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공이 한국전쟁에 개입하는 발단을 제공한 건 일단 스탈린과 김일성임.
스탈린은 직접적인 개입은 지양하면서 중공이 북한을 지원하는 방향으로 전쟁을 지도하고 있었고 유사시에 중공이 육상 지원을 하고 소련이 공중 지원을 해줄거라고 후까시를 넣고 있었음.
여기에 김일성이 따거따거 살려주시라요 하며 바짓가랑이 붙잡으며 사정하고 있었음.
이 때 모택동을 중심으로 하는 중공 정치국 회의에서 모택동을 제외한 전 구성원이 참전을 반대했음. 사실 실리적으로 봤을 때는 참전을 안하는게 맞았음. 미국과 뭔 수로 맞짱을 뜨겠다고.
하지만 모택동 입장에선 참전해야 할 이유가 있었음.
일단 스탈린이 모택동을 상당히 경계했음. 스탈린 입장에선 일단 정통 맔스-레닌주의적으로 봤을 때 모택동은 사이비적인 존재이고 소련 유학파도 아닌데다가 덩치가 큰 똘마니가 생긴 것도 부담스러운 면이 있었음.
그런 스탈린 앞에서 모택동은 그저 배 까고 발랑 드러누운 강아지같은 존재였음. 스탈린으로부터 사회주의 진영의 일원으로서 인정받음은 물론 실질적으로 소련으로부터 각종 지원을 받아야 중국 경제를 정상화시키고 군대를 현대화할 수 있었음.
국내 상황 또한 모택동에게 압박으로 다가오고 있었음. 1950년 가을을 지나면서 한국전쟁의 전황이 유엔군 측으로 급격히 기울자 유엔군이 북한을 돌파해 중국으로 돌입할 거라는 유언비어가 퍼지기 시작했고 특히 가장 늦게 공산화에 편입된, 그리고 대만과 인접한 남부 지방에서 특히 심각해서 인민 뿐만 아니라 당 간부에 의한 사보타주가 보고되고 있었음.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를 모택동은 인민지원이란 선전선동으로 일소하고자 했음.
결국 정치국 확대회의를 거쳐 만장일치로 북한 지원 및 참전을 결의하게 됨.
정리하자면
1. 1950년 당시 모택동은 스탈린의 개였음.
2. 중국은 소련으로부터 떨어지는 떡고물을 간절히 바라고 있었음.
3. 한국전쟁에서 자유진영의 선전으로 인해 중국 국내 민심 이반이 발생함.
4. 자유진영과 중국이 직접 국경을 맞대는 상황도 피하고 싶었음.
대만 포기하고 남의 나라에 꼴박한게 ㅈ같음
그럴 수 밖에 없는 게 미7함대 없을 때도 대만 해협을 못 뚫었는데 미8함대가 대만해협에 닻 내린 순간부터 중공은 죽었다 깨어나도 해협 돌파할 수 없었음.
중공 국내 정치 상황따라 그 짧은 기간동안 참전하네 마네 계속 말 바꾸고 다녔지
모택동이 아쉬운게 많긴 했는데 대장정 끝나고 옌안 시절쯤에는 모택동이 친소련파들 싹 다 때려잡고 1인 체제 굳히지. 그래서 스탈린도 이념적 문제가 아니더라도 모택동은 좀 껄끄러워했다고 하더라.