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가 제일 절실하게 스스로를 바꿨고 점령한 왕족을 지도층에 흡수하는 모습(금관가야계 김유신)을 보였으니
익명(oliver2324)2024-10-05 16:54
답글
신문왕까지 골품제 약화로 가는 개혁정책 도 당과의 전쟁가능성을 이유로 보더라. 역설적으로 발해랑 국교수립하고 나서부터는 골품제 세습 꼴통국가로 돌아감 - dc App
Vita_Activa(hugefiasco94)2024-10-05 16:56
답글
그런데 투항왕족 6두품인가까지는 시켜줬을건데 6두품이 못올라가던 관직은 현대로 치면 국무총리나 장관급에 가까운 왕위계승권에 근접한 귀족들이 먹던 관직 아니었나? 골품제 배타성 때문에 망했다는 것도 잘 모르겠던데.
테라인빅타(terrainvicta)2024-10-05 16:59
백제는 내전급 일화가 밝혀진게 많지 않아서 잘 모르겠고 고구려는 귀족간의 암투나 내전에 가까운 내부 무력 정치투쟁이 수차례 있었다는 사실이 사서상으로 암시됨. 신라는 고구려수준으로 심하진 않았던걸로 보이고. 고구려가 망한것도 결국 연개소문 아들들에게 각각 줄서기한 귀족일파들이 당나라로 투항하면서 진격로 열어준게 큰거 생각하면 그냥 내부적으로 단결한 나라가 이기고 못한나라가 졌다고 봄.
테라인빅타(terrainvicta)2024-10-05 16:57
답글
ㅇㅇ. 김유신이 비담 척살하고 골품제 존중하며 김춘추 자리를 넘보지 않았고, 김춘추는 군권을 김유신한테 다 위임했으니까. 김법민은 당 고종이 김인문을 신라왕 책봉할때도 동생을 믿었고. 그리고 저렇게 사전 숙청도 잘 했지. - dc App
신라가 제일 절실하게 스스로를 바꿨고 점령한 왕족을 지도층에 흡수하는 모습(금관가야계 김유신)을 보였으니
신문왕까지 골품제 약화로 가는 개혁정책 도 당과의 전쟁가능성을 이유로 보더라. 역설적으로 발해랑 국교수립하고 나서부터는 골품제 세습 꼴통국가로 돌아감 - dc App
그런데 투항왕족 6두품인가까지는 시켜줬을건데 6두품이 못올라가던 관직은 현대로 치면 국무총리나 장관급에 가까운 왕위계승권에 근접한 귀족들이 먹던 관직 아니었나? 골품제 배타성 때문에 망했다는 것도 잘 모르겠던데.
백제는 내전급 일화가 밝혀진게 많지 않아서 잘 모르겠고 고구려는 귀족간의 암투나 내전에 가까운 내부 무력 정치투쟁이 수차례 있었다는 사실이 사서상으로 암시됨. 신라는 고구려수준으로 심하진 않았던걸로 보이고. 고구려가 망한것도 결국 연개소문 아들들에게 각각 줄서기한 귀족일파들이 당나라로 투항하면서 진격로 열어준게 큰거 생각하면 그냥 내부적으로 단결한 나라가 이기고 못한나라가 졌다고 봄.
ㅇㅇ. 김유신이 비담 척살하고 골품제 존중하며 김춘추 자리를 넘보지 않았고, 김춘추는 군권을 김유신한테 다 위임했으니까. 김법민은 당 고종이 김인문을 신라왕 책봉할때도 동생을 믿었고. 그리고 저렇게 사전 숙청도 잘 했지. - dc Ap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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