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내용은 현재 읽고 있는 걸프전 대전차전의 것임. 귀찮아서 교차검증은 안했음.
1. 연합군은 지상작전 개시 직전 지상군 최대 위협으로 여긴 이라크 공화국 수비대의 전차와 야포 공격에 최대한 집중함.
2. 먼저 F-16이 CBU, Mk.82 등으로 중고도 폭격을 실시하였으나 신통치 않음(이 당시 미군 F-16은 아직 랜턴 포드 없었음)
3. 미 육군이 원하는 B-52에 CBU나 MK.82를 채워 대규모 융단폭격을 가했으나 역시나 들이는돈에 비해 효과가 없었음.
4. 이라크군은 전쟁 초반에 공습으로 피해를 입은뒤에 주로 엄폐호에 기갑차량을 숨겨놓고 병사들은 좀 떨어진 곳에 참호를 파고 숨어있는 경우가 많았음. 비유도 폭탄으로는 이러한 표적 공격에 제한적이었음.
5. 게다가 이렇게 꼼짝않고 땅에 파고들어간 표적은 레이더로 찾기도 어려워서 조종사들은 쌍안경을 들고 표적을 찾아나서야 했음.
6. 이번에는 전략표적 공격 전문인 F-111을 끌고 옴. 첫 임무는 해당부대 대장인 대령이 직접 윙맨과 함께 출격. 야간에 페이브 택 적외선 포드로 표적을 찾고 이를 레이저 유도폭탄으로 파괴 하기로 함.
7. 2대의 F-111이 500파운드급 레이저 유도폭탄 4발씩 총 8발을 투하, 조종사 판정으로는 7발 명중을 기록.
8. 이후 F-111은 주로 야간에 전차 뚝배기 깨는 임무에 투입 됨.
9. A-10도 공화국 수비대 공격임무에 투입되었으나 전과가 신통치 않았음. 야간/새벽에 공격을 제대로 하려면 전천후 공격수단이 AGM-65D 매버릭 밖에 없는데 이건 전문 적외선포드 보다 능력이 제한적이었음. 이를테면 야간에 전치가 시동을 끄고 대기중이면 모래온도와 비슷해지는데 매버릭은 그 미묘한 차이를 감지해내지 못함. 조종사들은 야간에 겨우겨우 표적을 식별해도 결국 비유도 폭탄이나 위험을 무릎쓰고 기관포 공격으로 표적을 공격함.
10. A-10부대의 첫 공화국 수비대 공격 시도도 부대 지휘관인 대령이 직접 윙맨과 함께 시도하였으나 위의 문제 때문에 결과가 신통치 않았고, 심지어 윙맨은 SA-13으로 추정되는 지대공 미사일에 의해 큰 피해를 입고 간신히 살아돌아 옴.
11. 지휘관 귀환직후 바로 뒤에 출격한 2대중 1대의 A-10은 결국 지대공 미사일에 피격당함. 바로 직전에 미사일 공격을 받고 장기(leader)가 플레어를 투하하여 간신히 피한뒤, 미사일 발사지점을 찾아내어 재차 공격을 하려던 중 윙맨이 당한 것.
12. 격추당한 조종사는 비상탈출 하였으나 이라크 전차 부대 바로 옆에 떨어졌고 엄청난 구타를 당한 뒤 포로가 됨(기절한척 했는데도 계속 때렸....)
13. 이후 이라크 공화국 수비대에 대한 대부분의 전차 직접 공격은 야간에 F-111과 F-15가 맡음. 물론 상대적으로 훈련도가 낮고 방공능력도 떨어지는 일반 이라크 부대 지상군 공격에는 여전히 A-10이 투입 됨.
14. 전후 분석결과 이라크군의 실제 폭격피해는 군이 예상한것 보다 적었음. 당시 장갑차는 공격 후순위였으나 조종사들이 전차인줄 알고 공격한 표적 중 장갑차인것도 많았음. 또 엄폐호에 숨어있던 덕에 조종사는 파괴했다고 생각했으나 사실은 경미한 피해만 입고 살아남기도 하고... 전후에 특정지역에 대해 답사조사를 했는데 F-111이 떨군 2백 몇십발의 GBU-12중 전차를 완파시킨건 절반정도였다 함.
15. 하지만 이라크군은 직접피해보다 사기저하로 인한 탈영이 다 심각한 문제였음. 이는 이라크군 특유의 휴가제도와 결합됨.
16. 이라크군은 전시임에도 약 20% 병력이 항상 휴가중이었음. 식량배급도 줄이고, 병사들의 불만도 누그러트리기 위해서임.
17. 그런데 저렇게 연일 폭격을 당하니 사기가 떨어질데로 떨어져서 휴가나갔다 미복귀하는 사례가 늘어난 것. 게다가 수송부대도 계속 공격당하니까 복귀를 하려도 해도 하기가 어려운 상황. 물론 전시이탈등의 탈영도 상당했고 쉽게 항복해버리는 경우도 많았음.
18. 아이러니하게도 이라크 군 중 대규모 투항을 한 부대는 정작 공급을 별로 안 겪은 부대였으나, 아군의 공습피해 현장을 보고 두려워 사기가 급격히 떨어져 결국 투항했다고...
18. 물론 이동중이거나 경험 부족으로 엄폐를 제대로 못한 부대는 전차고 장갑차고 야포고 미군 전폭기들에게 신나게 두들겨 맞음.
19. 특히 수송부대는 항상 만만한 먹잇감이었고, 쿠웨이트 인근에 주둔중이던 이라크 공화국 수비대를 비롯한 많은 부대가 공습등으로 피해를 입으면서도 병력 재보충을 못 받는 상황이었음.
20. 슈워츠코프는 지상전 개시전에 이라크 공화국 수비대에 대한 공습을 강화하여 그 병력을 절반으로 줄이라 하였느나, 전후 조사결과 목표 달성에는 실패한것으로 나타남. 다만 이라크군의 행동과 사기를 크게 위축시킨 덕에 효과는 있었음. 근데 애당초 연합군이 이라크군을 과대퍙가한 탓에 실제 이라크군 규모 자체가 슈워츠코프가 예상한 것보다 적었으니 뭐...
1. 연합군은 지상작전 개시 직전 지상군 최대 위협으로 여긴 이라크 공화국 수비대의 전차와 야포 공격에 최대한 집중함.
2. 먼저 F-16이 CBU, Mk.82 등으로 중고도 폭격을 실시하였으나 신통치 않음(이 당시 미군 F-16은 아직 랜턴 포드 없었음)
3. 미 육군이 원하는 B-52에 CBU나 MK.82를 채워 대규모 융단폭격을 가했으나 역시나 들이는돈에 비해 효과가 없었음.
4. 이라크군은 전쟁 초반에 공습으로 피해를 입은뒤에 주로 엄폐호에 기갑차량을 숨겨놓고 병사들은 좀 떨어진 곳에 참호를 파고 숨어있는 경우가 많았음. 비유도 폭탄으로는 이러한 표적 공격에 제한적이었음.
5. 게다가 이렇게 꼼짝않고 땅에 파고들어간 표적은 레이더로 찾기도 어려워서 조종사들은 쌍안경을 들고 표적을 찾아나서야 했음.
6. 이번에는 전략표적 공격 전문인 F-111을 끌고 옴. 첫 임무는 해당부대 대장인 대령이 직접 윙맨과 함께 출격. 야간에 페이브 택 적외선 포드로 표적을 찾고 이를 레이저 유도폭탄으로 파괴 하기로 함.
7. 2대의 F-111이 500파운드급 레이저 유도폭탄 4발씩 총 8발을 투하, 조종사 판정으로는 7발 명중을 기록.
8. 이후 F-111은 주로 야간에 전차 뚝배기 깨는 임무에 투입 됨.
9. A-10도 공화국 수비대 공격임무에 투입되었으나 전과가 신통치 않았음. 야간/새벽에 공격을 제대로 하려면 전천후 공격수단이 AGM-65D 매버릭 밖에 없는데 이건 전문 적외선포드 보다 능력이 제한적이었음. 이를테면 야간에 전치가 시동을 끄고 대기중이면 모래온도와 비슷해지는데 매버릭은 그 미묘한 차이를 감지해내지 못함. 조종사들은 야간에 겨우겨우 표적을 식별해도 결국 비유도 폭탄이나 위험을 무릎쓰고 기관포 공격으로 표적을 공격함.
10. A-10부대의 첫 공화국 수비대 공격 시도도 부대 지휘관인 대령이 직접 윙맨과 함께 시도하였으나 위의 문제 때문에 결과가 신통치 않았고, 심지어 윙맨은 SA-13으로 추정되는 지대공 미사일에 의해 큰 피해를 입고 간신히 살아돌아 옴.
11. 지휘관 귀환직후 바로 뒤에 출격한 2대중 1대의 A-10은 결국 지대공 미사일에 피격당함. 바로 직전에 미사일 공격을 받고 장기(leader)가 플레어를 투하하여 간신히 피한뒤, 미사일 발사지점을 찾아내어 재차 공격을 하려던 중 윙맨이 당한 것.
12. 격추당한 조종사는 비상탈출 하였으나 이라크 전차 부대 바로 옆에 떨어졌고 엄청난 구타를 당한 뒤 포로가 됨(기절한척 했는데도 계속 때렸....)
13. 이후 이라크 공화국 수비대에 대한 대부분의 전차 직접 공격은 야간에 F-111과 F-15가 맡음. 물론 상대적으로 훈련도가 낮고 방공능력도 떨어지는 일반 이라크 부대 지상군 공격에는 여전히 A-10이 투입 됨.
14. 전후 분석결과 이라크군의 실제 폭격피해는 군이 예상한것 보다 적었음. 당시 장갑차는 공격 후순위였으나 조종사들이 전차인줄 알고 공격한 표적 중 장갑차인것도 많았음. 또 엄폐호에 숨어있던 덕에 조종사는 파괴했다고 생각했으나 사실은 경미한 피해만 입고 살아남기도 하고... 전후에 특정지역에 대해 답사조사를 했는데 F-111이 떨군 2백 몇십발의 GBU-12중 전차를 완파시킨건 절반정도였다 함.
15. 하지만 이라크군은 직접피해보다 사기저하로 인한 탈영이 다 심각한 문제였음. 이는 이라크군 특유의 휴가제도와 결합됨.
16. 이라크군은 전시임에도 약 20% 병력이 항상 휴가중이었음. 식량배급도 줄이고, 병사들의 불만도 누그러트리기 위해서임.
17. 그런데 저렇게 연일 폭격을 당하니 사기가 떨어질데로 떨어져서 휴가나갔다 미복귀하는 사례가 늘어난 것. 게다가 수송부대도 계속 공격당하니까 복귀를 하려도 해도 하기가 어려운 상황. 물론 전시이탈등의 탈영도 상당했고 쉽게 항복해버리는 경우도 많았음.
18. 아이러니하게도 이라크 군 중 대규모 투항을 한 부대는 정작 공급을 별로 안 겪은 부대였으나, 아군의 공습피해 현장을 보고 두려워 사기가 급격히 떨어져 결국 투항했다고...
18. 물론 이동중이거나 경험 부족으로 엄폐를 제대로 못한 부대는 전차고 장갑차고 야포고 미군 전폭기들에게 신나게 두들겨 맞음.
19. 특히 수송부대는 항상 만만한 먹잇감이었고, 쿠웨이트 인근에 주둔중이던 이라크 공화국 수비대를 비롯한 많은 부대가 공습등으로 피해를 입으면서도 병력 재보충을 못 받는 상황이었음.
20. 슈워츠코프는 지상전 개시전에 이라크 공화국 수비대에 대한 공습을 강화하여 그 병력을 절반으로 줄이라 하였느나, 전후 조사결과 목표 달성에는 실패한것으로 나타남. 다만 이라크군의 행동과 사기를 크게 위축시킨 덕에 효과는 있었음. 근데 애당초 연합군이 이라크군을 과대퍙가한 탓에 실제 이라크군 규모 자체가 슈워츠코프가 예상한 것보다 적었으니 뭐...
<내레 다스베이더 모가지 따고 데스스타 폭파하러 야빈에서 왔수다.>
폭격의 사기저하 효과가 엉뚱한 부대에 더 크네 ㅋ
서로가 서로에게 쫀 전쟁...
그럼 걸프전에선 공군력보다 그 기동 도중에 미국 장기인 압도적인 화력으로 눌러버린게 매우 치명적이였던가 - dc App
공군력 효과 자체는 물론 이전 어느 전쟁보다 대단했으나 결국 완전섬멸에는 지상군투입이 필요한걸 확인했다...정도려나요?
뭐 좀 더 뒤의 코소보전때는 결국 지상군 투입없이 끝내긴 했눈데 이 때도 역시 나토군 예상보다는 유고군 피해가 적었다죠.
유고는 디코이전투기 쏠쏠하게 잘쓴걸로아는데 - dc App
애들은 디코이같은거 안썼남... - dc App
안에 난로 넣은 디코이 쓴 게 이랔 애들 아니었던가?
전시 휴가 무엇....
이라크도 디코이도 썼고 전차 옆에 타이어나 석유 태워서 이미 박살난 전차 코스프레 하기도 했다는 듯.
아항 ㄱㅅㄱㅅ - dc App
이라크애들 사기저하된건 세계 최강국 미국을 상대로 한 전쟁이라는 점이 제일 컸을거 같음. 이란 상대로는 첨단무기 다 떨어져서 참호전같은 그지전쟁 하는데도 몇년씩이나 전쟁 했으면서 미국한텐 모랄빵난게 참고할만 하다 봄..
15번 항목이 지상군 진입과 전후에 높게 평가된 걸루 기억나네. 잠도 못자고 항공 폭탄이 멀리서 터졌다 가까이 터졌다하는 스트레스가 그렇게 컸다고.
센서 해상도가 높은 시절이 아니라서 전차를 흉내내서 목재 등으로 대강 만든 디코이에 난로를 때면 적외선 포드로 구별 가능한 온도에서도 종종 속았다고 하고.
야간에 500~2000kg씩 되는 폭탄이 펑펑 터져나가면 안무서운게 비정상이긴하겠다
좋은 글은 불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