다면 신중을 가해야 하며 적의 역량이 우세한 경우는 아군을 지키기 위해 자국 영토의 일부를 희생해서라도 (후퇴해) 침입한 군대를 유리한 조건에서 포위, 섬멸하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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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약 미군이 떠나고 일본군이 들어오지 않는다면 이 정세에서는 남조선에 대한 공격을 도모하지 맣고 더 적절한 정세가 도래할 때까지 기다리라고 북조선의 동지에게 권고했다. 왜냐면 공격 과정 중 맥아더가 신속히 일본인 부대와 무기를 남조선에 투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신속하고도 실질적인 지원이 불가능하다. 우리의 기본 병력이 양쯔강 건너편으로 이동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북조선의 남진 공격과 같은 행동은 1950년 초반에 국제 정세가 호전되면 도모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북조선에 일본군이 침입할 경우 우린느 서둘러 우리의 정예부대를 급파해 일본군을 섬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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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서 짚고 넘어갈 것은 북한 측이 미군의 철수 후 미군이 한반도로 돌아올 가능성은 거의 배제하고 일본군의 투입 가능성만 고려했다는 점이다. 북한은 물론 중국도 당시 일본군의 개입 가능성을 점쳤다. 북한 측의 이러한 인식의 배경은 북조선노동당 기관지 <근로자> 1948년 3월 호에 실린 신염의 논문 <일본에 대한 미국 팽창주의자의 정책>에서 찾을 수 있다. 이 논문은 '복원국' 내부에 구 대본영의 고위급 군인들이 몸담고 있고, 일본의 벽지에 있는 '농장'에는 "일본군 정규 부대와 연대가 보존되어" 있으며, 민주화에 저항하는 '비밀정부'라 불리는 장교 그룹에 도쿄만 해도 5만 5천 명이 속해 있다는 극히 편향적이고 선전적인 정보를 수록하고 있다. 나아가 이를 토대로 미국이 "일본 군국주의"를 부활시켜 극동과 태평양 징역에서 '자신들의 헌병"으로 만들려 하고 있다는 결론을 도출하고 있다.


 1949년 5월 당시 일본군은 존재하지 않았다. 설사 전쟁이 시작된들 황급히 편성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이러한 과장된 정보를 믿고 미국이 은밀히 구 일본군의 일부를 온존해 새로운 군대의 핵심을 양성하고 있다고 오해한 것은 북한에게 미군은 경험해 보지 못한 존재였고 일본군의 군사력에 대한 기억이 너무나도 선명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지레 일본군의 환영에 벌벌 떠는 한편, 반대급부로 미군에 대한 경계심은 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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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과 박헌영에게 대사대리 그리고리 툰킨 공사가 한 질문-남조선에 미군이 있는가. 북이 공격한 경우 미국은 어떤 조치를 할 가능성이 있다고 김일성은 생각하고 있는가에 대한 답변)


 남측의 미국인 군사고문 수는 공식적으로 500명이나 간첩의 정보에 따르면 900명이고, 그에 더해 경비병 1,500명이 있다. "조선에서 내전이 발생하면 미국은-김일성과 박헌영의 견해에 따르면-남측을 지원하기 위해 일본군과 중국군을 파견하고 미국은 바다와 하늘에서 지원할 가능성이 있다. 미국인 고문은 전투 행도으이 조직에 직접 참여할 것이다." 미군의 직접적 개입은 없을 거라는 김일성 등의 인식이 ㅇ전히 일본군과 장제스군의 파견이라는 전망과 결부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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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0년 5월 13일 김일성과 박헌영은 베이징에 도착해 저녁에 마오쩌둥과 회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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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오쩌둥과 김일성, 박헌여으이 회담 기록은 공개되지 않았다. 로시친 대사는 이 회담 내용에 관해 박헌영과 저우언라이 두 사람에게서 들은 내용을 각기 기록해 5월 15일 모스크바에 보고했다.


 우선 박헌영에 따르면 회담에서 김일성이 3단계 계획을 작성했다고 설명했다. 첫 번째 단계에서는 병력을 준비, 결집하고 두 번째 단계에서는 평화통일을 제시하고 한국 측이 거부하면 세 번째 단계에서 군사행동을 개시한다. 이 계획은 모스크바에서 스탈린이 제안한 것이나, 김일성은 이를 스탈린과 본인들이 합의한 안이라고 마오쩌둥에게 설명했다. 마오쩌둥은 이 계획에 전적으로 찬성했다. 그리고 몇 가지 조언을 덧붙였다. 인민군을 치밀하게 준비시켜 병사, 지휘관 한 명 한 명에게까지 구체적인 임무를 철저히 부여하고, 인민군은 신속하게 행동해 대도시를 포위하되, 그곳을 점령하려고 시간을 낭비하지 않아야 하며, 적의 병력을 섬멸해야 한다는 것 등이다. 마오쩌둥은 일본군이 한반도에 투입될 듯하냐고 물었다. 김일성은 그럴 가능성은 적으나 미국이 일본군 2만~3만 명을 파견할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으며, 다만 그 정도로는 전세가 끄떡도 하지 않을 것이며, 이 경우 우리는 더욱 맹렬하게 싸울 것이라고 답했다. 마오쩌둥은 일본군 2만~3만 명이 한반도에 파견된다면 전쟁은 장기화될 것이나 그런 일은 없을 것이며, 만일 미군이 참전한다면 중국은 북한에 군대를 파견하겠다고 말했다. 소련은 미국과 38선 분할에 합의한 탓에 참전하기 껄끄럽지만 중국은 그러한 의무에 얽매여 있지 않아 도울 수 있다는 것이다.


 반면 저우언라이에 따르면 마오쩌둥은 "일본군이 참전한다면 전쟁은 장기화 될 것이라고 경고했고 일본군보다 미군 자체가 군사행도엥 나설지도 모른다고 우려를 표명"으나, 김일성은 극동에서 미국이 군사 개입할 뜻을 보인 적이 없으며 중국에서도 싸우지 않고 떠났으므로 한반도에서도 소극적으로 대응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당시 김일성과 마오쩌둥 모두 일본군의 참전은 없을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일본의 사정을 알고 있다면 당연히 일본군의 참전은 어림도 없다는 결론으로 귀결됐을 것이다. 그러나 김일성이 일본군이 참전하지 않는 이상 다른 외국 군대의 참전도 없을 것이라고 전망한 데 반해 마오쩌둥은 반대로 일본군이 아닌 미군의 참전 가능성을 전망하기 시작했다. 어쨌든 마오쩌둥은 김일성의 시도를 전면 지지하면서 미군이 참전하면 중국이 군사를 보내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와타 하루키의 한국전쟁 전사, 와다 하루키 저, 남상구 옮김, 청아출판사, 2023년,  71~78, 106, 159~161쪽




댓글 쓰는데 원문 없어져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