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4년
미국인 사진작가 스티브 매커리는 소련 침공으로 혼란스러운 아프가니스탄을 취재하기 위해 아프가니스탄을 찾았다
발걸음이 국경을 넘어 파키스탄 내의 아프간 난민촌으로 향했을 때 그는 말 없이 날카로운 눈빛을 하는 어느 우수에 찬 아프가니스탄 소녀를 만날 수 있었다
소녀의 이름은 1972년생 샤르바트 굴라(Sharbat Gula)
몇년 전 소련의 침공 당시 소련 헬기의 공습으로 양친을 여의고 할머니와 동생들과 함께 겨우 몸을 피한 13살 소녀였다
전쟁으로 인해 초췌해진 난민 소녀의 얼굴은 1985년 6월 내셔널 지오그래픽 표지로 선정되었고 센세이셔널을 불러일으켰다
단 한명, 평범한 삶을 살았던 그녀를 제외하고
지구 반대편에서 그녀의 사진이 반전주의 물결을 불러일으키던 1980년대 중반, 그녀는 16세의 나이로 빵을 굽는 남자에게 시집을 갔다
이후 다섯 아이를 낳았고 이중 한명은 어려서 죽었다
소녀의 조혼과 영아사망으로 인한 조졸은 아프가니스탄의 여느 아낙네와 다를바 없는 모습이었다
탈레반의 집권으로 혼란스러웠던 시기 그녀 일가는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을 오가며 살았는데 사진을 촬영한 매커리는 자신의 사진이 화근이 되지는 않았을지 전전긍긍했다고 한다
2002년 미군이 아프가니스탄에 들어오자 굴라의 근황을 찾기 위해 매커리는 다시 아프가니스탄으로 향했다
수소문끝에 그는 이제는 너무나도 나이가 들어버린 굴라를 만날 수 있었다
2002년 모습
약 29~30세 무렵
이후 2012년 굴라의 남편은 C형 간염으로 사망했다
2017년 굴라의 일가족은 불법체류 혐의로 아프가니스탄으로 완전히 추방되었다
당시 현직 ^대통령^이었던 아슈라프 가니는 그녀를 대통령궁으로 초대해 대대적인 환영 행사와 함께 아파트와 정부 보조금을 약속했다
모두가 알다시피 2021년 아프가니스탄의 살얼음판 같은 평화는 완전히 깨져 버렸다
탈레반은 서구에 잘 알려져 있고 민주정부와도 연관이 있는 굴라 일가를 공공연하게 족칠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이탈리아 총리 마리오 드라기는 굴라 일가의 탄원을 받아들여 군 수송기 편으로 그녀 일가를 이탈리아로 탈출시켰다
현재 굴라의 일가족은 이탈리아에서 난민 신분으로 거주하고 있다
한국도 비슷한 사례가 있었는데
경성제국대학 소속 인류학자 이즈미 세이치가 1935년 제주도를 찾아 현지(교래리) 청년의 얼굴을 촬영한 적이 있었음
이후 알다시피 광복과 여러 일을 거치며 세이치는 한일협정 후인 1966년에야 다시 제주도를 찾을수 있었고 그때 그 조선인 남자와도 만날 수 있었는데
고향은 (정떡)으로 불타버리고 주름살이 깊게 패여 30여년의 풍파를 제대로 맞은 그의 모습을 보고 세이치와 남자는 서로 끌어안고 대성통곡을 했다고 함
사람은 버틸 수 없는 고생을 하면 확 늙거나 죽거나 둘중 하나더라
나이 든 모습이 더 예쁘네 - dc App
해방 이후 제주도면...아이고.....
마지막 사진 진짜 먹먹해지네...이게 진짜 말이 되어야지...이게 무슨 비극이냐...
눈알이 주먹만하네 세상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